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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전설과 역사가 넘나드는 고마나루

백제의 도읍지로 고마나루, 곰나루(웅진), 곰주(웅주), 공주가 되다

2023.09.15(금) 16:32:35 | 화목하게은혜롭게 (이메일주소:jhj86240@naver.com
               	jhj86240@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지금 공주는 매우 핫한 지방도시가 되었습니다.
지방도시의 소멸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회자되고 있지요.
옛 명승을 되찾아 가는 공주를 곰주(웅주), 곰나루(웅진), 고마나루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고마나루는 연미산 아래 유유히 굽어도는 금강변 맞은 편에 자리잡은 백제의 전설입니다.

고마나루 웅진단

▲ 고마나루 웅진단


고마나루 맞은편의 연미산과 금강변 백사장

▲ 고마나루 맞은편의 연미산과 금강변 백사장


연미산에서 바라본 금강 물줄기

▲ 연미산에서 바라본 금강 물줄기


산이나 강이나 곰 이야기가 녹아들지 않으면 공주는 존재 이유가 빈약합니다.

금강변 고마나루와 고마나루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연미산은 곰 이야기의 한 세트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고마나루를 가면 연미산을 올라 가 보아야 하고 연미산을 올라 가 보면 고마나루를 반드시 찾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

연미산 중턱에는 곰굴이 있습니다.

곰굴 안내판

▲ 곰굴 안내판


연미산 곰굴

▲ 연미산 곰굴


연미산 곰굴

▲ 연미산 곰굴


곰굴은 나무꾼을 사랑한 웅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담긴 곰나루의 전설이 시작된 곳입니다.
암곰이 처음 본 나뭇꾼에게 사랑을 느껴 납치하듯 동굴에서 강제로 동거하면서 새끼도 두 마리씩이나 낳은 후 도망가지 않으리라 믿었던 나뭇꾼이 도망치자 처절한 몸부림으로 새끼 두 마리와 함께 금강물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의 생가(生家)이지요.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1


그래선인지 연미산을 바라보며 귀 기울이면 지금도 암곰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곰굴 속의 암곰

▲ 곰 가족이 투신한 연미산 아래 금강


곰 가족이 투신한 후 이 강을 건너는 나룻배가 풍랑으로 뒤집히는 일이 잦아지자 고을 사람들은 강 옆에 사당(웅신당)을 짓고 곰의 넋을 달래 주었답니다.
고마나루에서 6C 경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돌로 만들어진 곰상이 출토되었지요. 그 곰상은 현재 공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그 자리에 웅신당(熊神堂)을 지어 숭배의 예를 올린답니다.

곰사당내 돌곰상(모조품)

▲ 곰사당내 돌곰상(모조품)


고마나루 웅신당과 대문

▲ 고마나루 웅신당과 대문


웅신당(곰사당)

▲ 웅신당(곰사당)


웅신단비

▲ 웅신단비


금강의  물이  남동편으로  휘어돌고  餘美山 올려다  뵈는  한갓진  나루터
공주의  옛  사연  자욱하게  서린  곳
입에서  입으로  그냥  전하여온  애틋한  이야기
- 웅진단비에 새겨진 처음 구절 -


안내 간판을 따라 발걸음을 고마나루 전망대로 옮겨 봅니다.
전망대가는 도중에 울창한 솔숲을 지나고 돌곰상들도 많이 만나 안부를 전해 봅니다.
솔숲길은 황토흙으로 잘 다져 있어 맨발로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근처 어르신들이 맨발로 산책하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2


전망대로 가는 소나무 숲길

▲ 전망대로 가는 소나무 숲길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3


소나무 사이에서 외로운 은행나무의 풍성한 결실

▲ 소나무 사이에서 외로운 은행나무의 풍성한 결실


솔숲 멀리 보이는 곰사당

▲ 솔숲 멀리 보이는 곰사당


솔숲길

▲ 솔숲길


대나무 병풍에 둘러싸인 솔숲

▲ 대나무 병풍에 둘러싸인 솔숲


솔숲 속에 조성된 돌곰상들

▲ 솔숲 속에 조성된 돌곰상들


솔숲에서 맨발로 산책하기

▲ 솔숲에서 맨발로 산책하기


솔숲길에서 청솔모를 만났습니다. 다람쥐는 귀여운 모습이지만 청솔모는 사납고 거칠은 야성을 보입니다. 그래도 청솔모를 만나니 솔숲이 왕성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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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나루는 곰나루의 전설과 함께  입구에서 전망대까지 모래 언덕 위에 조성된 울창한 솔숲, 그리고 연미산 아래 금강변에 길게 자리한 고운 백사장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앞으로 길게 뻗은 백사장과 연미산이 한 폭의 그림과 같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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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편방향 백사장

▲ 연미산 아래 동편방향 백사장

전망대 옆에는 금강의 수신
(水神)에게 제사를 올리던 웅진단 터(熊津壇址)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웅진단은 공식적인 국가의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고  이 제사를 웅진단제라 하였답니다이는 계룡산 산신제(山神祭)와 함께 유교식으로 지내는 수신제(水神祭)라 하네요.

고마나루 전망대 옆 웅진단 터

▲ 고마나루 전망대 옆 웅진단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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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는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예요.

백제(문주왕)는 첫 번째 도읍지였던 한성(몽촌토성 한강유역)을 고구려(장수왕) 군에게 빼앗기고 새로운 도읍지를 물색하던 중 475년에 험준한 산지가 주변을 애워싸고 금강으로 둘러싸여 방어하기 좋은 천혜의 요새인 웅진으로 도읍지를 옮기고 60여년간 백제의 중흥기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7


고마나루는 단순히 경치좋고 강 건너 반대편 마을로 가는 여느 나루터와는 달리 백제의 숨결이요 심장이며 수 많은 역사를 품은 큰 마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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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으로 천도 후 백제는 금강을 따라 해상 무역을 활발하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문화를 받아 들여 일본으로 전해 주었음이 이 곳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에서 확인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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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나루는 왕들의 은신처였습니다.
의자왕의 마지막 항전도 이곳에서 있었고 1011년 거란족의 침입으로 나주로 피난갔다가 잠시 머물렀던 고려의 현종 임금과 1624년 이괄의 난으로 6일간 머물렀던 조선의 인조 임금의 피난처이기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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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앞에 황토흙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발자국이 눈에 띕니다사람 발자국인지 곰 발자국인지 분간할 수 없는 초대형 발자국이예요.
분간하기 어려운 건 숨어 있는 역사의 진실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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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두번째 도읍지로써 곰에 얽힌 전설과 수많은 역사가 압축된 이곳 고마나루에서 멀리 강 건너 연미산에서 울려 퍼지는 곰의 절규를 듣고 울창한 솔숲길을 거닐고 황토흙을 밟으면서 백제의 숨결을 느껴 보았습니다.

 

전설과역사가넘나드는고마나루 12

충남 공주시 웅진동 산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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