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족과 함께 성거산 성지를 다녀왔습니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올라갈수록 공기가 달라지고 분위기가 갑자기 깊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성거락 깊은 산자락으로 들어가니 ‘성거산 성지’라는 표지석과 함께 숲속으로 열린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 성거산 성지는 어떤 곳일까
천안 성거산 천주교 유적은 병인박해 당시 성거산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다 순교한 분들을 모신 줄무덤 및 신앙공동체였던 교우촌 유적입니다.


줄무덤(제1,2)에는 소학골에서 체포되어 1866년 11월 8일 공주 황새바위에서 순교한 배문호(베드로), 최천여(베드로), 최종여(라자로), 고의진(요셉), 채씨 며느리 등 5명의 시신과 무명 순교자들이 안장되어 있어요.
천안 성거산 자락은 19세기 초부터 천주교 박해 이후까지 천주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영위했던 삶의 터전으로, 특히 이곳 소학골 교우촌은 칼래 신부의 충청, 경상, 경기 일부를 관할했던 사목활동 중심지이고 천주교 박해시 교우촌의 지형, 생활유적, 기록이 보존된 유적입니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것을 발견하였노라! 베드로

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12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175호 ‘천안 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로 지정되었습니다.

성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줄무덤’이 보입니다.
이곳에는 병인박해 당시 소학골·서들골 일대에서 잡혀가 순교한 신자들을 포함해, 이름 없이 숨을 거둔 수많은 이들의 무덤이 나란히 이어져 있습니다.
제1줄무덤에는 38기, 제2줄무덤에는 36기의 묘가 있고, 예전 증언에 따르면 실제로는 100기 넘는 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고 하니, 이 자리가 지닌 무게가 한층 크게 느껴졌습니다.


○ 깊은 산에서 느낀 숙연함과 존경
성거산 성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깊은 산속까지 올라와 신앙을 지키며 살았구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지금은 정갈하게 정비된 산책로와 안내판, 기념성당이 자리하고 있지만, 당시를 떠올려 보면 이곳은 숨기 위한 공간이자, 동시에 신앙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겠지요.
그분들이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 의지와 마음을 지금 우리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잠시나마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 잘 정비된 산책로, 조용한 힐링 장소
성거산 성지는 ‘성지’이면서도 산책하기 좋은 힐링 공간이었습니다.
교우촌둘레길은 나무데크와 완만한 경사가 조화롭게 이어져 있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었고, 길을 따라가다 보면 큰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옛 집터와 복원된 세 채의 집이 고요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곳곳에는 예수의 고행을 표현한 조각상들이 놓여 있어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깊고 험한 산속에서 신앙을 지켜야 했던 공간임에도, 실제로 걸어보면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병인박해 15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성당에는 성모마리아상과 예수상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는데, 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예수상은 성당 내부에서 미사를 드릴 때 자연스럽게 시선이 닿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성스러운 공간이었습니다.




○ 과거와 현재가 겹쳐 보였던 시간
성거산 성지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박해 시대의 흔적과 현재의 고요함이 묘하게 충돌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한쪽에는 박해 시대에 생을 잃은 이들을 묻은 줄무덤과 오래된 비석이 서 있고, 다른 한쪽에는 고요하고 잔잔한 숲길이 이어집니다.
자연은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 사이를 걸으면서
“이 깊은 산길을 숨어 오르내렸던 이들은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편히 걸을 수 있는 데크길과 정돈된 숲길이 있지만, 같은 자리를 걸으면서 그 시대의 불안과 절박함이 조금은 상상되더군요.


성거산 성지는 볼거리가 많은 관광지는 아니지만, 조용히 걸으며 옛사람들의 삶을 잠시 떠올려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예전의 아픔이 떠오르기도 하고, 지금은 이렇게 평온한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흐르는 시간의 차이가 묘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무겁기만 한 곳이 아니라, 차분하게 둘러보고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산책 코스였어요.
성거산의 고요한 분위기 덕분에 마음이 한층 편안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천안 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
○ 위치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북면 납안리 490-1
○ 기념물 : 충청남도 기념물 제175호 (2008년 12월 지정)
* 취재일 : 2025년 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