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겨울 오후, 국립망향의동산을 찾았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대한항공 KAL 007편 피격 희생자 위령탑이었습니다.
1983년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사건으로, 269명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탑입니다.
26.9m에 이르는 탑과 양쪽의 16인 조각상이 비극의 무게를 묵직하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첫 순간부터 깊은 역사를 마주하게 되는 공간이었어요.


분수대를 지나 안쪽으로 걸으면 무궁화묘역을 비롯해 재일학도의용군 묘역, 사할린 영주귀국자 묘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묘역 등 여러 공간이 이어집니다.
국립묘지처럼 경직된 느낌보다는 넓고 고요한 공원에 가까워, 역사를 생각하며 산책하듯 천천히 걷게 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걷다 보면 중앙에 우뚝 선 망향의동산 위령탑을 만나게 됩니다.
높이 15.5m의 탑은 소박하지만 굳건한 기품이 있었고, 탑 앞 제단과 분향대 앞에 서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탑 앞에는 영혼의 승천을 의미하는 비천상, 좌측에 이국땅에서 고향을 그리던 여인상, 우측에는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상이 자리해 이곳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헌시
여기는 조국의 땅
꿈 속에도 바라보던 조국의 땅
그대들 돌아오라 기다리던 망향의동산
봄이면 진달래 피고
가을이면 들국화 피고
해와 달이 번갈아 보호하는 망향의동산
고난의 세월 다 지난 오늘
돌아와 조국의 품 속
이 안식의 동산에 포근히 안겨 잠드소서
- 1976. 8. 15 노산 이은상 -
위령탑 옆으로 이어지는 공간에는 2018년 조성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비가 있습니다.
군사적 명칭 뒤에 숨겨진 여성들의 고통스러웠던 삶을 위로하고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공간입니다.
조형물은 고단한 삶의 터전이었던 안식의 집, 할머니들의 눈물을 상징하는 영혼의 눈(눈물의 바다), 피해자로 살아야 했던 세월을 담은 시간의 벽, 그 시련을 딛고 평화를 향해 나아가길 바라는 승화의 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설명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더군요.



위령탑에서 돌아오다보면 귀정각이 있습니다.
“해가 지면 모두 집으로 돌아가듯, 삶의 마지막에는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로 지어진 건물이에요.
기독교·불교·유교 등 종교 의식이 모두 가능한 제례 공간입니다.

마지막으로 홍보관을 들렀습니다.
처음에는 ‘강제징용’과 ‘위안부’ 정도만 떠올렸는데, 전시를 보고 나니 국립망향의동산이 담고 있는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었습니다.
사할린 강제징용, 재일학도의용군, 독일의 광부·간호사 파견, 전쟁과 가난으로 떠나야 했던 중남미·러시아 이주민들.
강제성이 있었든 생계를 위한 선택이었든, 삶의 마지막 순간을 모국의 흙에서 맞고자 했던 이들의 마음이 한 공간 안에 고요히 담겨 있었습니다.
담백하게 정리된 자료들이 오히려 마음을 더 크게 울렸습니다.



시계탑에는 헌탑시가 적혀져 있었어요.


헌탑시
고향을 떠나서 수십년
낯선 이국땅 인고속에서
애통하게 영면하신 교민의 넋을
조국의 품안에 길이 모시고자
여기 망향의 동산에
광복 오십주년을 맞이하여
위령의 추모탑을 건립하오니
아아! 영령들이시여
영원한 안식의 동산에
편히 잠드소서
- 1993년 8월 15일 작시 박재수 -
국립망향의동산은 단순한 ‘추모 공간’을 넘어,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고난, 그리고 고향을 향한 간절한 염원이 함께 살아 있는 장소였습니다.
잔잔한 마음으로 역사를 떠올려보고 싶은 날, 국립망향의동산은 꼭 한 번 방문해 볼 만한 곳입니다.

“국립망향의동산”
○ 위치 :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망향로 372-8
○ 운영시간 : 9:00~18:00 (연중무휴)
○ 전화번호 : 041-557-7001
○ 홈페이지 : https://www.nmhc.go.kr/
* 취재일 : 2025년 12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