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휼청>
충청수영성의 서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진휼청이 보입니다.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 제412호로 지정된 진휼청은 흉년이 들면 충청수영 관내의 빈민 구제를 담당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진휼청 주변의 가지가 무성하고 뿌리 깊은 나무들이 충청수영성의 경관을 수려하게 만들어 줍니다.
<영보정>
충청수영성에서 가장 높고 가장 풍광이 수려한 곳에 영보정이 들어서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절경에 자리 잡은 이 정자는 1504년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충청수영이 폐지되면서 영보정도 소실되었다가 최근에 새로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다산 정약용과 백사 이항복을 비롯한 조선의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문을 남기고 영보정을 조선 최고의 정자로 평하기도 하였답니다.
<영보정에서 내려다 본 오천항>
충청수영성의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영보정에서 오천항을 내려다보면 수많은 배들이 포구를 점점이 장식하고 있어서 마치 이탈리아의 나폴리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줍니다.
오천항은 천연적으로 외부 파랑(작은 물결과 큰 물결)을 차폐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여 백제 때부터 고려, 조선시대까지 서해를 침범하는 오랑캐를 무찌르기 위해 군선이 머물렀던 큰 군항의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천항에선 키조개와 갑오징어 같은 어류들이 많이 잡혀서인지 키조개와 갑오징어를 넣은 칼국수를 판매하는 곳이 많았고 맛도 아주 좋았습니다.
<충청수영성 터>
왜구의 침탈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조선 전기에 축조되었던 충청수영성은 충청도 해안을 방어하는 최고 사령부 역할을 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많은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지만, 지금은 서문과 내삼문, 객사만이 남아 있고 대부분은 소실된 상태입니다.
<공적비석>
충청수영성의 객사 옆에 많은 비석이 일렬로 늘어서 있습니다. 이 비석들은 그동안 충청수영에 부임했던 수군지휘관들의 업적을 기리고 기념하기 위해 세웠던 것들입니다.
<내삼문>
공해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내삼문은 충청수영의 수군절도사가 집무하던 공해관의 출입문 역할을 하던 문으로 세 개의 문으로 되어 있어서 삼문이라고 부릅니다. 이 내삼문은 현재 객사 곁에 세워져 있지만 원래는 객사와 별도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보존 차원에서 객사 곁으로 옮겨 놓았답니다.
<객사>
운주헌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충청수영 객사는 수군절도사가 왕을 상징하는 전패(조선 시대, 왕의 초상을 대신하여 ‘殿(전)’ 자를 새겨 지방 관청의 객사에 세운 목패)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으며,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의 숙소로도 사용 되었던 곳입니다. 이 건물은 본래 오천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는데 현재는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보존중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