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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망국의 한을 품고 망명길에 오른 백제인

무령왕 서거·성왕 즉위 1500주년, 찬란한 백제 역사 속으로 - 27)일본에 전한 백제문화 ②

2023.10.26(목) 15:12:37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청수사.

▲ 청수사.



지난번 일본열도에 전해준 백제문화에 대해 알아봤었죠. 오늘은 일본열도로 이주한 백제인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혹시 일본 교토(京都) 여행 다녀오신 분 있나요? 많이 다녀오셨네요. 교토는 백제인들이 건너와 도시 기초를 만든 곳 중 하나입니다. 땅바닥에 기둥을 박아 세우고 그 위에 본당과 연결된 부타이(舞臺)로 불리는 테라스가 유명한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저 충청이는 교토 여행 중 제일 기억에 남아요. 여행할 때 몰랐지만, 나중에 그 절이 백제 이주민의 후손이 세웠다고 하더라고요. 

이처럼 일본열도엔 백제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답니다. 일본열도로 이주한 백제인 중 우리가 가장 많이 들어본 이름은 왕인박사(王仁博士)일 것 같아요. 들어 보셨죠? 왕인박사. 왕인박사가 『논어』와 『천자문』등 서적을 일본열도로 가지고 건너가면서 본격적인 유학이 전해졌답니다. 

백제인의 불교 전래도 알고 계셔야 해요. 일본열도에서 아스카 문화가 형성되고 발전하게 된 계기가 바로 백제로부터의 불교 전래랍니다. 일본열도에 처음 불교가 전래한 때는 538년으로, 백제 성왕이 불상과 경전을 노리사치계(怒利斯致契)를 통해 왜로 보내어 불교를 전래하였어요.  

참. 여러분이 좋아할 만한 백제의 연예인도 일본열도로 진출했어요. 한류의 원조 연예인은 바로 미마지(味摩之)라는 인물이랍니다. 그는 612년 중국 오나라에서 배운 기악을 일본에 전해주었어요. 미마지의 기악은 불교와 관련된 내용을 흉내 내는 몸짓의 춤으로 연출하는 가면극을 말해요. 지금은 미마지의 기악은 남아있지 않아 그 내용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가면들은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백제인이 일본 열도로 이주하여 활동했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일본 열도로 이주한 백제인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나라를 잃어버렸던 망명인들이었답니다. 660년 사비성의 함락과 663년 백제부흥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많은 백제인들이 왜로 망명길에 올랐어요. 일본 측 기록에 나타난 백제 멸망 후 일본열도로 이주한 백제인의 수는 4,000명 이상이라고 해요.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없지만, 일본열도로 건너가던 그들은 비통한 심정이겠죠.

『일본서기』에는 앞서 언급한 망명인들이 조국과 고향을 뒤로하고 탈출하는 절망한 모습이 너무도 잘 기술되어 있어요. “백제의 이름은 오늘로서 끊어졌다. (조상의) 분묘가 있는 곳을 어찌 또 갈 수 있겠는가”하고 절규하고 있듯이 일본열도로의 망명길은 명명 백제인들에게는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거예요. 그러나 이들이 일본열도에서 백제문화를 계승하고 있었답니다. 그 흔적들이 지금 제 기억에 남아 있는 기요미즈데라(淸水寺)이고요. 
/이경복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내포문화진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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