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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광산김씨 논산 입향조 김약채 숭원재와 김국광 모선재 충남 논산여행

2022.03.24(목) 14:54:10 | 마패 (이메일주소:faron@hanmail.net
               	faron@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 논산 연산면 고정리 수락산 자락에 고려말 조선초의 문인으로 공민왕때 동진사로 문과에 급제하고 우왕때 좌사의대부에 오르고 조선이 개국 한후 정종때 대사헌을 역임하고 태종때 충청도 관찰사로 재임히면서 논산에 터를 잡은 김약채를 모시는 숭원재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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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 입향조로 숭원재에 모셔진 김약채는 의기가 있는 인물로 고려 우왕 14년 1388년 1월에 조반이 옥사에 갇혀 염흥방이 조반을 가혹하게 고문하여 거짓 자복을 받아내려고 하자 혼자서 불가하다고 주장하여 고문을 중지시키고 조반을 석방시켰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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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해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개경으로 들이치자 지신사로 임명되었던 김약채는 이에 항의 상소문을 올렸는데 정권을 잡은 이성계의 휘하 사헌부에 의해 혁명에 항거했다는 죄를 물어서 귀향을 보내는 처분을 받게 되어 고려말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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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개국 한후 정종2년 1400년 좌산기상시로 삼봉 정도전 대사헌 권근과 함께 훈친의 사병혁파와 병권의 중앙 집중을 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려서 이를 시행시키고 대사헌으로 임명되었으나 태종이 집권하면서 파직되었다가 1404년 태종 4년 충청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사후 예조판서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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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원재
김약채 재실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1길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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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 논산 입향조 김약채를 모시는 숭원재 언덕 아래에는 논산 입향조 김약채의 증손자인 김국광의 장남인 김극뉴에게 시집을 온 의령남씨의 재실로 충남 문화재자료 제378호로 지정된 연산 영사재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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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뉴는 세종18년 1436년에 태어나 대사간과 병조참판을 지냈는데 김극뉴의 묘소는 순창에 자리잡은 조선8대 명당으로 손꼽히고 있고 고정리에는 숭원재 오른편에 그의 부인인 의령남씨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고 의령남씨를 모시는 재실인 연산 영산재가 숙종 15년인 1689년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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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영산재는 팔작지붕을 올린 기와목재건축물로 앞면 3칸 옆면 2칸 크기로 건축되었고 삼문과 동재 서재 건물은 최근에 세워져 사람이 거주하고 있으며 무덤에 세워진 묘비에는 유명조선 정부인 의령남씨지묘라고 써있는데 김극뉴의 묘소가 순창에 쓰여진 것은 그의 또다른 부인인 함양박씨의 아버지의 풍수지리에 의해서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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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영사재
충남 문화재자료 제378호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1길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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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마을 입구에는 사계고택을 세운 사계 김장생의 7대조모인 양천 허씨에게 내려진 정려가 세워져 있어서 고정리가 김장생의 본향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정려문은 열녀와 충신, 효자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집 앞에 세우는 붉은 문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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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 허씨는 대사헌 허응의 딸로 김륜의 증손이자, 김경직의 손자이고, 김복생의 아들인 조선전기 원종공신에 책록된 공신인 김문에게 시집갔으나 17세의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고 개가를 권하는 부모의 말을 따르지 않고 유복자인 김철산을 업고 시부모가 살고 있는 고정리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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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허씨는 연산 고정리에서 아들을 키워서 김철산은 조정에 나가서 사헌부 감찰이 되었고 후손이 이어져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 대사헌을 지낸 김계휘, 예학의 거두 김장생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광산 김씨의 명맥을 유지하면서 가문의 영광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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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 허씨가 1455년(세조 1)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1467년(세조 13)에 허씨의 절개를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정려각을 세웠고 정려 안에는 명정 현판에 명정기가 새겨져 있고, 정려 앞에는 절부허씨지려라는 글을 오목새김한 명정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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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각은 팔각형의 긴 주춧돌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앞면과 옆면이 1칸인 팔작지붕 형태의 건물이 조성되어 있는데 조선시대 정려각의 화려하고 독특한 건축 양식의 한 면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1984년7월26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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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리양천허씨정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1길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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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리양천허씨정려에서 오른편 길로 들어서면 사계 김장생의 할아버지인 김호와 아버지인 김계휘를 모시고 있는 언제 지어졌는지 확실치 않으나 18세기 초반에 자손들이 세운 것으로 보여지는 재실인 모선재가 자리잡고 있다. (재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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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선재에 모셔진 사계 김장생의 할아버지인 김호(1505-1561)는 논산 출신의 문신으로 자는 숙경 이며 선공감 주부와 지례현감을 지냈고, 역학과 성리학 등 학문에 대한 열정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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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김장생의 아버지인 김계휘(1526-1582)의 자는 중회 호는 황강으로 1549년(명종 4)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에 등용되었고, 1557년(명종 12)에 연산 천호산 고운사에 정회당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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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선재는 나무와 돌을 이용해 만든 재실로 앞면 4칸 · 옆면 2칸의 팔작지붕 민도리집 구조로정면 중앙의 기둥 3개는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고, 나머지는 네모난 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오른쪽 옆 1칸을 제외하고 모두 툇간 3칸을 길게 마루로 설치하였으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0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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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선재 뒤편에는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관경 호는 서석 으로 김철산의 아들로 태어나 세조 13년(1467)에 일어난 이시애의 난 때 병조판서로 남이 장군과 함께 난을 평정 하고 좌의정까지 올라 의정공의 시호를 하사 받은 의정공 김국광의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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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공 김국광은 세종 23년(1441)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라서 세조 6년(1460)에는 함경도 경차관으로서 오랑캐를 회유하여 물러나게 하였고 세조의 각별한 신임을 받아 경국대전편찬에 참여 하였고 성종 1년(1471)에 좌의정에 오르면서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좌리공신 1등에 광산부원군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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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원재 왼편 석조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위치에 자리잡은 의정공 김국광 사당은 모원재 라고도 불리는데 인조 원년(1623)에 팔작지붕을 올린 기와목조건축물로 앞면 4칸·옆면 3칸 규모로 지어졌으며 향토유적 제7호로 지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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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선재
의정공 김국광 사당 -모원재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1길 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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