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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최초의 한류, 백제 문화

무령왕 서거·성왕 즉위 1500주년, 찬란한 백제 역사 속으로 - 26)일본에 전한 백제문화 ①

2023.10.17(화) 22:17:01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일본 아스카데라.

▲ 일본 아스카데라.



지난 시간에 정림사지의 가람배치가 일본 오사카의 시텐노지[四天王寺], 아스카데라[飛鳥寺]에서도 똑같이 확인되었다고 말씀드렸죠. 그럼, 언제 일본열도에 백제 불교문화가 전래되었을까요. 학계에서는 6세기 전반부터 일본열도에 불교를 전파했다고 해요. 특히 백제의 위덕왕은 당시 일본 야마토[大和]조정에 불교 사찰을 짓는 데 필요한 기술자를 여러 명 파견하였다고 해요.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사찰인 아스카데라도 백제의 지원 아래 창건되었어요. 그러니 일본 불상도 백제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에요.

여러분, 국립박물관에 있는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보신 적 있으세요. 아, 다행히 몇 분은 본 적이 있군요. 그것과 쌍둥이처럼 닮은 미륵반가사유상이 일본 교토의 고류지[廣隆寺]에 있답니다. 일본 국보 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소나무인 적송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이뿐만 아니라 호류지[法隆寺]엔 ‘백제관음’이라 불리는 백제관세음보살상, 금당석가삼존상 등 많은 백제의 영향을 받은 불상들이 남아 있답니다.      

불상뿐만 아니라 당시 백제 문화 전래로 인해 일본열도의 의식주가 크게 변화하였답니다. 백제는 직조 기술자인 봉의공녀(縫衣工女) 진모진(眞毛津)을  보내 고급 비단을 직조하는 기술을 일본열도에 전해주었어요. 그래서 『양직공도』의 왜 사신과 백제 사신을 비교해 보면, 의복의 차이를 느낄 수 있어요. 왜 사신을 보면, 옷을 대충 두르고 신발도 신지 않고 있지만, 백제 사신은 비단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아마 당시 왜인에게 백제인의 옷은 선망의 대상이었을 겁니다. 

일본의 음식 문화와 주거 문화도 백제의 영향을 받았어요. 일본 오사카 일대에는 백제에서 전파된 5세기 무렵부터 새롭게 부뚜막과 벽주(壁柱)건물이 많이 발굴되었어요. 특히 부뚜막의 등장은 일본인들에게 요리의 혁신을 가져다주었답니다. 지금까지 물고기나 조개 등 재료를 단순히 구워먹었다면 부뚜막과 찜기의 전파는 음식을 쪄 먹는 새로운 방식을 가져오게 했어요. 또한, 당시 널빤지로 만든 지붕을 풀로 이은 정도였던 수준이었던 일본열도의 건축문화에도 새로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백제 건축의 영향으로 땅에 구멍을 파서 기둥을 촘촘히 세우고 벽을 세우는 벽주건물도 등장했어요. 이 건축기술로 화려한 사찰과 같은 건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무덤양식, 제방 축조 기술, 제철기술은 물론 미마지와 같은 음악, 논어와 천자문 등 한자, 의학, 그리고 말 기르는 법, 매 훈련 법 등 수많은 백제 문화가 일본열도에 전래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흔적들이 일본 곳곳에 남아 있어요. 이들의 흔적은 사람을 통해 남겨졌겠죠. 사료의 부족으로 잘 알 수 없지만, 아마 백제인들은 스스로 이주하기도, 강제적으로 이주하기도 했을 거예요. 전쟁이나 내란 등으로 백제 국내가 어지러웠을 경우에도 안정을 찾기 위해 바다를 건넜을 겁니다. 그 바다 항해에 따르는 여러 가지 위험을 감당하면서 희망을 품고 일본 열도로 건너갔겠죠. 다음에는 일본열도로 건너간 백제인들에 대해 알아볼까요. 
/이경복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내포문화진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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