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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걸 기질 타고난무인

청산리전투 100주년, 김좌진 장군서거 90주년 기획①홍성 명문가 출신 김좌진

2020.04.27(월) 14:39:52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김좌진 생가

▲ 김좌진 생가


김복한 등 독립운동가 집안
약한자 돕는 억양부강 기질
영웅호걸 심취 무예연마
무장투쟁 강한 이면엔 자애

 
2020년은 청산리대첩 100주년 김좌진 순국 90주년이 되는 해다. 청산리대첩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전투였으며 가장 자랑스러운 독립전쟁이다. 일제 식민지배로 신음하고 있던 우리 민족에게 전쟁을 통해 독립할 수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대표적인 전투였고, 김좌진이라는 영웅을 탄생시켰다.

김좌진 장군의 정신은 혼란한 세상에서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요구받고 있다. 청산리전투 100주년·김좌진 장군 서거 90주년을 맞아 김좌진 장군의 생애를 되짚어 본다.
 
김좌진은 1889년 11월 24일(음) 충남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서 김형규와 한산이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태어났다.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명여 호는백야(白冶)이다. 그의 집안은 홍성의 명문가였다. 그의 가문은 10대조 김광현이이조참판을 역임한 후 홍성에 거주하면서세거하기 시작했고, 이후 후손들은 그의 호를 따서 안동김씨 수북공파(水北公派)라한다. 김광현의 부친은 병자호란 당시 왕족을 호종하고 강화도로 피난 갔다가 강화성이함락되자 순절한 김상용이다. 절의와 척화는 문중의 전통이었다.

김좌진은 가문은 다수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홍주의병장을 역임하고 파리장서운동을 전개한 김복한, 일제강점기 홍성의 사회운동을 주도한 김연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과 의열단에서 활동한 김우진, 아나키즘 운동을 전개한 김종진도 그의 가문이다. 동생 동진도 1920년 독립운동 단체인 주비단에 참여한 후 만주에서 김좌진과 함께 독립운동을 벌였다.

김좌진의 유년시절이 유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버지 김형규가 2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김좌진은 유년시절 영웅호걸의 이야기에심취했고 병정놀이와 무술연마를 즐겼던 아이였다. 유년시절 일화 대부분이 체력단련이나 무술연마, 병정놀이와 관련된 것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유년시절 글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삼국지」, 「수호지」를 통달할 정도로 읽었으며 군사학에 관련된 책들을 탐독했다고 한다. 유년시절부터 무인적 기질을 보였던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 이면에는 약한자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병정놀이를 할 때 항상 대장기에 ‘억강부약(抑强扶弱)’이라고 썼다고 한다. ‘강한 것은 누르고 약한 것은 돕는다’라는 뜻을 유년시절부터 갖고 있었던 것이다. 김좌진은 하면 만주무장투쟁의 강인한 모습만 연상되지만 약자들에게는 자애로운 이였다.
/이성우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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