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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형장을 택한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

병인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 갈매못순교성지

2022.02.05(토) 17:19:12 | 메아리 (이메일주소:okaban@naver.com
               	okaban@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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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오천면 영보리에 있는 갈매못은 예로부터 성지가 속해 있는 영보리 마을 뒷산의 산세가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예로부터 전해져 왔는데요.
그 이름만으로도 영적인 곳으로 신성한 성지가 된 이유는 1839년 순조가 승하한 후 헌종이 즉위하면서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주교, 오매트르 신부, 위앵 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 등 다섯 성인과 5백여 명의 이름 모를 교우들이 순교한 바닷가입니다.

바닷가 모래사장을 형장으로 택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죠?
갈매못이 형장이 된 이유는 외연도와 고종의 국혼에 관련된 두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하나는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에서 프랑스 선교사들이 들어왔던 외연도와 가까운 오천에서 다섯 성인을 외연도를 바라보고 목을 쳐서 처형하게 됩니다.
또다른 하나는 병인년 3월 고종의 국혼이 한 달도 남지 않아 한양에서 피를 흘리는 것이 이롭지 않다하여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보령 오천 충청수영에서 형을 집행했다고 합니다.

갈매못순교성지

▲ 갈매못순교성지


코로나로 인해 한적한 곳에서 거리두기하며 거닐 수 있는 순교의 형장인 갈매못 순교성지를 찾았습니다.
성지에 들어서면 바다를 배경으로 네모난 형태의 대리석에 새겨진 십자가의 길 14처가 늘어서 있고, 두팔을 벌리고 바다처럼 넓은 품으로 세상 모두를 포용하려는 듯 예수성심상이 맞이합니다.  

병인박해 때 한양(서울)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충청수영성으로 이송된 다블뤼 주교와 오매트르 신부, 위앵 신부, 장주기 요셉, 황석두 루카 다섯 성인 순교의 흔적임을 알려주는 커다란 돌에 새겨 놓은 바위가 다섯 성인의 순교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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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서 처형장인 바닷가를 내려다보는 승리의 성모 대성당으로 가는 난간에는 예수의 수난사를 제1처 사형 선고를 받고 묵상하시는 예수님의 모습부터 제14처까지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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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뻥 뚤릴 것 같은 서해에서 들어온 천수만의 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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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성모 대성당에 오르는 계단에는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 갈매못 다섯 순교성인의 흉부상이 전시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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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집 입니다” 경건한 마음로 조심스럽게 들어서면 대성당 입구 우측에는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다” 라는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의 좌우명이 적혀 있습니다. 

대성당에 들어서면 요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인해 차분해짐에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둘러보니 신비함을 감출수 없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자연적으로 비추는 햇살을 이용해 은은한 멋과 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공간입니다.
대성전 안쪽에는 성인유해를 따로 모셔놓고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성인유해공경실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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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못순교성지기념관 앞에는 한손에 십자가를 들고 한손에는 모래사장을 뜻하며 모래가 흘러내리는 듯한 모습의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상, 우측에는 성 황석두 루까 상이 있고 야외제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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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매못순교성지기념관


성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갈매못 순교성지 기념관에는 병인박해 1866년에 이곳에서 순교하신 다섯 성인의 자료들이 전시 및 기록 보관하고 있으며, 당시 고문을 받고 형장으로 끌려가던 모습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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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3월19일 한양에 도착한 신부일행들은 구류 간의 감금돼 3월23일에 군무효수형에 처해지고, 다음날 바로 한양을 출발하여 평택, 신창, 홍성을 거쳐 6일 동안 걸어 오천항이 있는 충청수영에 도착, 3월30일에 갈매못 해변에서 참수형을 당합니다.
순교하신 성인들의 머리를 잘라 장깃대에 걸어 방치했는데, 그 이후 1952년 금사리 본당의 정규량 신부가 목격증인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순교터와 장깃대가 섯던 자리, 임시 매장지를 확인하고 부지를 매입하여 지금의 갈매못 순교성지를 조성했습니다.
성인들의 순교에 숙연해짐을 느끼며 야외제대 앞을 둘러 보니 다섯 성인의 사진을 새겨넣은 비가 있고, 그 뒤로는 순교성인비와 순교복자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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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소나무 한 그루 앞에는 2016년 프랑스 순례단이 갈매못 성지를 방문했는데 이때 순교의 땅에 고향의 흙을 가져와 성인들의 순교를 기리며 심었다고 합니다. 

죽음과 맞바꾼 순교자들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으며, 십자가의 길 14처를 따라 조용히 묵상하는 노부부의 모습에 숙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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