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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계룡 천마사를 찾아서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여행

2020.12.23(수) 21:56:15 | 홍경석 (이메일주소:casj007@naver.com
               	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천마사 표지
▲대한불교조계종 천마사 표지

나그네를 향해 크게 짖는 견공들
▲나그네를 향해 크게 짖는 견공들

천마사 대웅전
▲천마사 대웅전

대웅전 앞 불탑
▲대웅전 앞 불탑

부처님의 자비가 코로나 박멸로 이어지길
▲부처님의 자비가 코로나 박멸로 이어지길

불상과 대웅전
▲불상과 대웅전

저 멀리 보이는 계룡산
▲저 멀리 보이는 계룡산

천마사 옥석불 안내문
▲천마사 옥석불 안내문

천마사 초입의 경충사
▲천마사 초입의 경충사

추수의 소임을 마친 인근의 착한 밭
▲추수의 소임을 마친 인근의 착한 밭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히 심각한 요즘이다. 그럼에도 다시금 동지(冬至)를 맞았다. 세월은 여전히 지구가 태양을 향해 도는 만큼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동지는 24절후의 스물두 번째 절기로 일 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지가 음력 11월 10일이 채 못 되어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또는 ‘작은 설’이라 하였다. 설 다음 가는 작은설로 대접한 것이다. 이 관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를 지나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은 것'이라는 말이 풍속으로 전해지고 있다.
 
통상 동지에 사찰을 찾으면 동지팥죽과 함께 달력까지 준다. 동지를 이틀 지나 충남 계룡시 금암동에 위치한 사찰 천마사를 찾았다. 천마사에 있는 ‘옥석불’은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85호로 지정되어 오래전부터 찾고 싶었던 사찰이다.
 
옥석불은 원래 신도안 봉안사 대웅전에 있었던 세 개의 불상 중 가운데 것이었는데 지난 1984년에 이곳에 옮겨졌다고 전해진다. 천마사는 고즈넉하고 목가적 풍경의 계룡시에 위치한 까닭에 처음 찾는 길손도 이내 푸근함을 느끼게 된다.
 
주변엔 추수를 마친 논과 밭이 올해도 견마지로(犬馬之勞)의 소임을 다했다며 의기양양하여 기분을 낭창하게 만들었다. 천마사의 대웅전을 향해 진입하자니 두 마리의 견공이 소리 높여 짖어댔다. 더욱이 끈이 풀린 큰 개가 성큼성큼 다가올 때는 큰일도 아닌 일에 놀라는 경솔한 사람을 비유한 속담인 ‘제 방귀에 놀란다’는 말처럼 무서웠다.
 
다행히 이 사찰에 오시는 신도들이 많은 까닭에 물려는 기색은 없고 되레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을 나타내기에 안심했다. 대웅전에 들어가 우리 가족의 건강과 코로나의 빠른 종식을 발원했다.

천마사 초입엔 경충사(景忠祠)가 위치하고 있다. 여기는 조선시대 충신인 성광(醒狂) 이심원의 제단을 모신 곳으로 충청남도지정 문화재자료 제338호 이심원 충신정려 현판(李深源 忠臣旌閭 懸板)이 세워져 있다.
 
이심원(李深源)은 조선 태종 2남이던 효령대군 증손으로 성품이 엄정하고 학문과 의술에 정통한 것을 물론 성종에게 5차례나 상소와 치도(治道)를 논하는 등 충절이 돋보인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심원은 조선 성종 때의 문신이다. 1504년(연산군 10) 임사홍이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킬 때 모함을 받아 아들 형제와 함께 피살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중종 때 일품(一品)의 위계가 추증되고 정문(旌門)이 세워졌다고 하니 뒤늦게나마 권위 회복이 된 셈이다. 여행을 다니면 이처럼 지난 역사까지 배울 수 있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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