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 늠름한 마곡사 입구
▲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증기념석
▲ 정말 자랑스런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증서
마곡사 사적입안(事蹟立案)의 기록에 따르면 마곡사는 640년(백제(百濟) 무왕(武王) 41년)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또한 고려 명종 때인 1172년 보조국사가 중수하고 범일 대사가 재건하였다고 한다.
▲ 해탈문
조선 시대에도 세조가 이 절에 들러 ‘영산전(靈山殿)’이란 사액(賜額)을 한 일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마곡사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을 비롯한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영산전(보물 제800호), 사천왕문, 해탈문(解脫門) 등의 전각들이 가람을 이루고 있다.
▲ 명부전
이 밖에도 도량의 성보(聖寶)로 5층 석탑(보물 제799호)과 범종(梵鐘:지방유형문화재 제62호), 괘불(掛佛) 1폭, 목패(木牌), 세조가 타던 연(輦), 청동 향로(지방유형문화재 제20호)가 있으며, 감지금니묘볍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제6권(보물 제270호)과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 제269호)이 보존되어 있다.
▲ 대웅보전 입구
그래서 마곡사는 그야말로 불교 보물의 화수분 성지(聖地)라 할 수 있다. 외손녀가 네 살 생일을 맞았다. 엊그제 출생한 듯싶었으나 어느새 자라서 쫑알쫑알 말도 못 하는 게 없다.
▲ 부처님을 모신 대웅보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녀석이었지만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인해 상면(相面)이 어려웠다. 만날 수 없는 서운한 마음을 제어하고 외손녀의 건강과 가족의 무탈을 발원코자 참 오랜만에 마곡사를 찾았다.
▲ 대웅전
먼저, 늠름한 ‘태화산 마곡사’ 편액(扁額)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산책로를 따라 들어서니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증석이 위풍당당했다. 순간 마곡사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해탈문을 지나 대웅보전으로 들어섰다.
▲ 대광보전
대웅전에 무릎을 꿇고 우리 가족에게 건강과 좋은 일만 풍성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도했다. 5층 석탑을 지나 백범 김구 선생께서 기거하셨다는 ‘백범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백범 김구 안내문
선생께서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할 당시 찾은 것으로 짐작되는 즈음 마곡사 대웅전 앞에서 찍은 독립운동가들과의 흑백사진은 흠모를 요구하는 당연한, 대한민국 국민 정서였다. 사진 옆에는 백범 선생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친필 휘호가 있는데 그것은 서산대사의 선시(禪詩)를 쓴 것이다.
▲ 김구 선생이 남긴 글 ‘佛’ 표시석(標示石)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후대인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그 시를 올려다보는 사람들도 경건한 마음으로 선생을 진정으로 존경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 김구 선생이 기거했던 ‘백범당’
?<백범 솔바람 명상 길>을 경유하여 마곡사를 내려왔다. 계곡 주변에 걸린 마음을 정화시키는 각종의 글과 격언은 힐링의 교훈으로 손색이 없었다. 불교는 마음을 찾아가는 종교이다.
▲ 소원을 비는 5층 석탑
고즈넉한 천년 고찰인 마곡사의 돌다리를 건너면서 들리는 시원한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속세의 번뇌에서도 쉬이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엄동설한 동장군이 지배하는 시절이기에 잠시 미뤄야 하겠지만.
▲ 동장군이 장악한 태화산
마곡사 초입의 계곡은 겨울답게 꽁꽁 얼어 얼음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천년고찰 마곡사의 ‘冬마곡’엔 밝은 햇살이 그 틈을 벌리며 저만치서 눈치를 살피고 있는 봄(春)을 살갑게 부르고 있었다. ‘春마곡’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 해빙되고 있는 마곡사 계곡
마곡사를 내려오니 좌측에 있는 마곡초등학교가 곱디고운 모습으로 눈을 호사하게 만들었다. 멋진 모습과 함께 마치 레고 도형 맞추기처럼 알록달록 화사해서 연신 카메라를 분주하게 했다.
▲ 그림처럼 고운 마곡사 초입의 마곡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