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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만경노씨 삼의사 ‘우국헌신 의병삼형제’

왜군에 맞서 형제가 전사하고, 막내도 싸운 의병의 표상

2021.06.21(월) 23:57:39 | 내사랑 충청도 (이메일주소:dbghksrnjs6874@hanmail.net
               	dbghksrnjs6874@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충청남도에는 공주의 만경노씨 삼의사와 금산의 고경명 선생, 조헌과 칠백의총, 임진왜란 최초 승병장이었던 영규 대사 등 유명한 의병들이 많이 계시다.
이분들, 즉 충남도내 유명한 의병들을 소개하는 이유는 도민리포터로 활동하는 분들이나 국민들 모두 잘 알고 있을 6월 1일 의병의 날 때문이다.
의병의 날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그분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호국보훈의 달은 그래서 우리가 잊지 말고 반드시 기려야 한다.
 
의병은 일반 병사들과 달리 외국의 침략에 맞서 민중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저항 조직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굳이 나서지 않고” 나의 안위만 챙겨도 되는데 그분들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징발 명령과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종군하여 전쟁에 참여한 자위군이니 얼마나 위대하고 고마운 일인가.
우리 모두 “나 자신은 그때 그 상황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되짚어 보자. 그러면 의병의 숭고함을 다시금 한번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의병은 대체로 항일 의병이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임진왜란 초기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의 수는 관군을 능가했으며 관군이 대응하지 못하는 사이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무논 저 건너편에 보이는 만경노씨삼의사 생가지 ▲ 무논 저 건너편에 보이는 만경노씨삼의사 생가지

생가지 초입 홍살문
▲ 생가지 초입 홍살문

홍살문 옆의 삼의사 소개문
▲ 홍살문 옆의 삼의사 소개문. 공주시에서 이달의 역사인물로 선정했던 사실을 안내해 주고 있다.

도민리포터는 오늘, 막 모내기를 끝내고 따오기가 무논에 앉아 오가는 공주시 우성면 심산리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잘 정비된 사당에 모셔져 있는 공주 만경노씨 삼의사를 만나 뵐까 한다.
 
만경노씨삼의사는 노응환 노응탁 노응호 3명의 의병 형제를 일컫는다.
이분들은 선조 25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조헌의 휘하에서 활약하며 청주성 탈환에 큰 공적을 세우는 등 임란시 항일 의병활동을 한 노응환·노응탁·노응호 3형제가 출생한 유서 깊은 곳이다.
 
참고로 조헌 선생의 사당이 금산에 있고, 금산에서 순절을 했기 때문에 그분은 금산분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조헌 선생이 처음 의병을 모아 출정한 곳은 공주 고마나루다.
역사적으로 이런 사실도 알고 갔으면 좋겠다.

생가지로 들어서는 삼문 ▲ 생가지로 들어서는 충의문과 계단

삼의사의 충절을 기리는 비석
▲ 삼의사의 충절을 기리는 비석

충절을 기려 조정에서 내려준 정려
▲ 충절을 기려 조정에서 내려준 정려

정려 안의 편액
▲ 정려 안의 편액

하여튼 노응환 노응탁 형제는 중봉 조헌의 문인으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을 따라 청주성 전투와 금산 전투에 참가하였다가 금산에서 순절했다.
노응호는 19세의 나이로 두 형을 따라 청주성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조헌의 명으로 호서지역의 군량을 모으기 위해 진영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군량을 모아 금산으로 갔을 때는 이미 두 형을 비롯한 칠백의사가 모두 장렬히 순절한 뒤였으므로 형들의 시신을 찾아 고향에 안치한 직후 세상을 떠났다.
 
3형제의 유해는 금산에 있는 칠백의총에 안장되어 있으며, 위급할 때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충정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선조37년에 나라에서 벼슬을 내리고 정려각을 세웠다.

생가지 안에 만들어진 삼의사 사당 ▲ 생가지 안에 만들어진 사당과 너른 부지. 담장이 있고 출입문은 잠겨 있어서 들어가지는 못함.

삼의사 사당
▲ 삼의사 사당

사당 옆의 충의재
▲ 사당 옆의 충의재

노응호의 추도비
▲ 삼의사중 막내 노응호의 추도비

뒤에서 본 사당과 앞의 전경
▲ 뒤에서 본 사당과 앞의 전경

이러한 사실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중봉집'과 19세기 초 성해응이 지은'금산 순절 제신전', 1895년에 편찬된 '공산지'에 기록돼 있고, 노응탁에 대한 내용은 금산 칠백의총 '일군순의비(1603년, 선조 36년)' 비문에도 기록돼 있다.
 
현재 이 곳에는 이들의 뜻을 후세에 널리 기리기 위해 사우(祠宇)가 건립되어 있는데, 이 사우 앞에는 솟을삼문으로 된 충의문이 있다.
그 양편에는 정려각이 있으며, 또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강당 건물이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하여 일곽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만경노씨 종계의 규약과 계원의 명단을 기록한 종계헌(충남역사박물관 전시중 필자의 촬영본). ▲ 만경노씨 종계의 규약과 계원의 명단을 기록한 종계헌(충남역사박물관 전시중 필자의 촬영본).

삼형제가 아버지 노세득으로부터 학문을 배우고 연구하던 감모재 현판(충남역사박물관 전시중 필자의 촬영본).
▲ 삼형제가 아버지 노세득으로부터 학문을 배우고 연구하던 감모재 현판(충남역사박물관 전시중 필자의 촬영본).

감모재 편액(충남역사박물관 전시중 필자의 촬영본)
▲ 감모재 편액(충남역사박물관 전시중 필자의 촬영본)

공주시에서는 매달 학덕이 높거나 후대에 귀감이 될만한 분들을 선정해 매달 ‘이달의 역사인물’을 지정해 왔는데 작년 6월에 만경노씨삼의사를 이달의 역사인물로 지정한 바 있다.
 
사우는 이러한 삼의사의 충의정신을 기리기 위해 1979년에 세워졌고 이후 충청남도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됐다.
그리고 현재 사우에서는 매년 음력 8월 18일 추모 제향이 이뤄지고 있다.
 
이제 6월도 열흘 정도 남았다.
앞에서도 쓴 바와 같이 지난 6일이 현충일이고 1일이 의병의 날이었다. 호국 보훈의 달이 가기 전에 우리 국민들 모두 위국헌신한 선조들의 충절에 존경의 마음을 담아 경건하고 감사하는 뜻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다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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