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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공산성 밑 금강 산성나루의 애환(哀歡)

공주 사람의 공주 이야기

2020.02.26(수) 16:34:09 | 잔잔한 미소 (이메일주소:ih2oo@hanmail.net
               	ih2oo@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산성 밑 금강 산성나루의 애환(哀歡)
-공주 사람의 공주 이야기
 
여러분은 공주에 와 보셨나요?

아마 처음으로 공주에 가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금강교이며 그 다리를 한 번쯤 건너고 싶을 겁니다.

금강교의 제원(諸元)에 나타난 것을 보면 폭 6.5m에 길이가 513m로 1932년에 준공된 다리입니다. 걸어서 건너는 시간이 약 10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 위를 가로지르는 금강교, 다리를 건너면서 아래나 주변을 돌아보면 좋습니다. 다른 다리와는 경관이 다르니 한 번 걸어보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멋있는 금강교
▲멋있는 금강교
 
금강교의 제원
▲금강교의 제원

지금의 금강교는 비록 자동차 일방통행이지만, 교통로로서 금강교의 역할이 막중합니다. 물론 다리가 없었을 때는 나무다리나 배다리가 있었다는데, 금강교가 놓이기 전 옛 다리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수량(水量)에 따라 위치가 변하는 임시 다리나 나룻배를 생각하면 지금의 금강교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금강의 옛 다리 안내판
▲금강의 옛 다리 안내판
 
지금도 남아있는 금강의 옛 다리 흔적
▲지금도 남아 있는 금강의 옛 다리 흔적

지금부터 다리 없는 강을 건너 학교 다닌 경험담을 쓰고자 합니다.
내가 살던 곳은 강북(금강의 북쪽)이었는데, 국민학교(당시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어린 시절을
금강교 밑 산성나루에서 배 타고 학교 다녔던 이야기입니다.

6·25전쟁으로 금강교가 끊어졌을 때 사람들이 읍내 장에 다니거나 학생들이 학교 오갈 때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는 차들이 많지 않았지만, 그 차들 통행도 쉽지 않았습니다.

금강교가 끊어진 것은 적이 끊은 게 아니고 작전상 우리가 끊었다는군요. 금강교 남단에 있는 안내판을 보면
금강교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라면서 미군 제24사단 제34연대가 1950년 7월 12일 금강교를 폭파하고 북한군 제4사단의 진출을 방어한 곳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금강교는 공주 전투지라는 안내판
▲금강교는 공주 전투지라는 안내판

6·25전쟁 때 끊어진 무지개다리 하나가 강바닥으로 내려앉았는데, 그 위에 모래 가마니를 계단식으로 쌓아서 사람이 다니게 한 적도 있었는데, 당시 나도 어린 몸으로 책가방을 둘러메고 오르내리던 기억이 납니다.
 
끊어진 다리 위에 만든 비스듬한 길(제60회 백제문화제 사진전, 2014)
▲끊어진 다리 위에 만든 비스듬한 길(제60회 백제문화제 사진전, 2014)

그러다가 나중에 나룻배가 생겼지요. 다리 끊어진 강을 나룻배 타고 건너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 당시 어린애였으니 추운 겨울 강바람을 맞으며 배에 오르 때도 어려웠지만, 배에서 내리는데도 잘못 뛰어내렸다가는 물에 빠지기도 하여 젖은 바짓가랑이가 마를 때까지 학교에서도 발목이 시렸던 기억입니다.

강의 양쪽 배가 뜨고 닿는 배턱(나루터)이 있었는데 그 위치가 아마 제65회 백제문화제 때 부교(浮橋)가 놓였던 곳으로 짐작되네요.
 
나루터로 추정되는 강북 백사장 부근
▲나루터로 추정되는 강북 백사장 부근
 
나루터로 추정되는 강남 공산정(公山亭) 아래
▲나루터로 추정되는 강남 공산정(公山亭) 아래

전막에서 나루터까지는 백사장 길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길 양쪽에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이 즐비했던 기억입니다.물론 공산성 쪽도 지금의 웅진탑 부근부터 강가까지 여러 채의 민가가 있었고 통로 양쪽에는 음식점과 매점이 있었지요. 모두 나룻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이요 매점이었습니다.

백사장에 있던 식당이나 매점들은 홍수로 강물이 불으면 철거하여 사라졌다가 물이 빠지면 다시 보이는 임시로 만든 천막집들이었는데, 운송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나룻배를 기다리는 그 당시의 풍경을 한 번 상상해 보시지요.
 
강을 건너던 나룻배 사진입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배 난간에 앉은 사람과, 사공이 있는 배이며 그 뒤로 멀리 차를 실은 차배가 보이는데 차배는 배도 컸고 여러 명의 사공이 있었는데, 상앗대도 여러 개 보입니다.
 
사공이 노를 젓고 난간에 앉은 사람들(아카이브로 보는 금강, 공주대학교 공주학연구원, 2018)
▲사공이 노를 젓고 난간에 앉은 사람들(아카이브로 보는 금강, 공주대학교 공주학연구원, 2018)
 
금강교 끊어진 강 위의 작은 나룻배와 큰 차배(아카이브로 보는 금강, 공주대학교 공주학연구원, 2018)
▲금강교 끊어진 강 위의 작은 나룻배와 큰 차배(아카이브로 보는 금강, 공주대학교 공주학연구원, 2018)

강물이 비교적 적은 보통 때에는 대개 나룻배가 무지개다리 부분 정도를 건너다녔지만, 한여름 장마 때는 금강이 시뻘건 흙탕물로 범람하여 보통 다니던 나루터보다 위쪽인 지금의 강북교차로 부근까지 올라가서 배를 탔고, 배가 뜨면 센 물살에 배가 떠내려가 건너편 영은사에 닿는 때도 있었으며 어떤 날은 곰나루까지 간 적도 있었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애들은 위험하다고 중학생 이상만 태우던 홍수 때는 학교도 못 가고 집에서 강물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요. 그 기간이 일주일 넘을 때도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천재지변일 텐데, 나의 생활기록부의 결석일수가 5학년 때 11일, 6학년 때 30일로 결석 사유가 모두 도강(渡江-강을 건넘)으로 적혔습니다. 이제 생각하면 이게 다 금강 다리가 끊어져서 겪은 우리의 고생과 아픔이요, 또한 슬픈 추억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비 와요. 강 건너 애들 보내요.”
수업 중에 비가 오기 시작하면 읍내 아이들이 선생님께 하던 간청입니다. 비가 많이 오면 강물이 불어서 배가 못 다니니까 강물 붓기 전에 강 건너 사는 애들 보내라는 이야기지요. 그러면 판서하던 선생님의 특명,
“그래 비 오는구나, 야, 강 건너 애들 책보 싸!”
얼른 가라는 신호입니다. 재빨리 책가방 둘러메고 배 타러 교실을 나오는 우리들, 부러워하던 읍내 애들. 이게 비 오던 날 당시 교실 풍경이었습니다.

다음은 금강교 복구공사 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렵니다.
나룻배를 타고 다니는 여러 해 동안 금강교 복구공사가 이어졌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가설재를 세우고 공사를 했는데 노련한 기술자들이 까마득히 높은 무지개다리 위에서 뜨거운 쇳덩어리를 던지고 받아서 두드려 박는 그 기술이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철교를 보면 무거운 강철판이 이리저리 맞춰져 있는 모양인데, 거기에 쓰인 길고도 무거운 철판을 움직여 이동시키는 모습도 신기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최신식 운반기를 썼겠지만, 당시에 장정 여러 명이 “후더차 후더, 어허 후더차 후더”같은 소리로 힘을 모아서 인력으로 운반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금강교 무지개다리를 가까이 본 모습
▲금강교 무지개다리를 가까이 본 모습

여러 해에 걸쳐서 고생한 끝에 드디어 금강 다리가 준공되었는데, 그 해가 바로 1956년 9월입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입니다. 중학생이 될 나이에서야 겨우 다리가 준공된 것입니다. 배를 타고 건너던 곳을 강물 위에 놓인 다리를 걸어서 넘으니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금강교 준공식은 그야말로 하나의 축제였습니다. 그날은 참으로 많은 사람이 운집했었습니다. 시골 어르신들도 구경하러 나오시고, 여기저기서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을 처음 봤습니다.
 
금강교 준공식(대백제전 옛날 사진전, 2010)
▲금강교 준공식(대백제전 옛날 사진전, 2010)
 
금강교 준공식에 운집한 인파(아카이브로 보는 금강, 공주대학교 공주학연구원, 2018)
▲금강교 준공식에 운집한 인파(아카이브로 보는 금강, 공주대학교 공주학연구원, 2018)

이제 금강교를 다시 봅니다. 준공 당시 금강교는 제법 사람과 자동차의 사랑을 받았지요.

나룻배의 고통에서 벗어났고, 강의 남북을 자유로이 소통할 수 있는 이런 편리함을 누구나 느꼈습니다. 이제 돌이키니 준공된 지도 벌써 64년이 흘렀네요. 준공 후로 여러 번 보수 공사를 했지요. 바닥의 아스팔트를 뜯어내기도 하고, 덧씌우기도 하고, 쇠붙이에 색칠하는 등 금강교는 여러 번 고쳐졌습니다.

지금은 일방통행으로 강북에서만 진입이 허용되고, 강남에서는 부근의 백제큰다리로 돌아서 강북으로 가야 합니다. 강북에서의 일방통행도 차량의 무게와 높이, 속도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걸 모르고 공주에 처음 오는 관광버스 중에는 진입하려다 제한에 걸려서 되돌리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교통 혼잡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생각으로는 공법이 발달한 요즘, 금강교에 전용 인도교를 설치하든지 다리 하나를 더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소식에 의하면 제2 금강교가 놓인다는데 얼른 놓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금강교는 보는 곳에 따라 각각 멋진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금강 미르섬에서, 공산성에서, 연미산에서, 다리의 남쪽과 북쪽에서 어디서 보아도 멋진 금강교입니다.

더 좋은 금강교를 기대합니다.
 
공주 금강교의 위용(偉容)
▲공주 금강교의 위용(偉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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