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충청도 양반인가?
▲ 아산 외암민속마을 입구
▲ 아산 외암민속마을 저잣거리 표지석
충청 고유격식인 반가(班家, 양반의 집안)의 고택과 초가 돌담, 정원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다량의 민구와 민속품까지 보유하고 있다. 또한 가옥 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 지명을 따서 참판 댁, 병사 댁, 감찰 댁, 참봉 댁, 종손 댁, 송화 댁, 영암 댁, 신창 댁 등의 택호가 정해져 있어 눈길을 끈다.
▲ 농경문화의 상징, 소와 달구지
또한 마을 뒷산 설화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끌어들여 연못의 정원수나 방화수로 이용하고 있어 친수(親水)의 지혜까지 엿볼 수 있다. '외암'이라는 마을 명칭은 외암리의 서쪽에 있는 ‘역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 지난 시절 모습 그대로
이곳 역말에는 조선초기부터 이미 시흥역이 있었고, 외암마을은 이 시흥역의 말을 거두어 먹이던 곳이었다. 그래서 ‘오양골’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이 오야에서 ‘외암’이라는 마을명이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는 것이다.
▲ 과거엔 떵떵거렸던 참판 댁이었지 싶은
온양 고을의 안산(案山)인 설화산은 금북정맥(錦北正脈)에 속하는 산악으로 광덕산에서 갈라진 지맥이다. 다섯 봉우리가 솟아서 ‘오봉산’이라고 한다. 이 설화산 반대편 자락에는 조선 초기 청백리(淸白吏)로 유명한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선생이 살았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으로 맹씨행당(孟氏杏壇)이 남아있다.
▲ 예전엔 농사만이 살길이었다
‘충청도 양반’이라는 속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외암민속마을은 마을의 터가 좋아 ‘한국의 살기 좋은 마을 1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농업에 종사,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 전통 짚풀공예 체험교육장
또한 외암민속마을을 찾아오는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 거리까지 제공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장승제를 지내고, 10월에는 짚풀 문화제, 11월에는 동지 행사를 하는 등 볼거리 또한 지천이다.
▲ 짚풀공예 실연 모습
외암민속마을 앞에는 조선시대 시장인 저잣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먹거리 및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저잣거리’는 이런저런 상품을 파는 가게가 죽 늘어서 있는 거리를 뜻한다. 예전엔 지금처럼 TV나 인터넷, SNS와 같은 다양한 놀이문화가 없었다.
▲ ‘설화산도 식후경’, 즐비한 식당에서 해결
그래서 저잣거리에 나가봐야 그나마 눈요깃거리라도 찾을 수 있었다. 기자가 외암민속마을을 찾은 날은 일요일 오전이었다. 처음엔 다소 한적했으나 오후 접어들면서부터 관광 인파로 북적였다. 짚풀 공예 실연 모습이 정겨웠으며 외암민속마을을 정겹게 포용하고 있는 설화산 주변의 풍광 또한 맑고 수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 민들레 역사문화체험관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고 소문난 맛집에서 먹는 점심 역시 꿀맛이었다.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문화를 가꾸어 가는, ‘한국관광 100선’에도 빛나는 외암민속마을에서 모처럼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다 보니 하루해도 어느덧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 외암민속마을 저잣거리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