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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백제 사찰의 진수…정체된 기품 돋보여

무령왕 서거·성왕 즉위 1500주년, 찬란한 백제 역사 속으로 - 25)부여 정림사지

2023.09.25(월) 17:46:02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정림사지. /부여군

▲ 정림사지. /부여군



오늘은 부여 시내 한 가운데 있는 정림사지를 가볼까요? 정림사지는 백제 사찰을 대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유적이에요. 자, 저기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보이네요. 저 석탑은 백제의 슬픔을 담고 있어요. 석탑의 1층 탑신에는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적어 넣은 명문이 있어요. 그래서 한때 정림사지 석탑을 소정방이 백제를 평정했다고 해서 ‘평제탑(平濟塔)’으로 불리기도 했어요. 아픈 역사가 담긴 슬픈 이름이에요. 그래도 정림사지 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더불어 백제의 빼어난 석조기술을 보여주고 있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랍니다. 그런데 현재 정림사지에는 석탑 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원래는 석탑자리에 목탑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 믿어지세요? 정림사지를 발굴조사 한 결과, 석탑을 만들기 위해 흙을 층층이 다져서 만든 판축토층이 확인되었어요. 이러한 판축토층은 석탑을 만들 때 보다, 목탑을 만들 때 사용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정림사 창건 당시에는 석탑이 아닌 목탑이 건립되었다가, 7세기 대에 석탑으로 다시 만들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답니다. 

그 목탑 안에는 조각품들이 있었나 봐요. 정림사지에서 크고 작은 흙으로 만든 소조상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소조상들은 원래 목탑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정림사지가 처음 창건되었을 무렵에는 목탑이 있었고, 그 내부는 흙으로 상을 빚어 만든 소조상으로 장엄하게 장식되어 있었을 겁니다. 상상만 해도 대단하죠. 

그리고 정림사지에서 저 충청이가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바로 기와로 만든 기단장식이에요. 사찰 건물의 외관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기와를 쌓아서 모양을 냈어요. 이를 ‘와적기단(瓦積基壇)’이라고 하는데, 백제가 처음 만들어 낸 것이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백제인의 예술적 감각이 대단해요. 

또 보여드릴게 있어요. 여러분, 여기로 와보세요. 여기는 중문자리인데요. 여기서 바라보면 석탑과 그 뒤로 건물이 보이죠. 신기하게도 정림사지는 중문과 불탑과 불전, 강당이 남북 일직선상에 위치해 있어요. 그런데 신라의 대표적인 사찰인 불국사는 다보탑과 석가탑, 두 개의 탑이 건물 앞에 있죠. 이렇게 백제와 신라는 석탑의 수와 건물의 배치가 다르답니다. 석탑이 하나만 있고 건물의 배치가 모두 다 일직선상인 정림사지 가람배치는 백제에서만 보여요.  

그런데 정림사지와 같은 가람배치는 일본 오사카의 시텐노지(四天王寺), 아스카데라(飛鳥寺)와 도유라데라(豊浦寺)에서도 똑같이 확인되었어요. 연구자들은 정림사지 가림배치가 일본 사찰의 가람배치의 가장 직접적인 모델이라고 해요. 백제가 일본에 사찰 건축에 많은 영향을 주었나 봐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백제와 일본의 교류관계. 이제부터 설명해 드릴게요.
/이경복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내포문화진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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