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문화·역사

교육은 위인부터 만나는 것

윤봉길 의사의 재발견

2021.04.27(화) 08:57:08 | 홍경석 (이메일주소:casj007@naver.com
               	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상

▲ 윤봉길 의사상  

윤봉길(尹奉吉) 의사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요? 윤봉길 의사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였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날,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키는 거사를 치르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총살되었지요.
3·1운동 이후 우리의 독립운동 거점은 중국으로 옮기게 됩니다. 항일운동은 중국과 만주에서 많이 진행되었지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지원과 안내를 받아 조직적으로 움직였습니다. 

당신을 흠모합니다

▲ 당신을 흠모합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윤봉길로서 상하이(上海) 훙커우(紅口) 공원에서 거사했던 것이죠. 윤봉길 의사는 1908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아버지 윤황(尹璜)과 어머니 김원상(金元祥)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10세 되던 해인 1918년 덕산(德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다음 해에 3·1운동이 일어나자 민족정신의 영향으로 식민지 교육을 거부하고 자퇴하였습니다.

윤봉길은 누구인가

▲ 윤봉길은 누구인가

동생인 윤성의(尹聖儀)와 함께 한학을 공부하였고, 1921년부터는 오치서숙(烏峙書塾)에서 사서삼경 등 한문학을 계속하였다고 합니다. 한문학 공부를 마치고, 1926년부터는 농민계몽. 독서회 운동 등 농촌사회운동을 펴나갔습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무엇인가 큰 일을 해야겠다는 신념으로, ‘장부(丈夫)가 집을 나가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만주로 떠났습니다. 이때가 1930년 3월이었지요.

애국의 상징

▲ 애국의 상징

이 정보를 입수한 일본 경찰이 미행하여, 평안도 선천(宣川)에서 체포되어 45일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출옥 후 만주로 망명하였고, 만주에서 같은 길을 걷는 김태식(金泰植), 한일진(韓一眞) 등을 만나 함께 독립운동을 결의하였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야 성공적인 독립운동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상하이를 향해서 갔습니다. 드디어 1931년 8월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에 도착하였습니다.

늠름함에서도 압권

▲ 늠름함에서도 압권

일본은 1932년 자작극인 일본 승려 살해사건을 이유로 상하이 사변을 일으킵니다. 일본군은 시라카와 대장의 지휘하에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일본군은 일본 국왕의 생일 축일인 천장절(天長節)과 전쟁 승리, 두 가지를 축하하는 기념식을 갖기로 하였지요. 윤봉길 의사는 이 기회를 택하여 기념식장에서 거사를 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일제를 규탄한다!

▲ 일제를 규탄한다! 

그리하여 1932년 4월 26일 한인애국단에 입단하여 김구를 비롯한 이동녕(李東寧), 이시영(李始榮), 조소앙(趙素昻) 등 지도자들과 협의하여 거사를 구상하였지요. 윤봉길 의사는 야채상으로 가장하여 미리 기념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고, 기념식장에서 투척할 수류탄도 제조하였습니다. 폭탄 제조 전문가인 김홍일(金弘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역사는 거스를 수 없다

▲ 역사는 거스를 수 없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는 폭탄(저격용 물통 모양의 폭탄 1개, 자결용 도시락 모양의 폭탄 1개)을 감추고 식장에 입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식이 한참 진행 중일 때 식장으로 다가가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이 폭발로 시라카와 일본군 대장과 일본인 거류민단장 가와바다는 즉사하였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중장과 제9사단장 우에다 중장, 주중 공사 시케미쓰 등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 자랑스럽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현장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었고,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19일 총살형을 받고 2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습니다.

당신의 쾌거를 잊지 않겠습니다

▲ 당신의 쾌거를 잊지 않겠습니다  

이 사건은 중국 등 세계에 알려졌고, 중국의 지도자 장제스는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고 격찬하였다고 합니다. 윤봉길 의사에겐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애국애족의 선봉장

▲ 애국애족의 선봉장 

예산 [윤봉길의사 기념관] 관람과는 별도로 대전 한밭중앙운동장 입구 우측에 윤봉길 의사상이 있다는 걸 아시는지요? 교육은 바로 이런 위인(偉人)부터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말이나 휴일 때 자녀를 데리고 이곳에 가시길 강력 추천합니다.

청사에 빛날 당신의 애국이었습니다

▲ 청사에 빛날 당신의 애국이었습니다

 

홍경석님의 다른 기사 보기

[홍경석님의 SNS]
  •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kyungseok.hong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