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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다리 없는 다리’

충남문화재 자료 제118호 천덕산 가교비 이야기

2020.09.16(수) 13:19:21 | 충화댁 (이메일주소:och0290@hanmail.net
               	och0290@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부여군 홍산면 천덕산 아홉사리길의 중간쯤에 가교비라는 작은 비석이 있다. 오랜 풍상에 비석에 새겨진 글자는 지워지고 금이 간 채 서 있는 이 비석의 이름은 '가교비(架橋碑)'이다. 다리가 없는 곳에 서 있는 ‘가교비’라는 비석이 의문스럽기도 한데 충남문화재 자료 제118호 지정되어 있다.
 
천덕산 아홉사리 고개 중간에 있는 가교비.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해 꾸밈없이 소박하다
▲천덕산 아홉사리고개 중간에 있는 가교비,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해 꾸밈없이 소박하다
  
일반적으로 다리를 놓은 후에 근처에 비를 세워 다리의 설립 과정과 연대 등을 새겨 놓은 것이 기념비의 정석이다. 그러나 충남문화재로 지정된 이곳에는 비석에 앞서 있어야 할 다리가 없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다리를 놓았던 흔적도 없을 뿐더러 다리가 있어야 할 이유조차 없는 곳이다. 다만 멍석 몇 개를 깔아놓은 듯이 넓적하고 너른 바위가 길 위에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가교비 자체의 문화재적 가치를 논하기에도 너무 소박하다.
 
세상어디에도없는다리없는다리 1
   세상어디에도없는다리없는다리 2
 
다리란 ‘물이나 협곡 따위의 장애물을 건너가거나 질러갈 수 있도록 연결한 구조물’이라는 사전적 의미까지 거슬러 생각하면서 주변을 탐색해 보았다. 그런 인위적 구조물은 가교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그 자리에 있던 자연석을 이용해 비신을 다듬고 글자를 새겨 놓고는 가교비로 명명만 해놓았을 뿐이다. 글자는 마모되고 금이 간 채로 세월 속에 방치되어 사람들의 눈밖에 난 문화재가 되어가고 있다. 
  
가교비의 글씨가 거의 마모되어 판독하기가 어렵다.
▲가교비의 글씨가 거의 마모되어 판독하기 어렵다
  
지역 유지인 유금후의 시주를 받아서 경특스님이 다리를 놓았으며, ‘우뚝한 산위에 놓인 다리 위에서 다가오는 구름과 벗하며 노니나니…, 나그네여, 잠시 봇짐을 벗어 놓고 그 맛을 누리시라’
 
가교비에 새겨진 글자를 판독한 내용이다. 가교비를 세우게 된 계기는 알 수가 없지만 지역 유지로부터 후원금을 받아서 보령 미산면 도흥사의 경특스님이 세운 것은 확실하다. 불교에서는 다리를 놓는 일은 월천공덕(越川功德)이라고 해서 이생에서 업장을 소멸하고 공덕을 닦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역대 승려들 중에는 교량설치 전문가들이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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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다리는 장애물을 건너는데 의미를 두고 있는데 반해 가교는 다리 위에서 구름을 벗삼아 놀다 가시라고 권하는데 방점을 찍고 있다. 건너는 다리가 아닌 ‘쉬어가는 다리’로 발상의 전환을 해버린 것이다.

아마도 도흥사 경특스님은 보령과 홍산을 이어주는 아홉사리길의 다섯 번째 구비길에 자리한 마당바위를 보는 순간, 뇌리에 ‘다리’가 연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보령과 홍산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소통하는 곳이 아홉사리길의 마당바위이기도 하고 먼 길을 떠나온 길손들의 쉼터가 되기도 했던 마당바위가 ‘다리 아닌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니 어설픈 다리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니 어설픈 다리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경특스님이 ‘가교’라고 명명하고 비석 하나를 세워 놓는다면 영락없는 ‘다리 없는 다리’가 될 뿐더러 월천공덕을 쌓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선점하여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꽃이 되는 것처럼 그 가치도 인정받게 되는 법이다. ‘사랑의 가교, 우정의 가교’ 라는 말처럼 ‘가교’라는 단어 속에는 물리적인 다리 외에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 제목처럼 ‘험한 세상의 다리'라는 비유적인 의미가 있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구절양장 같은 아홉사리길을 통과하는 길손들 중에는 미산 도흥사에서 숙박을 하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경특스님은 묵어가던 나그네들과 친분을 나누고 교류를 하면서 수많은 삶의 애환들을 접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험난한 인생길에서 잠시 쉬어가는 다리를 생각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가교비는 ‘다리 없는 다리’의 비석으로서 상징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 어디에도 ‘다리가 없는 다리’의 기념비가 문화재로 인정받은 사례는 없다. 세상의 모든 길에는 이야기들이 있고 고단한 인생이 있다.

아홉사리길을 조용히 걷다 보면 인생이란 ‘길 없는 길’을 걸어 ‘다리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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