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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양대리, 서슬 푸른 역사의 금맥

윤성희의 만감(萬感)

2022.12.23(금) 14:11:53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양대리서슬푸른역사의금맥 1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 57번 국지도변에는 한적한 시골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그 길 한 켠에 ‘삼일독립만세운동기념탑’<사진>이 우뚝 솟아 있다. 도심에서 한참이나 비켜난 이곳에 웬 만세운동기념탑이라니!

일제 강점기의 이 산골짜기에는 500여 가구에 주민이 3,000명이나 살았고, 헌병 주재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드니 골짜기에 장(양대장)이 열렸고 학교(광명학교)가 세워졌다. 우체국이 생겼고, 당시 충남에는 두 군데밖에 없다던 소방차까지 배치됐다. 충청도 전체 채굴량의 절반이나 차지하고 있던 ‘금광’ 덕분이었다. 엘도라도를 꿈꾸며 전국 각지에서 금을 좇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룰 수밖에 없을 터였다.

황금광(黃金狂) 시대였다. 인생 역전을 꿈꾸는 시정 군상들이 넘쳐났다. 황금 열풍은 남녀노소, 직업 귀천을 가리지 않고 세상 사람들을 들뜨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곳은 원초적 황금 본능만 좇는 평범한 자본 세상이 아니었다. 거기에 생생히 살아있는 역사의 함성이 있던 것이었다.

역사는 박창신(朴昌信), 한근수(韓根守), 안은(安銀), 백학서(白學西)를 비롯한 ‘직산금광’의 광부들 이름을 오롯이 새겨두고 있다. 이들은 치밀한 준비 끝에 1919년 3월 28일 6시 30분 광부들의 근무 교대 시간을 이용하여 갱구에서 200여 명의 젊은 광부들을 모았다. 그리고 전날 박창신의 집에서 밤을 세워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와 행진을 감행했다. 이날 금광 광부들의 독립만세 운동은 충남에서 최초로 순국자가 발생할 만큼 치열하고 격렬하였다.

당초 광부들이 꾸던 꿈의 빛깔은 황금빛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장의 광부였을망정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그들은 꿈의 빛깔을 바꿀 결기가 있었다. 그냥 광부가 아니었다. 엘도라도의 누런 욕망을 날카로운 구국의 열망으로 시퍼렇게 벼려낸 애국 광부였다. 이날 광부들의 만세 시위에 대한 간결하고도 적확한 기술이 역사학자 신용하 교수의 문장으로 양대리 만세운동 공원에 우뚝 솟아있는 ‘삼일독립만세운동기념탑’에 음각되어 있다.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변화했고, 변한 것 같지만 또 그대로인 곳이 양대리 마을이다. 나는 거기서 결코 묻혀 버려서는 안 될 역사의 서늘한 금맥을 본다.
/윤성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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