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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우리가 본받아야 할 故 정주영 회장의 3대 정신

내포칼럼 - 편세환 서산문화원장편세환

2023.04.07(금) 13:58:58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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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문화원장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큰 축을 이룬 현대 명예회장 고 정주영의 정신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개척정신, 혁신 정신, 창의 정신이다.

그는 1915년 함경북도 통천 아산리에서 출생하여 17세 되던 해, 부친이 소 판 돈 70만 원을 몰래 가지고 가출한 분이었다. 모든 일에 성실한 그는 서울에서 쌀 배달원을 시작으로 쌀 소매점, 현대자동차 수리점, 현대 토건 회사 설립 등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면서 1973년 현대중공업을 설립, 각종 중장비를 생산하여 우리나라 경제 부흥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1976년에는 포니 자동차를 생산 수출하는 기업인이 되었다.

그의 불굴의 개척정신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자서전과 같이 중공업, 건설업, 자동차 생산, 조선업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성공할 수 있었다. 물론 한국전쟁, 중동 붐, 정부 지원 등 주변 여건의 호기도 있었지만 하면 된다는 신념이 더욱 강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조선 사업을 위해서 거북선이 그려진 오백원짜리 지폐를 들고 영국의 바글레스 은행을 찾아가 그들을 설득, 자금을 융자받아 황량했던 울산 바닷가에 조선소를 건설했다는 믿기 어려운 창의력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주영 회장은 목표를 세우면 근검, 절약과 신용을 바탕으로 끝까지 매진하는 강인한 정신이 성공의 비결이라 할 것이다.

서해안에 오밀조밀한 리아스식 해안을 끼고 있는 충남은 과거부터 오랜 기간을 거쳐 많은 곳에 크고 작은 간척이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현대 건설도 여러 곳에 간척사업을 하였지만 그중 대표적인 곳이 천수만의 A.B 지구 간척사업이다.

이 사업은 단순한 간척사업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새 역사를 창조한 사업이다. 

A 지구로 불리는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와 홍성군 서부면 궁리를 연결하는 방조제 공사에 있어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가장 큰 난제였다. 약 4백여m를 남겨 놓은 상태에서 유속(流速)은 초속 5.2m에 달했고, 밀물 시 최대 유속은 초당 8m에 달하는 상태로 20톤 이상의 돌덩이를 계속 투입해도 떠내려가는 정도였다. 이때 고 정주영 회장이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이 유조선 공법이었다. 고철로 쓰려고 스웨덴에서 사들인 유조선(길이-332m, 폭-45m, 높이-27m)을 이용, 마지막 물막이 공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다. 

본래 이 간척공사는 1983. 7. 1일 착공하여 공기 45개월 완공을 목표로 추진했으나 유조선 공법을 이용, 공기를 무려 36개월이나 단축, 불과 9개월 만에 완공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이루었으며 공사비도 그 당시 280억 원을 절감할 수 있던 창의 정신으로 인한 쾌거였다.

이로써 ‘정주영의 유조선 공법’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간척사업 물막이공법의 새 역사가 천수만 간월호 방조제에서 탄생 된 것이다. 사실 현대에서 간척에 필요한 각종 중장비를 직접 생산하지 않았다면 이 방조제 구축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또 정 회장의 개척정신의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항공기를 이용한 농사를 실천한 것이다. 새로 조성된 간척지는 지반이 연약하여 영농에 필요한 장비가 들어갈 수 없었고, 면적이 광활할 뿐만 아니라 영농시기에 맞추어 농작업을 할 수 없었다. 고심 끝에 항공기를 이용한 영농을 계획하고 간척지 일부에 길이 400m, 폭 25m 활주로 2개를 건설하고 미국에서 농사용 비행기 3대를 사들여 항공기를 이용한 영농 방법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것이다. 이로써 종자파종, 비료살포, 농약과 제초제 살포 등 다양한 농작업을 비행기를 이용, 광활한 면적의 영농을 쉽게 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역사적 사실은 1001마리의 소 떼를 정 회장이 직접 몰고 북한을 방문한 사실이다. 간척 농지에서 생산되는 볏짚을 이용, B 지구 간척지에 목장을 설치하고 한우를 사육하기로 결정, 창리 35-2번지의 농토 711.455m2 (215.216평)에 축사와 기타 건물을 짓고 한우 2.584두를 입식 사육하였다. 여기에서 생산된 소를 싣고 1998년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판문점을 넘어 방북한 것이다. 당시 83세의 정 회장이 50대의 트럭에 한우를 싣고 직접 판문점을 넘는 장면은 국내뿐만 아니라 외신에서도 크게 보도된 바 있다. 정 회장은 방북의 소회를 밝히는 자리에서 ‘이번 방북이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하였다. 결과적으로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가 풀리고 민간 차원의 경제협력과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금강산 관광개발 사업과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었다. 또 2000년도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었다.

이같이 고 정주영 회장의 개척정신, 창의 정신, 혁신 정신은 우리 모두 본받아야 할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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