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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논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돈암서원 인문학 답사

2021.06.21(월) 23:47:39 | 젊은태양 (이메일주소:claudi00@naver.com
               	claudi00@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 논산 돈암서원 입구 홍살문과 하마비
▲ 충남 논산 돈암서원 입구 홍살문과 하마비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상 중 '한국의 서원'으로 선정된 전국의 9곳 서원중에 충남에 있는 곳은 논산 돈암서원입니다. 2019년 7월6일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세계적인 명소로 이름을 올렸는데, 벌써 등재된 지 2주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라고 표현하고 한국에 있는 세계유산 중에는 14번째로 이름을 올리게 됐는데, 돈암서원과 함께 이름을 올린 서원으로는 경북 영주시 소수서원(1543), 안동시 도산서원(1574)과 병산서원(1613), 경주 옥산서원(1573)과 대구광역시 달성군 도동서원(1605), 경남 함양군 남계서원(1552), 전남 장성군 필암서원(1590), 전북 정읍 무성서원(1615), 충남 논산시 돈암서원(1634)이 있습니다. 세계유산 답사를 하는 분들이 반드시 가는 곳입니다.

돈암서원 앞에 있는 산앙루
▲ 돈암서원 앞에 있는 산앙루

조선시대 유교 교육기관인 서원은 사립학교 성격인데, 최초의 서원인 영주 소수서원(1543. 초기엔 백운동 서원. 성리학의 선구자인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 주세붕이 세움 )을 시작으로 유학자를 배향하는 사묘의 성격에 유생 교육이란 교육기관의 성격을 더해 완성된 곳입니다.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지방에 거점을 둔 성리학의 지식인들이 조선의 지배 개념인 유학을 가르치기 위해 집중적으로 서원을 건립했는데, 각 서원마다 연구에 중점을 두는 철학적인 이념을 지도하며 지역의 학파를 형성하고 지역 사회의 공론을 모으는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돈암서원은 다른 8곳의 서원에 비해 가장 늦게 세워지긴 했는데 성리학을 실천하는 '예학'을 완성한 거점이란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큰 서원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돈암서원 입구에 있는 홍살문은 이곳에서부터 경건한 자세를 갖추라는 의미이고, 옆에 있는 돌비석은 말에서 내리라는 '하마비'입니다.

제일 앞에 보이는 건물은 산앙루로 2007년에 지은 건물이고 입덕문을 통해 돈암서원으로 들어갑니다.

돈암서원 입구의 입덕문
▲ 돈암서원 입구의 입덕문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 12)에 이곳에서 1.5km 떨어진 숲말(연산현 임리)에 김장생을 배향하며 세웠고, 이후 김집, 송준길, 송시열의 위패를 모시면서 1660년(현종 원년)에 사액서원이 됐습니다. 
연산천 옆에 위치한 곳으로 거듭되는 홍수 때문에 1880년(고종 17)에 이 자리로 옮겼다고 합니다. 
산앙루도 원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산앙루는 지은 지 14년 정도 된 건물입니다. 각이 진 시멘트 기둥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돈암서원의 보물 제1569호, 응도당-강학공간
▲ 돈암서원의 보물 제1569호, 응도당-강학공간

입덕문으로 들어가서 왼쪽에 있는 응도당은 돈암서원에서 사당을 제외하고 가장 중심이 되는 규모인데, 힘찬 큰 글씨로 쓴 현판이나 맞배지붕으로 된 거대한 강당의 규모가 위엄이 가득 차 보입니다. 섬세한 조각도 돋보이는 응도당은 보물 제1569호입니다.

원래 교육기관으로서 중앙에 위치하는 규모의 건물인데, 1880년에 숲말에서 옮겨올 때 응도당은 그 자리에 남겨두었다가 1971년에 옮겨왔고, 응도당이 있을 자리에 이미 양성당이 교육을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응도당은 지금처럼 옆으로 세울 수밖에 없었다는군요. 
응도당의 시원스럽게 펼쳐진 대청마루에서는 바람이 잘 통해서 여름에 공부하기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응도당의 현판과 돈암서원 현판-힘찬 글씨가 돋보인다.
▲ 응도당의 현판과 돈암서원 현판-힘찬 글씨가 돋보인다.

응도당의 또 하나의 특징은 맞배지붕의 풍판 하단을 일자로 만들고 눈썹처마를 설치한 점입니다. 산앙루의 둥근 하단 풍판과 차이가 보입니다.
응도당은 건물 옆으로 창을 둔 독특한 건축물에 비바람을 막으려고 풍판에 눈썹처마를 설치했을 것입니다. 참 융통성 있는 건축디자인입니다. 

응도당 맞배지붕 옆면 풍판에 만들어진 눈썹처마
▲ 응도당 맞배지붕 옆면 풍판에 만들어진 눈썹처마

응도당 옆에 있는 정회당 현판에서는 특이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정회당은 김장생의 부친인 김계휘가 대둔산 자락의 옛 고운사 경내에 지어 서재로 사용하던 건물이라고 합니다. 1954년에 이 자리로 옮겼는데, 응도당 현판이 검은 바탕에 흰 글자인 것에 반해 정회당 현판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입니다. 

정회당 현판 왼쪽 하단에 낙관처럼 새긴 것을 읽어보면 '의성김예산8세경서'라고 쓰여있습니다. 의성에 사는 김예산이란 8세 어린이가 공경을 담아 쓴 현판이라고요?! 겨우 8세? 정조대왕이 어릴 때 쓴 한자를 보면 어린이다운 면이 보이는데 정회당 현판의 글자는 너무 힘차고 어른스럽군요~!

정회당-김장생의 부친인 김계휘가 사용하던 건물로, 1954년에 이 자리로 옮겼다.
▲ 정회당-김장생의 부친인 김계휘가 사용하던 건물로, 1954년에 이 자리로 옮겼다.

돈암서원의 북쪽에 배치된 사당 '숭례사'의 담장은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꽃담이란 것이 참 인상 깊습니다. 돈암서원을 세울 당시는 철저한 신분 사회인 조선이고 돈암서원은 특히 예학을 연구한 곳인데, 궁궐에서 쓰는 꽃담을 만든 것을 보면 이곳의 유학자들이 당시 정부에서 그만큼의 힘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꽃담에 쓰여있는 전서는 (어차피 한자가 그림으로 표기한 상형문자에서 출발하긴 했지만) 글자라기보다는 멋진 조형미를 갖춘 그림으로 보이는데, 지부해함(붉은 글자), 박문약례, 서일화풍이라고 합니다.

돈람서원 숭계사의 꽃담
▲ 돈람서원 숭계사의 꽃담

돈암서원을 여러 번 가봤는데 문화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감상하니 더욱 그 의미가 다가와서 흥미진진합니다. 이번 인문학 답사에서는 응도당과 정회당, 숭례사 꽃담의 전서를 중심으로 공부했습니다.

돈암서원 꽃담의 전서 설명
▲ 돈암서원 꽃담의 전서 설명

** 충남 논산시 돈암서원-무료 관람, 무료 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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