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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향기를 품은 영탑사

2020.09.13(일) 12:43:07가람과 뫼(caption563@naver.com)

상왕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영탑사는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하시고,
고려 충렬왕 때 보조국사가 중건하셨다 전해져 온다.
  
절골저수지 위에 자리한 영탑사는 초입부터 웅장한 고목들이 즐비하고
시원스레 뻗은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절집에 들어서는 이로 하여금 새삼 옷깃을 여미게 하는 청정함을 자아나게 하는 듯하다.
 
영탑사 입구
▲영탑사 입구
 

 
영천(靈泉)이라 새겨진 비석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니
정갈하게 정리된 마당끝 송림 아래 대웅전, 좌의 적묵당과 우의 인법당이 고즈넉한 모습이다.
 
대웅전
▲대웅전
 
적묵당
▲적묵당 
 
대웅전에 모셔진 범종은, 
'건륭 25년 경진 2월 가야사법당금종백근입조성야(乾隆 二十五年 庚辰二月 伽倻寺法堂金鍾百斤入重造成也)'라는 기록과, 
덕산·홍주·면천의 시주한 신도들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가야사가 불태워지며 이곳에 조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19호로 지정된 동종은
상대 지름이 31cm, 하대지름 46cm에 높이가 60cm이다.
음통은 없으며 상부에 작은 구멍이 나있고, 유곽 사이에 보살이 새겨져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범종
▲범종
 

 
대웅전을 나와 들른 인법당은 보물 제409 호로 지정된 '금동비로자나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연꽃 모양의 좌대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를 하고 있다.
연꽃 줄기마다 보살이 모셔져 있는 모습이 여느 곳과 달리 특이한 모습이다.
 
인법당
▲인법당
 
금동 비로자나 삼존불
▲금동비로자나삼존불
 
비 개인 하늘에 소나무숲을 거친 청량한 바람이 답답한 가슴을 시원스레 씻어준다.
언덕 위에 자리한 산신각과 요사채를 지나 약사여래불을 모신 유리광전으로 향하였다.
 
고려 말 무학대사가 바위에서 기이한 빛을 내는 모습을 보고 바위에 약사여래불을 조성하여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편안함을 도모하고자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마애약사여래불은
중생의 질병을 고치고 근심을 덜어줘 '누구나의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커다란 바위에 양각으로 새겨준 약사여래불은 약 3.5m 높이에
상투 모양의 머리와 길고 큰 눈과 코, 그리고 입과 귀,
아래로 내려올수록 펑퍼짐한 모습에 좀은 투박한 모습이
우리네 길을 걷다가 흔히 만날 수 있는 모습을 하고 계신 것이 친근함이 가득하다.
 
산신각
▲산신각
 
요사채
▲요사채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

유리광전 뒤 솔숲 사이로 오르니 암벽 위에 자리한 칠층석탑을 만났다.
본래 이 탑은 18세기 말에 연암당 지윤스님이 5층 석탑을 세우고 영탑이라 명하였는데,
1911년 중수시 칠층석탑으로 조성한 것이라 한다.
 
일설에는 대원군이 남연군 묘를 쓰기 위하여 덕산 상가리에 있는 가야사에 불을 질렀는데,
'가야사 스님들이 금동삼존불과 법당의 금종, 파손된 석탑을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하여 내려오는 여러 사례와 기록을 볼진대 영탑사와 가야사는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칠층석탑
▲칠층석탑
 
지나가는 빗방울 같은 것이 소나무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 게 심술을 부리는 듯하다.

잠시 바위에 걸터 앉아 비를 피하며 내려다 보는 절집의 모습이 고요하고 평화스럽다.
한 폭의 그림이다.

오가는 이 없는 적막함이 모처럼 나선 답사길에 정겨움을 더한다.
싱그러운 공기의 상쾌함이 가슴에 가득찬다.
한시라도 빨리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왔으면 싶다.
 
영탑사 전경
▲영탑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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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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