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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모두 소중한 인연입니다

시월의 부여 궁남지에서

2023.10.24(화) 21:28:40 | 황토 (이메일주소:enikesa@hanmail.net
               	enikesa@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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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월, 궁남지

능수버들 이파리가 바람이 부는 대로 따라간다. 차르르 차르르 서로 부비면서 내는 소리가 사찰전각에 매달린 풍경소리 같다. 나는 눈을 멍하게 뜨고 아까부터 들리는 아련한 오카리나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따금 들었던 노래, 이선희의 ‘인연’이다. 정자처럼 생긴 쉼터엔 햇살이 살짝 비껴 은은한 빛이 적당하다. 기둥에 몸을 기대고 앉아 오카리나 연주를 듣고 있자니 내게 인연이 된 ‘인연’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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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남지에 스며들다.

약속해요 이 순간이 다 지나고 다시 보게 되는 그날 / 모든 걸 버리고 그대 곁에 서서 남은 / 길을 가리란 걸 / 인연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 내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다시 올 수 있을까요 / 고달픈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인 걸 / 이 사랑이 녹슬지 않도록 늘 닦아 비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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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남지
 
인연이란 노래는 지난 봄, 튀르키예 여행 마지막 날 하루를 남겨두고 일행들과 버스 안에서 들은 적이 있다. 연인과 부부, 자매, 친구와 둘씩 모두 7팀 14명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진녹색의 풍경을 숨 가쁘게 바라볼 때였다. 울창한 나무가 끝없이 이어지는 곳, 나무와 나무 사이가 빽빽한 곳에는 아예 검초록이었다가 빛을 받는 나무들이 순간순간 허공에서 눈부셨다. 노래 1절이 끝나고 전주곡이 나오는 중에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가 이렇게 같이 만나 밥을 먹고 열흘을 함께 지내게 된 아주 특별한 인연에 대해서. 차 안에서 여행으로 모인 우리는 음악과 풍경이 주는 분위기에 나른해지면서 옆에 있는 인연이 더 없이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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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남지의 추억은 벌써 그리움이다. <인연>을 연주하는 오카리나 연주자

시월이 하루하루 아쉽게 흘러간다. 10월은 왜 십월이 아니고 시월일까. ‘ㅂ’이 사라진 시월은 그래서 뭔가 특별히 여유로운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포근했던 시월의 날씨는 더없이 좋았다. 오카리나 연주는 계속 이어졌다. 처음엔 관리하는 곳에서 음악을 틀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졸린 듯 나무와 나무사이를 계속 보고 있자니 그 가운데서 오카리나를 직접 연주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머, 어쩌면 저리 매끄럽게 불 수 있을까. 감탄하면서 계속 그곳을 응시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잠시 멈춰 연주자를 바라보기도 했다.

취한 듯 만남은 짧았지만 빗장 열어 자리했죠 / 맺지 못한데도 후회하진 않죠. 영원한 건 없으니까 / 운명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 내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다시 올 수 있을까요 / 하고픈 말 많지만, 당신은 아실 테죠 /먼 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다신 놓지 말아요 /이생에 못 한 사랑 이생에 못한 인연 / 먼 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다신 놓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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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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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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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

내가 앉은 자리, 그러니까 쉼터같은 이 자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궁남지의 포인트 지점으로 손색이 없다. 커플인 듯한 남녀가 걷다가 그곳에서 사진을 찍더니 사람들이 계속 그 자리를 기다려 포즈를 취한다. 그 곳에 아기를 안고 지나가는 모습이나 한 가족이 걸어가는 모습은 의도하지 않은 사진이어서 더 자연스럽다. 찍은 사진을 당사자에게 건네고 싶을 만큼. 어쩌다 나는 남의 가족사진을 흐뭇하게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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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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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과 나무 사이의 포룡정

연주소리가 멈췄다. 연주자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 ‘포룡정’의 기와가 멋들어지게 보일 듯 말 듯 했다. 가을햇살에 어르신의 나들이는 얼마나 특별할까. 풍경만으로 시간이 머물고 넉넉함이 느껴지는 궁남지. 포룡정을 지나 그네타는 곳에서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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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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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년을 잠자고 깨어난 씨앗, 지극히 오래된 생명의 종자. 그 꽃은 ‘산에 들에 언덕에’ 피어나지 아니한다. 심연에는 영원의 처음이 퇴적을 거듭하고, 점차 물로 타오르는 생명은 곧은 가지 위로 꽃을 피운다. 백제의 고독한 혼을 보여주는 연꽃은 다 지고 연이파리마저도 갈색으로 말라버렸다. 연밥도 다 익었는데 아직 남은 수련이 못다 핀 꽃을 피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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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가 회전차로에서 선화공주와 서동의 모형이 인사를 한다. 첨엔 무심히 봤는데 360도 돌아가며 허리를 굽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디에서도 선화공주와 서동 ‘천년의 사랑’은 계속 이어진다.        


궁남지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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