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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역사

내용을 읽어드릴까요?

충남의 전통사찰 18- 못생김의 미학 은진미륵 논산시 관촉사(灌燭寺)

더 크게…. 높이 18m 은진미륵 어떻게 세웠을까?

  • 위치
    충남 논산시 관촉동 254
  • 등록일자
    2025.08.01(Fri) 14:34:25
  • 담당자
    휘리릭 (mch7775@hanmail.net)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과 일직선상을 이루는 석등과 석탑.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과 일직선상을 이루는 석등과 석탑.


    여름 햇살이 반야산을 덮을 때, 묵은 돌계단을 오릅니다.

    숨이 차오를 때쯤 고개를 들자 은진미륵은 묵묵히 나를 내려다봅니다.

    천년세월에 풍화된 미소, 하지만 흐트러짐 없는 평안한 얼굴

    밝게 빛나는 백호와 거대한 보관 위로 부서진 빛이 흘러내리고

    못생긴 얼굴 사이를 스치는 바람은 위선의 숨결을 식혀줍니다.

    그 바람은 아마도 천여 년 전에도 이 길을 올랐을 이들의 땀을 식히고

    시름을 덜어주었을 것입니다.

    은진미륵의 커다란 손바닥에 가만히 시선을 얹으면

    잠시 세상 근심이 무너지는 듯싶습니다.

    돌처럼 단단한 세월 그 손은 부드럽게 모든 것을 감싸 안고 있습니다.

    높이 치솟은 기단 위에서도 허공을 움켜쥐지 않는,

    놓아주는 손, 비워낸 손.

    돌난간 너머 작은 연못에 연꽃이 피고 매미 울음 길게 이어지는 동안,

    돌과 바람, 빛이 엮어낸 이 시간 속에 나를 내려놓고 싶습니다.

    은진미륵은 여전히 거기 있고, 세월의 바람에 쓰러지지 않을 그 미소가,

    뜨거운 계절에도 시들지 않는 연꽃처럼 머물러 나를 잡아줍니다.

    돌계단을 내려서며 뒤돌아보면 햇살 속에 반쯤 잠긴 은진미륵은 말없이 전해줍니다.

    머물렀다 가더라도, 마음에 한 조각 고요를 남기고 가라고….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석문. 현재 동문만 남아있다.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석문. 현재 동문만 남아있다.


    관촉사는 충남 논산시 관촉동 반야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 소속의 천년고찰입니다. 사적비 등 선행연구에 따르면 968년(고려 광종 9) 승려 혜명이 창건해 1006년 개사했다고 전해집니다. 법당은 1386년 신축했다가 1674년 지능 스님이 중수했습니다. 성보 문화유산으로 국보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일명 은진미륵)은 사찰보다 오히려 유명세를 누리고 있습니다. 보물인 석등과 충남도 유형문화유산인 배례석, 석탑, 윤장대 등 중요 문화유산을 보유했는데 석문(石門)은 고려의 특이한 건축 양식으로 눈길을 끕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삼성각에서 바라본 경내 전각.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삼성각에서 바라본 경내 전각.


    가람배치는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거쳐 경내로 진입합니다. 천왕문에는 수미산을 사방에서 수호하는 호법신인 지국천(동방), 광목천(서방), 승장천(남방), 다문천(북방) 등이 각각의 지물을 들고 서 있습니다. 본격적인 경내는 명곡루에서 시작되는데 강당처럼 법회 등 행사를 진행하는 장소로 정면에서는 2층이지만, 사찰 마당에서 1층으로 “부처님의 광명이 온누리에 비춘다”는 의미를 담은 ‘불광보조(佛光普照)’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경내는 크게 왼편의 대광명전과 오른편의 미륵전으로 나뉘는데 은진미륵이 단연 압도적입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일주문 전경 1.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일주문.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일주문 천정의 단청.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일주문 천정의 단청.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사천왕문.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사천왕문.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명곡루.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명곡루.


    대광명전은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보면 통층 구조입니다. 1층은 전면 5칸 측면 4칸, 2층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왼편에 원만보신 노사나불과 오른편으로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등 삼신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비로자나불은 “두루 빛을 비추는 존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태양을 뜻하는 부처의 자비광명이 온누리에 함께하는 의미입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대광명전.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대광명전.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대광면전 삼존불.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대광명전 삼신불.


    소목장의 한 땀 한 땀 정성이 그득한 꽃 문살 역시 정말 아름답습니다. 내부는 높은 천정을 이용해 삼존불 위로는 지붕 모형의 닫집을 만들었는데 대광명전의 분위기를 더욱 엄숙하게 만듭니다. 닫집의 현란한 장식 역시 보는 이를 압도하는데 청룡과 황룡이 꿈틀거리고, 중앙의 가장 높은 곳에서는 구름을 헤치고 봉황이 날갯짓합니다. 처마의 무게를 받치는 공포의 조각과 단청 솜씨 또한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대광명전의 꽃 문살.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대광명전의 꽃 문살.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대광명전의 문살.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대광명전의 문살.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대광면전 삼산불 닫집.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대광면전 닫집.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대광면전의 공포와 화려한 단청.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대광명의 화려한 공포와 단청.


    대광명전을 나서면 오른쪽의 전각은 명부전입니다. 전면 3칸, 측면 1칸의 아담한 크기로 내부에는 십왕이 모셔져 있고, 왼편 벽면에 서산대사(청허당사산대화상진영)와 사명대사(송운당사명대화상진영)의 초상이 걸려 있습니다. 이어 계단을 오르면 불교가 토속신앙을 수용한 삼성각에 독존, 칠성, 산신 탱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 앞에 염험한 효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는 둥근 돌이 설명문과 함께 있어 기복신앙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명부전.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명부전.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명부전의 십왕.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명부전의 십왕.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명부전의 서산대사(왼쪽)과 그의 제자 사명당의 진영.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명부전의 서산대사(왼쪽)과 그의 제자 사명당의 진영.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삼성각. 아래 영험한 효력의 돌이 있다.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삼성각. 아래 영험한 효력을 갖었다는 돌이 놓여 있다.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하 은진미륵)은 미륵전에서 배례석, 석탑, 석등, 석조 불단과 일직 선상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은진미륵(恩津彌勒)은 관촉사의 옛 지명이 은진면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려 말 승려 ‘무외’의 ‘용화회소(龍華會䟽)’를 비롯해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고려 문인 ‘이색’의 시 등 여러 기록에 등장하는데 이를 종합하면 고려 왕실의 전폭적 지원 아래 당대 최고 수준의 조각장 참여로 제작됐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부처는 여러 형태로 표현되는데 ‘석가여래’는 세상에 실존했던 부처이고, ‘아미타불’은 극락정토를 관장하는 부처, ‘비로자나’는 불교의 진리를, ‘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을 고치는 부처이며 미륵불은 지금은 보살로 있지만, 미래 세상에 나타나 어려움에 빠진 중생들을 구제해 준다는 부처입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 중생은 미륵불을 간절히 기다리게 되는데 후삼국의 혼란기 등 고려 시대 미륵불이 많이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과 일직선상의 석등과 석탑.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과 일직선상의 석등과 석탑.


    은진미륵은 천연 화강석 암반을 대좌, 허리 기준의 상·하체, 면류관 형태의 보개를 각각 조각한 후 하나씩 올린 높이 18.12m, 둘레 9.9m 규모의 국내 최대 석불입니다. 제작은 고려 태조 왕건의 아들이자 4대 왕인 광종(949~975)의 명에서 시작됩니다. 968년 혜명대사는 석공 100명과 불상 조성에 들어가 37년만인 1006년에 완성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큰 돌을 옮겨서 세울 수 있었을까요? 당시는 크레인 등 현대적 기중기가 제작되기 이전으로 높이 18m의 거대한 석상을 인력만으로 세우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고민에 빠진 혜명은 강가에서 놀던 어린아이 2명의 모래 장난에서 힌트를 얻어 마침내 불상을 세우게 됩니다. 당시 아이들은 평지에 불상 아랫부분을 먼저 세우고 그 주변에 흙을 쌓아 올려 경사로를 만들고는 가운뎃부분과 윗부분을 밀어 올려세우는 놀이를 한 것입니다. 혜명대사에게 방법을 알려준 두 어린아이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화신이었다고 합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은진미륵은 마침내 완성됐고 훗날 이 마을은 ‘모래 사다리’라는 뜻의 ‘사제촌’으로 불렸습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은진미륵이 세워지자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는데 비가 내려 불상의 몸을 깨끗이 씻어주었고, 좋은 기운이 21일 동안 머물렀다고 합니다. 두 눈썹 사이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사방을 환하게 비췄는데 이 빛을 따라 중국의 고승 지안이 이곳에 찾아 예배 드렸고, 그 빛이 마치 촛불 같다고 해서 절 이름을 ‘관촉사(灌燭寺)’라고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지금도 나라가 태평할 때는 불상의 몸이 빛나고 좋은 기운이 허공에 머물지만, 나라에 어려움이 닥치면 불상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든 꽃이 색을 잃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구전설화 가운데는 나라를 구한 이야기도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상이 완성되고 얼마 후 북방에서 고려를 침공한 오랑캐 무리가 압록강에 도달하자 삿갓을 쓴 승려 1명이 태연하게 강을 건너기에 이를 보고 오랑캐들도 그를 따라 강을 넘습니다. 하지만, 승려와 달리 오랑캐는 물속에 빠져 죽어버렸고 화가 난 오랑캐 장수는 칼로 승려를 내려쳤지만, 삿갓 한 귀퉁이만 베어졌다고 합니다. 이 승려가 은진미륵 불상의 현신이라는 이야기인데 실제 은진미륵 불상 보개의 귀퉁이가 떨어져서 꿰맨 듯한 자국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야기로 보입니다. 염라대왕과 관련돼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영혼에 “이승에 있을 때 개태사 가마솥과 관촉사 은진미륵을 봤느냐?”고 묻어보고는 “봤다”라면 “잘했다”라고 칭찬하고 “못 봤다”라면 “살면서 그것도 한 번 안 보고 뭐 했냐”고 화를 낸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 은진미륵의 오른쪽에 세워진 사적비는 미륵불의 조성 설화와 사명의 유래, 보살상의 보수, 보살상의 찬미 등을 적어 두었는데 “은진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캐던 여인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고 그곳으로 가보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솟아 나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광종은 땅 밑에서 솟아오른 바위에 부처님을 새겨 슬픔에 잠긴 백성들을 위로하라는 부처님의 뜻이라 여기고 혜명대사에게 불상 조성을 명한 것입니다. 불상이 완공되자 이를 찾은 중국 고승 지안(智眼)은 불상의 백호(원래 흰 털을 뜻하지만, 후대에 보석 등으로 대체됨)를 보고 마치 “촛불을 보는 것처럼 미륵이 빛난다”고 하며 ‘관촉사(灌燭寺)’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합니다. 

    이 같은 내용은 백호의 구멍에서 발견된 묵서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사적비는 1743년(영조 19) 승려 각혜와 속인 등이 조성한 것으로  대리석 비신은 가로 60㎝, 두께 30㎝, 높이 133㎝에 화강암 귀부와 80×57㎝ 크기의 지대석이 놓여 있고 귀부와 비좌 사이 연꽃 문양을 조각했습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의 보관.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의 보관.


    사진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듯이 은진미륵은 좌우로 빗은 머릿결 위로 높은 원통형 보관(寶冠)을 썼고 두 손으로 청동제 꽃을 들고 있다. 널찍하고 명료한 이목구비와 가지런함 되지 않는 압도적인 크기 등은 한국 불상 중 가장 독창적이고 특색 있는 미의식을 창출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우아한 이상미(理想美)를 추구한 통일신라 조각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을 담고 있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우리나라 불교 신앙과 조각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창성과 완전성 측면에서도 뛰어나다는 평입니다. 머리와 손을 강조한 표현 양식도 주목됩니다. 자비로운 보살의 모습보다는 토속적인 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위압적이며, 강한 메시지와 신비감을 전달하는데 이상적 우아함을 추구한 신라 불상과 다른,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을 보이는 새로운 양식입니다. 특히 불상의 눈동자가 검은 부분은 색칠한 것이 아닌 눈동자 크기에 맞게 정교하게 깎고 다듬은 점판암을 박아넣어 장식한 것이며, 머리에 쓰고 있는 보관의 기둥 부분에 뚫려있는 수많은 구멍에는 원래 금동장식의 자리입니다. 매우 정교한 조각기술을 사용해 장식을 추구한 것입니다. 이마의 동그라미 형태는 ‘백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완공 당시에는 천연 수정이었는데 세월이 지나 헐거워지면서 1521년 떨어져 세조각으로 깨어졌는데, 이를 대신해 청동 백호를 부착했다가 400년이 지나 녹이 슬어 1960년 반구형의 유리 백호로 교체됐습니다. 은진미륵이 쓰고 있는 관의 모서리에 걸려 있는 풍탁도 오랜 세월 풍화되어 성분분석을 통해 무게를 가볍게 만든 복제품으로 재설치되었습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의 몸통 상반신.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의 몸통 상반신.


    그런데도 은진미륵은 한때 일부 학술지 등에서 “못생겼다”는 이유로 함부로 폄하를 받는 억울함을 겪었습니다. 신라 불상들이 사실적이고 인자함과 근엄함을 동시에 강조했던 것과 달리 은진미륵은 상대적으로 조형미는 물론 사실적이지도 균형에 맞지도 않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는 귀족적 문화에 대한 일률적 지방 전파를 강조해온 신라와 달랐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통일신라 불국사의 석불과 석가탑이 전국의 유명 절이나 사지에 하나씩 만들어졌던 반면 지방 호족 연합체로 개국한 고려의 불교미술는 도읍의 전형적 양식을 벗어난 자유분방한 지역의 특징을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방세력 단위가 아무래도 중앙 귀족의 신라 양식보다 균형과 세련미가 떨어지는 느낌은 있겠지만, 일부 미술사학자는 “못생긴 3등신, 미련하게 생긴 얼굴, 불상이라기엔 그냥 돌기둥, 신라 전통을 잃어버린 한국 최악의 졸작”이라는 박한 평가를 하기도 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웠던 일입니다. 다행히 은진미륵의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스타일은 시대 흐름에 따라 재평가됐고 이러한 점이 주목받아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던 것을 1984년 국보로 승격되었습니다. 이처럼 불상 전체에서 느끼는 원초적 힘은 고려 초기 널리 유행한 불교 예술의 특징으로 10세기 후반 충청지역 석조 불상의 전형이자 모델로,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과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보물)과 유사하게 생겼습니다. 불상에 갓이나 보개를 쓴 특징도 전북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충북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충남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부여군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예산군 삽교읍 석조보살입상(보물), 서울 북한산 마애여래좌상(보물),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경기 여주시 포초골 미륵좌불(경기 유형문화유산), 강원 영월군 무릉리 마애여래좌상(강원 유형문화유산) 등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의 하반신.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의 하반신.


    이처럼 고려 시대 거대한 석불이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통일 신라 말기 불상은 점차 커지기 시작했지만, 고려에서 더욱 확장됩니다. 당시 중앙 정부와 지방 호족들은 부처님의 힘을 빌려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자 했는데 불교계 또한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위엄을 효과적으로 보여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거대한 불상은 이러한 분위기에 맞물려 널리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거대할수록 신비한 힘이 있어 보였고, 부처님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고려 시대의 돌부처는 일부를 제외하면 지방을 중심으로 제작하고 참배합니다. 지방 세력가의 후원으로 사람들이 힘을 모아 불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방색이 강하게 나타나기 마련인데, 거대한 석불은 대부분 돌기둥 몸체에 토속적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비례도 어색하고 입체감도 크지 않고 조각도 엉성한 듯 보이지만 얼굴만큼은 신경 써서 만듭니다. 거대한 돌부처는 철이나 청동 부처보다 특별한 기술 없이도 만들 수 있었고 자연 암벽을 조각하거나 새겼기에 비용도 상대적으로 덜 들었습니다. 야외에 만들어졌으니 참배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갈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 보수과정 안내문.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은진미륵) 복원 안내문.


    은진미륵 앞으로는 석조불단(石造佛壇)이 있습니다. 길이 730㎝, 높이 94㎝, 폭 100㎝ 크기로 미륵의 창건 당시 조성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미륵불 전면에 긴 형태로 만들어져 석불 상에 공양을 올릴 때 사용했던 것으로 다른 석불에서는 보기 드문 시설입니다. 지대석과 면석, 갑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석조불단.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석조불단.


    은진미륵과 마주 보는 사각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 장식을 얹었습니다. 정사각형 평면의 아래와 위 받침돌에 두껍고 굵직한 연꽃무늬는 전형적인 고려양식입니다. 가운데 받침에는 굵고 둥근 기둥을 세우고 위아래 양 끝에는 두 줄기를, 중간에는 세 줄기의 띠를 둘렀습니다. 중간 세 줄기에서 가운데 띠를 가장 굵게 들렀는데 8송이 꽃으로 장식했습니다. 2층의 화사석은 1층에 4개 기둥으로 지붕돌을 받치는데 빈양한 기둥에 비해 창 면적은 상대적으로 널찍하게 만들었습니다. 각 층의 지붕돌은 처마를 가벼운 곡선으로 올리고 네 귀퉁이마다 꽃 조각으로 부드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상부에는 불꽃무늬의 꽃봉오리 모양 장식이 있습니다. 968년(광종 19)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남한에서는 구례 화엄사 각황전 석등(국보) 다음의 크기입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에서 은진미륵과 머주보는 석등.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에서 은진미륵과 머주보는 석등.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의 석등. 4면에서 바라본 모습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의 석등. 4면에서 바라본 모습


    석탑은 석등과 배례석 사이에 위치하는데 전체 높이는 343㎝로 현재 4층까지만 남아 있지만, 원래 5층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중기단 가운데 하층 기단이 지하에 매몰되어 있었고, 상층기단은 하대갑석 상면에 올려져 있습니다. 상대중석 모서리마다 우주가, 우주와 우주 사이에는 탱주가 있습니다. 탑신부 옥개석은 3단의 층급받침이 조각되고, 상륜부는 특별한 조각이 없이 보주만 올려져 있습니다. 전체적인 제작형태로 보아 고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의 석탑. 4면에서 바라본 모습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의 석탑. 4면에서 바라본 모습


    배례석(拜禮石)은 길이 204cm, 너비 103cm, 높이 40cm의 직사각형 화강암으로 석탑과 함께 있는데 절을 찾은 불자들이 부처님께 합장하고 예를 갖추는 장소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직사각형 받침돌 형태로 윗면의 가운데 여덟 잎의 커다란 연꽃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약간 작은 연꽃 두 송이와 2개의 연 줄기를 조각했습니다. 옆면에는 안상(眼象)을 새긴 후 그 안에 버섯구름 모양을 새겨 넣었습니다. 원래는 많은 참배객을 통제하기 위해 성벽과 함께 만들어진 문 중에 하나라고도 합니다. 정교하고 장중한 조각이 오랜 세월에도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데 고려 시대 것으로 추정했다가 건축 양식상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배례석.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배례석.


    이어 미륵전은 적멸보궁처럼 건물에 불상이 없는 대신 통유리창 너머로 법당 안에서 은진미륵을 보며 예불을 올릴 수 있습니다. 대명광전이 건립되기 전에는 미륵전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미륵전 앞에는 윤장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파손되어 철거해 보수 중입니다. 윤장대는 돌리기만 하면 불교의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는 회전식 불경 보관대입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미륵전. 뒤로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이 보인다.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미륵전. 뒤로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이 보인다.


    관촉사 창건 당시 출입문 역할을 했던 석문은 미륵전 오른쪽에 있습니다.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문으로 일명 ‘해탈문’이라고도 부릅니다. 네모난 돌기둥을 양쪽에 세운 거 넓은 돌로 벽면을 만들었고 양 기둥 위로 길쭉한 장대석 5개씩 덮어 천정을 이룬 것으로 전체적으로는 사각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은진미륵을 보기 위해 참배객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동·서·남·북 사방에 이러한 석문을 두었다는데 지금은 동쪽 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석문의 제작 시기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관촉사 건립 시기와 같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석문 옆으로는 빨간색의 느린 우체통이 이채롭습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경내에서 바라본 석문.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경내에서 바라본 석문. 느린우체통이 이채롭다.


    이밖에 사천왕문을 오르는 계단 근처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다소 뜬금없는 추모비지만, 나름의 사연이 있습니다. 1953년 휴전협상 중 이승만은 갑작스레 반공포로를 석방하고, 거제를 비롯해 전국 포로수용소의 반공포로들이 일제히 풀려납니다. 당시 논산에도 포로수용소가 있었는데 이때 풀려난 이들 중 일부가 이승만이 하와이 망명 중 사망하자 이곳에 추모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관촉사였을까요? 풀려난 포로들 가운데 한국군에 재입대한 경우가 많았는데, 논산에 육군훈련소가 있었고, 은진미륵의 영험함, 1958년 이승만의 관촉사 방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종루.

    ▲ 천년고찰 논산 관촉사 종루.



    <논산시 관촉사>

    ○ 위 치 : 충남 논산시 강경읍 강경로66번길 28 (전화 041-736-5700)

    ○ 운 영 : 연중무휴 (일몰이전 관람 가능)

    ○ 입장 및 주차장 : 무료(취재일 현재)

     * 취 재 : 2025년 7월 31일 등

     


    < 참고문헌 >

    진정환.(2015).고려전기 신양식 석불의 전개와 조성배경. 미술사학연구, (287), 5-27.

    이명성외.(2005).논산 관촉사 석등의 훼손도진단 및 기원암의 성인적 해석. 보존과학회지, 17, 5-18.

    이소연 & 정광용. (2021). 자연과학적 분석을 통한 논산 관촉사석조미륵보살입상 청동풍탁 (靑銅風鐸)의 제작 기법 연구. 문화재, 54(2), 22-37.

    김방룡. (2022). 대전-충남 금강 문화권의 불교 문화와 사상. 충청문화연구, 27, 5-32.

    최선주. (2000). 고려 초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에 관한 연구. 미술사연구, 14,

    전통사찰총서 12 - 대전·충남의 전통사찰 1, 사찰문화연구원, 1999년

    충청남도지정문화재해설집, 충청남도, 2001년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정보(https://www.khs.go.kr)

    충남디지털문화유산(https://www.chungnam.go.kr)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https://www.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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