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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석오 이동녕 선생 서거 81주년 추념식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초대의장을 지낸 석오선생

2021.03.14(일) 15:13:46 | 계룡도령춘월 (이메일주소:mhdc@tistory.com
               	mhdc@tistory.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2021년 3월 13일 충남 천안시 석오이동녕기념관과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에서 석오 이동녕 선생 서거 81주년 추념식이 열렸습니다.
 
석오이동녕선생서거81주년추념식 1
 
2010년 개관한 석오이동녕기념관의 모습입니다.
 
석오이동녕선생서거81주년추념식 2
 
기념관에는 석오 이동녕 선생에 대한 자료를 비롯해 활동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석오이동녕선생서거81주년추념식 3
 
그리고 바로 곁에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가 자리하고 있는데요,
석오 이동녕 선생과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석오이동녕선생서거81주년추념식 4
 
천안시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에서 오전 11시 이동녕 선생 서거 81주기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석오이동녕선생선양회’, ‘충남문화유산콘텐츠협동조합’ 주관으로 코로나19 집합금지 상황을 감안하여 최소한의 관계자만 참여한 가운데 선생의 추념식은 아래의 식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개회사
  - 묵념
  - 헌화(정기범 충남문화유산콘텐츠 이사장)
  - 독립운동 업적 헌사(김중명 이동녕선생선양회 공동대표)
  - 추모사(서문동 이동녕선생선양회 상임대표, 남서울대학교 사무처장)
  - 답사(전경섭 동리 이장)
  - 독립만세 삼창
  - 폐회
 
석오이동녕선생서거81주년추념식 5
 
이날 행사는 코로나19 1.5단계 방역수칙에 따라 ‘석오이동녕선생선양회(상임대표서문동)와 문화재청 생생문화재 '산류천석! 그래, 석오처럼' 활용사업을 담당하는 ‘충남문화유산콘텐츠협동조합(이사장 정기범), 마을대표인 전경섭 이장 등 최소 인원만 참여하여 헌화와 추모사를 통해 석오 이동녕 선생의 독립정신과 헌정질서 확립 업적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문화재청 생생문화재 사업인 ‘산류천석! 그래, 석오처럼’을 담당하는 충남문화유산콘텐츠협동조합 정기범 이사장은 이동녕 선생께서 평소 즐겨 사용하였던 사자성어이자 친필 휘호로 남겨진 '산류천석(山溜穿石, 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을 통해 선생의 강인한 의지를, 또 평범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석오(石吾)란 선생의 호를 통해 순국선열들의 나라사랑 마음을 설명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 이사장은 선생의 강인한 독립정신과 숨은 인재를 발굴하고 역량을 이끌어내던 리더십, 그리고 겸양의 미덕이 오늘의 세대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며 충청남도 기념물 제72호 이동녕선생 생가지를 보존·활용하여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상을 재조명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소개한 '산류천석! 그래, 석오처럼' 사업은 2년 연속 문화재청 우수사업으로 선정되어 문화재청장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이동녕 선생이 항일운동을 하며 머물렀던 중국 쓰촨성 치장의 이동녕 선생 마지막 거주지를 3D 기록화해 복원할 수 있는 데이터 자료를 축적했고, 선생의 묘지석을 발견하며 우리나라 최초로 해외 항일유적지 복원사업이라는 영역을 개척하는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답니다.
 
석오이동녕선생서거81주년추념식 6
 
만세삼창을 끝으로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제헌국회 초대의장 석오 이동녕 선생 서거 81주년 추념식이 끝났습니다.
 
함께 애썼던 분들의 기념 촬영에 이어 항일독립운동의 뿌리요, 나무였던 석오 이동녕 선생을 널리 알리는데 앞장서기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천안시 목천읍 동리에서 태어난 이동녕 선생은 청백리인 아버지를 따라 판단이 분명하고 겸양의 덕을 갖추었다 전해지며 24살에 진사시에 급제한 후 1905년 을사늑약 반대운동을 펼치고 조선의 젊은이들을 육성하기 위해 만주 용정마을에 ‘서전서숙’을 설립한 바 있습니다. 이후 ‘신민회’ 결성을 주도하며 국외 독립운동기지 건립을 준비해 이회영·이상설 선생 등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초대교장을 역임했습니다. 또 3.1운동의 민족 열망에 따라 1919년 지금의 국회인 임시의정원 초대의장을 맡아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제정하고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석오선생은 백범 김구 선생의 스승으로서 임시정부의 여러 세력을 통합하였고 국무령과 주석을 역임하며 이봉창·윤봉길의사의 의거를 실질적으로 지도하신 분입니다. 선생은 일제의 검거를 피해 임시정부와 함께 여러 차례 이동하는 대장정 속 쓰촨성 치장에서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서거하였습니다. 선생의 유해는 1948년 백범 김구 선생에 의해 국내로 봉환돼 효창공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에 선생께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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