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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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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역사를 간직한 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정방뜰유래비'

  • 위치
    충남 공주시 웅진동 526-2
  • 등록일자
    2026.01.29(Thu) 21:03:16
  • 담당자
    엥선생 깡언니 (jhp1969@naver.com)
  • 매서운 추위로 밖에 나가기가 여간 주저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날씨 탓만 하며 해야 할 일을 미룰 수만도 없는 노릇이죠. 며칠 전, 더는 미뤄 둘 수 없겠다 싶어서 개인적으로 꼭 들러보고 싶었던 곳에 칼바람을 맞아가며 가보았습니다.


    정방뜰(소정이펄) 전경

    ▲ 정방뜰(소정이펄) 전경


    소정펄길 이정표

    ▲ 소정펄길 이정표


    큰 결심 끝에 향한 곳은 공주시 소정펄길이었습니다. '소정펄길'은 도로명이며, '소정펄(蘇定펄)' 은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고마나루(곰나루) 일대의 뭉개흙으로 이루어진 들판을 이릅니다. 소정펄은 '소정이펄' 또는 '소정들', '원수대터', '정방뜰' 등의 지명으로 불리는 곳으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나·당 연합군을 이끌고 웅진성을 공략할 때 유진(留陣)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16년간 당나라가 웅진도독을 설치하여 군정을 실시하던 자리인 데서 지명이 유래합니다.


    백제문화전당 전경

    ▲ 백제문화전당 전경


    소정펄길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계기는 오는 2월에 개관하는 '백제문화전당' 때문입니다. 백제문화전당은 공주문화관광지조성사업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백제문화전당은 고도(古都) 공주의 역사와 예술이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입니다. 개관 후에는 공연, 전시, 체험이 어우러져 예술의 일상화와 창작의 확장을 꿈꾸는 장소로,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 플랫폼의 기능을 수행하게 됩니다. 허허벌판에 가까웠던 곳에 지역 예술·문화의 거점 공간이 생기게 되니, 자연스레 주변부에도 관심이 쏠렸습니다.


    공주시 백제큰길에서 바라본 공주문화관광지조성사업단지 일원

    ▲ 공주시 백제큰길에서 바라본 공주문화관광지조성사업단지 일원


    대형 버스 앞쪽에 정방뜰유래비를 만날 수 있는 입출구가 있다.

    ▲ 대형 버스 앞쪽에 정방뜰유래비를 만날 수 있는 입출구가 있다.


    소정펄 전경은 남서단에서 바라보면 한눈에 들어옵니다. 공주시 백제큰길에서 바라보면 소정펄 너머로 완공된 백제문화전당이 보입니다. 그 바로 뒤편에 자리 잡은 건물은 백제체육관입니다. 백제문화전당 정문 앞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왼쪽으로 공사 현장의 입구가 보입니다. 방문한 날은 현장 작업자가 없고, 출입을 금하는 안내문이 없는 데다 출입구가 개방돼 있어서 안쪽으로 진입해 봤습니다.


    공사 현장 우측으로 연미산이 보인다.

    ▲ 공사 현장 너머로 연미산이 보인다.


    2019년 촬영한 정방뜰 풍경

    ▲ 2019년 촬영한 정방뜰 풍경


    안쪽으로 진입하니 진입로 오른쪽으로 연미산(燕尾山)이 보입니다. 연미산 아래로는 금강이 흐르는데, 강변에 있는 소정펄은 천여 년이 지나는 동안 물로 씻기고 모래가 쌓이고 덮여서 이름만 전해오다가 1945년에 큰 장마로 모래가 쓸려서 그 자리가 한때 드러난 일도 있다고 합니다.


    공주 고마나루 명승지

    ▲ 공주 고마나루 명승지 초입


    연미산 아래로 금강이 흐른다.

    ▲ 연미산 아래로 금강이 흐르며, 하류에 공주보가 있다


    공주문화관광지조성사업이 시작되기 전 강둑을 막은 이 지역에는 민가가 드물었습니다. 대부분 과수원과 밭작물을 재배하는 농지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만, 학설에 의하면 이 일대는 백제시대에는 민가가 밀집돼 있었고, 강폭이 좁고 깊어서 외부와의 교역로로 번창했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공사현장 좌측으로는 긴 팬스가 쳐져 있다.

    ▲ 공사 현장 좌측으로는 긴 펜스가 쳐져 있다.


    팬스 중간 지점 사이로 정방뜰유래비가 보인다.

    ▲ 펜스 중간 지점 사이로 정방뜰유래비가 보인다.


    공사 현장 왼쪽으로는 펜스가 쳐져 있었습니다. 펜스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니 비닐하우스 한 동이 보이고, 그 앞쪽에 커다란 비석 한 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큰 비석이 눈에 들어오자, 목적지를 찾은 기쁨과 함께 '이런 곳에 이런 비석이 왜 있을까?'라고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방뜰유래비(정면)

    ▲ 정방뜰유래비(정면)


    정방뜰유래비(후면)

    ▲ 정방뜰유래비(후면)


    2m 높이의 비석 전면에는 '정방뜰'이라고 세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후면에는 정방뜰 유래(由來)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이곳은 「정방뜰」 또는 「소정평(蘇定坪」으로 부르는데 당(唐)나라 소정방(蘇定方)이 웅진성(熊津城)을 공략(攻略)하기 위하여 부여에서 금강을 거슬러 올라와서 유진(留陣)했던 곳이다. 660년 백제(百濟)가 망한 후에는 당(唐)은 웅진 도독부(熊津 都督府)를 설치하여 백제의 강토를 통치하였는데 신라(新羅)의 끊임없는 압박으로 676년 마침내 본국으로 철수할 때까지 16년 동안 존속하였다.

    「정방뜰」은 그 옛날 매우 번창했던 곳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481년(동성왕 3년) 웅천(熊川)에 물이 넘쳐 200여 호가 표몰되었다」는 기사는 시가(市街)가 강변에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백제는 인접(隣接)한 고마나루를 통하여 중국이나 일본(日本)과 교역을 하였을 뿐 아니라 이 나루는 내륙(內陸)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要衝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한때 충청도 관내 군병(軍兵)들의 훈련장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이렇듯 많은 역사를 간직했던 정방뜰은 1,000여 년을 지나오는 동안 금강의 범람으로 흔적도 없이 강물이 쓸어가 버리고 다만 이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정방뜰유래비(우측면)

    ▲ 정방뜰유래비(우측면)


    백제문화전당은 오는 2월로 개관이 예정돼 있다.

    ▲ 백제문화전당은 오는 2월 개관이 예정돼 있다.


    공주문화관광지조성사업으로 정방뜰유래비는 현재의 자리에서 이전 또는 (폐기) 처리 순서를 밟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정방뜰유래비의 향후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성이 제기된 일도 있습니다.


    비석의 종류, 비석의 문장 및 글체 등이 세련되고 유려한 점에서 제작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정방뜰유래비의 역사적 가치는 차치하고 학계에서는 660년 7월에 소정방과 그의 군대가 공주에 왔는지를 놓고도 의견이 나뉩니다. 만, 개인적으로는 마을의 상징적인 장소에 정방뜰유래비가 세워졌다는 점에서 비석을 세운 이들의 유지를 받들어 적소에 옮겨지고, 잊히지 않을 역사가 후세에 전해지길 바라 마지않습니다.



    <정방뜰유래비>

    1.위치: 공주시 소정이펄 (웅진동 559 일원)

    2.주의할 점: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사고 위험이 있다. 인근 공영 주차장에 주차 후 도보 이동을 권한다.

     * 촬영일자: 2026년 2월 21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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