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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공주국밥 이야기

공주 사람의 공주 이야기

2020.11.29(일) 12:22:35 | 잔잔한 미소 (이메일주소:ih2oo@hanmail.net
               	ih2oo@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부엌에서 만든 집밥을 먹고 자란 나는 지금도 외식보다는 아내가 해 주는 집밥이 좋다.
물론 식당에서 사 먹는 외식은 나름의 즐거움이 있지만, 옛날 부엌 문화에 길들여진 구수한 된장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더구나 요즈음은 코로나19로 모두가 외출도 하지 말아야 하므로 외식은 엄두도 못 내는 시기라 집밥을 자연히 즐기게 된다.
 
소박한 밥상
▲소박한 밥상
  
나는 충청도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공주에서 살면서 썼던 사투리를 지금도 쓰는데 냉큼 고쳐지지 않는다.
 
부엌 식문화와 관련 있는 설겅과 부뚜막의 작은 옹솥이며 물두멍과 뜰팡, 지랑, 멀국, 무수, 배차, 정구지, 건건이 등 요즘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데 용어부터 구수하다.
 
옛날 밥상 앞에서 외할머니께서 늘 밥보다 먼저 지랑부터 세 번 찍어 먹으라던 말씀이 생각나서 지금도 밥상의 지랑(간장)이나 김칫국물을 먼저 찾는다.
 
재미있는 말들과 함께 옛날에 먹던 음식이야기를 하면서 추억 속에 빠져본다.
 
국 대신 장
▲국 대신 장
  
옛날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 재래식 부엌에는 솥이 세 개 걸려 있었다.

큰 솥과 밥솥 그리고 옹솥이라는 작은 솥이었는데, 대개 가운데 솥에 밥을 했고 작은 옹솥에 국을 끓였다. 큰 솥은 물을 데우는 데 썼고 무얼 삶는 용도였다.
   
솥 걸린 아궁이에 불타는 나무
▲솥 걸린 아궁이에 불타는 나무
  
세월이 지난 요즈음은 입식 주방에 식탁에서 편하게 식사를 하지만, 옛날에는 어느 집이나 대개 부엌 아궁이에 불 때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었다.
 
이런 부엌에서 음식이 만들어지고 언제나 거의 같은 밥과 국이 있는 밥상이었다. 그러나 어쩌다 제삿날이나 생일날 같은 특별한 날에는 국건더기가 좀 달랐고 건건이(반찬)도 질이나 가짓수가 많았던 기억이다.
   
이렇게 집에서 늘 먹었던 밥상에 오르는 밥과 국, 그리고 반찬들은 재래식 부엌에서 고생스럽게 만든 우리 어머니들이 애쓴 결과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밥과 국이 있는 밥상
▲밥과 국이 있는 밥상
 
옛날 웬만한 집 밥상에 밥과 국은 필수였다. 주거 문화와 음식 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한 요즈음은 일반 가정에서도 편하게 위생적으로 음식을 잘 만들어 먹는 세상이 되었는데,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인 밥상 생각을 하는 것은 잦은 외식 습관에 진절머리가 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먹던 보리밥과 칼국수 등을 요즈음 사람들이 옛적 향수에 젖어 먹고 싶어하는 것은 기름진 외식문화 속에서 옛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일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날 외국 여행 때 어쩌다 외국의 한국식당에서 먹게 되는 미역국과 김치 같은 우리 음식이 그래서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늘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상
▲늘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상
  
요즈음은 전보다 집밥 아닌 외식을 자주 하는 세상이 되었는데, 지금 식당에서 먹는 외식과 옛날의 집밖 외식은 완전히 다르다.
 
지금처럼 식당이 많지 않았던 옛날의 외식이라야 장날에 장판에서 팔던 국밥이었다고 봐야 한다. 집 나와 바깥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다 먹는 시장 안의 국말이밥이 고작이었다.

가난했던 그 시절에 고깃국에 말아 팔던 밥맛이 그래서 그리 좋았던 것 같다.
  
가마솥에서 끓는 사골국물
▲가마솥에서 끓는 사골국물
  
시장 골목 큰 가마솥에 장작을 때어 항상 끓던 국물에 밥 한 덩이 넣고 질투가리(뚝배기)에 뜨거운 국물 몇 국자 퍼부어 따뜻하게 말아주던 그 국밥을 흔히 국말이밥이라 했다. 

공주시장에 그런 국밥집에 갔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처럼 간판이 없어서 그 집 이름도 모르고 옹기전인가 싸전인가 근방만 알지 다른 것은 생각이 안 난다. 그렇지만 대파가 둥둥 뜨는 쇠고기국물의 짭조름한 맛에 씹히는 고기 몇 점과 하얀 쌀밥 맛이 기가 막혔던 것만은 기억한다.
  
장날이면 어쩌다 만난 사돈과 또는 친구끼리 이런저런 담소도 나누고 흔히 볼 수 없었던 여러 가지를 장마당에서 구경도 하고 정 좋게 국밥 값을 서로 내려 싸우기도 했었다.
 
국말이밥
▲국말이밥
 
시장 안 골목에 지금처럼 의자도 없고 걸터앉을 들마루가 있으면 다행이고 없으면 그냥 선 채로 한 그릇 김치나 깍두기와 먹었던 국밥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 손을 잡고 장에 가서 먹었던 그 국말이밥 생각이 지금도 나는데, 요즘처럼 날씨가 차가워지면 그때가 더 그리워진다.
 
요즈음은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어서 집밥 말고 외식을 하는 기회가 더 많아졌지만 예전 같은 국밥을 파는 집을 찾기 어렵다.

나는 친구와 만나 어쩌다 간단히 사 먹는 것은 대개 추어탕이나 갈비탕 또는 보신탕 등이다. 지금도 밥과 국을 같이 먹는 탕을 찾는 것은 다른 것보다 값이 싼 이유도 있지만, 옛날 국밥에 담긴 추억 때문이다.
 
지금은 뷔페도 생기고 샤브샤브도 있고 코스 요리며 별별 특색 있는 요리도 많이 있어서 그야말로 입 호강을 하는데 원래 예전부터 밥과 국 중심으로 먹고 살아서인지 지금도 국밥을 좋아한다.
   
따로국밥
▲따로국밥
 
국에 밥을 말아서 한 그릇에 퍼 주는 국말이밥이 있고, 밥 따로 국 따로 담은 것과 김치와 깍두기와 나물 한둘이 밑반찬으로 나오는 것이 따로국밥일 것이다.
 
국말이 장국밥은 시장에서 얼른 먹던 국밥이고 따로국밥은 식당에서 국말이 장국밥보다는 좀 나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깍뚜기와 김치
▲깍두기와 김치
  
이 따로국밥을 공주국밥이라는 이름의 간판으로 바꿔붙이고 지금 팔고 있는 곳이 공주 새이학 가든이란 식당이다.
 
1980년대 공주에서 근무할 당시 이학이라는 식당으로 중동박물관 사거리 큰 도로변에 있었는데, 국밥은 물론이고 돈가츠, 비후까스, 냉면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사 먹던 식당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새이학 가든이라는 으뜸 공주맛집이며 모범음식점 간판을 단 식당이다.
  
새이학 가든
▲새이학 가든
  
새이학 가든은 금강변에 있어서 2층에서 금강교를 바라보는 경치가 좋은 식당이며 주차장이 넓어서 좋다.
 
금강교가 보이는 전망 좋은 식당
▲금강교가 보이는 전망 좋은 식당
  
옛날 중동에 있던 이학식당의 따로국밥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그 국밥을 그리워하고 있다. 외지에서 오래 사는 옛 친구를 만났는데 지금도 공주 따로국밥 이야기를 하면서 먹고 싶어하는 그 국밥이 아직도 이곳 새이학에 있다.
 
이학 식당의 추억
▲이학식당의 추억
 
코로나19 상황이 지나면 같이 만나서 국밥도 먹고 가까운 공산성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금강물을 바라보자고 카톡을 보냈다.
 
그러나 식당의 공주국밥보다 집밥을 좋아해야 하는 요즈음이다. 얼른 이 코로나19가 소멸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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