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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회

두 임금 나온 가야산 명당

새로 배우는 충남學

2020.07.07(화) 01:39:03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남연군 산소

▲ 남연군 산소



예산 덕산면 남연군 산소
가야사 폐사 금탑자리 이장
고종, 순종 형제 임금 올라

 
해발 678m 가야산. 흥선대원군이 남연군의 산소를 이곳으로 이장해오면서 생겨난 일화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고 있다.

흥선대원군은 풍수지리를 무척 신봉했다. 그는 풍수지리에 밝은 지사를 은밀히 찾아가명당자리를 부탁했다. 지사는 전국을 두루 답사한 끝에 명당자리두 곳을 추천했다.

한 곳은 홍성 광천에 있는 오서산 자락인데, 이곳은 자손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명당터라 했다. 또 한곳은덕산의 가야산 자락인데,‘2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라고 했다. 자손이 2대에 걸쳐서 임금 자리에 오를 명당 터라는 것이었다. 흥선대원군은 두말할 것도 없이 덕산 가야산자락의‘2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지사가 추천한 명당 터에는 이미 천년고찰 가야사(伽倻寺)가 자리잡고 있었다. 절 뒤편 나직한 언덕에는 금탑이라고 부르는 5층 석탑이 서있었다. 바로 5층 석탑이 서있는 자리가 명당 터라는 것이었다.

흥선대원군은 물러나지 않았다. 1844년에 아버지 남연군 산소를 우선 명당터 부근으로 이장해왔다. 그 후 여러 계략을동원하여 가야사를 불태우고 금탑을 부숴버렸다. 가야사를 폐사시킨 후, 남연군 산소를 금탑 자리로 재 이장했다. 대원군은 남연군 산소 1차 이장 후에 장남 재면을 낳았고, 1846년에 금탑자리로 재이장하고 6년 후에는차남인 재황을 낳았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명당 터의 효력 때문일까? 조선 25대 임금인 철종이후사 없이 승하 하자, 대원군의 차남인 재황이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분이 조선의 26대 임금인 고종이다. 고종이 물러난 후에는 그의 둘째 아들이 조선의 마지막 순종 임금에 올랐으니 과연 명당자리였던 셈이다.
/김정헌(홍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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