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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면천의 지명 알기와 면천읍성에서 보물찾기

500여 년 전에도 공사실명제가 있었다는데…

2020.02.12(수) 12:11:11 | 안개비 (이메일주소:hae041@naver.com
               	hae041@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추위일지도 모를 겨울이 내어 준 맑은 하늘을 즐기면서 당진시 면천면에 위치한 면천읍성을 돌아봅니다.
 
면천의지명알기와면천읍성에서보물찾기 1

면천은 자주 와 보는 곳인데도 늘 주변 산책과 먹거리에만 연연했었는데, 오늘은 '면천(沔川)의 지명 알기' 와 '면천읍성에서 보물찾기'를 하고자 합니다.

■면천(沔川)의 지명 알기
 
출처 : 고지도를 통해 본 충청지명연구 1▲출처, 고지도를 통해 본 충청지명연구 1

본래 백제의 혜군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혜성군으로 고쳐 1018년(현종 9) 운주(運州, 지금의 홍성)의 속현으로 하였으며 후에 감무를 설치하였습니다. 1293년(충렬왕 19) 현인(縣人) 복규(卜奎)가 원나라의 합단병을 물리친 공로로 지면주사(知沔州事)의 고을로 승격되었습니다. 1413년(태종 13)면천으로 고치고 군(郡)으로 승격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당진군(지금의 당진시)에 편입되면서 면천면이 되었습니다.
 -면천(沔川),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조
 
서경▲면천의 지명 유래 (내가 흘러 가득하다.)

위 사진에서 보이듯, '물이 가득 흘러서 바다로 모여 들어간다(시경에 나타난 글에서 면천의 이름을 땀)'이라 되어 있듯이, 면천의 지명 유래는 이 지역의 서북쪽에 있는 고산(高山)에서 많은 내(川)가 흘러내리고 있어 '내가 흘러 가득하다'라는 뜻에서 나온 듯합니다.
 
■ 면천읍성에서 보물찾기

면천읍성
▲면천읍성 (충청남도기념물 제91호) 

이 읍성은 1439년(세종 21년) 11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평지읍성으로 조선후기까지 면천의 군사 및 행정중심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현 성벽의 둘레는 1,336m인데, 성을 쌓을 당시는 치성과 옹성의 길이를 합한 전체 길이가 1,564m 정도로 추정된다. 외부는 석축이고 내부는 돌을 채운 후 흙으로 덮어 쌓았다. 현재 옹성 1개소, 문지 4개소, 치성 3개소가 확인되었다 (원래 치성은 7개소로 기록되어 있다). 성벽의 바깥면에 옥천, 진잠, 석성 등 충청도 관내의 군현 명칭이 새겨진 성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읍성을 쌓는데 다른 지방의 사람들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면천읍성 안내판

이처럼 타 지방의 사람들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는 흔적이 3군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각자성돌'이 그것입니다.
 
면천의지명알기와면천읍성에서보물찾기 2
▲면천읍성 각자성돌 (500년 전에도 공사실명제가 있었다)
 
'각자성돌'은 공사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년도와 축조구간, 책임 군현 등을 새겨 놓은 돌입니다. 이는 해당 구간에서 공사 부실이 발생하면 해당 군현에서 보수를 책임진다는 일종의 표시로, 오늘날 '공사실명제'와 같은 성격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의 보물은 세 군데 있다는 바로 '각자성돌' 찾기입니다. 
 
각자성돌▲1번과 2번의 각자성돌(위 좌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위치 및 성돌)

1번 서치성에서 확인되는 각자성돌은 '기미년옥천시면장육십척사촌(己未年沃川始面長六十尺四寸)'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기미년은 1439년(세종 21)이며, 옥천은 현재 충청북도 옥천으로 해당 구간부터 옥천현이 축성하였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2번 읍성의 서벽에는 '석성종면(石城終面)'이라고 새겨진 성돌이 있습니다. 석성은 현재 충남 부여군 석성면으로 해당 군현의 축성 흔적으로 추정됩니다.
 
3▲3번의 각자성돌 (위치 및 성돌)

3번 서치성 끝 지점에서 확인된 각자성돌은 '기미년옥천종말(己未年 沃川 終末)'과 '기미년결성주공사십육척팔촌시면(己未年 結城受工四十六尺 八寸 始面)'이라 새겨져 있는데, 각각 옥천의 끝 지점과 결성(현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의 첫 지점을 알려주는 성돌입니다.

이렇게 면천읍성에서 보물찾기가 끝났습니다.

참 싱겁지요? 하지만, 역사와 문화를 찾아가는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의 역사 유물들을 마주한다면, 또 다른 재미와 더 많은 애착을 갖게 되며, 이를 보존하고 후대에 승계해야 함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서 천천히 면천읍성의 모습에 다가가 봅니다.
 
면천읍성 1▲면천읍성 1 
 
면천읍성 2▲면천읍성 2 (전시에 저 성문을 통하여 대피하였을 주민들이 떠오릅니다) 
 
면천읍성 3▲면천읍성 3 (복원 중인 면천읍성 내 모습 일부, 과거 면천읍성 내에 주민은 거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면천읍성 4▲면천읍성 4
 
면천읍성 남문 앞 비▲면천읍성 남문 앞 비신(碑身)을 세워두었을 법 한 대석(臺石)
 
저 돌받침 위에 면천읍성을 상징할 수 있는 상징물이 세워지고, 복원사업이 순조로이 마무리되면서 면천읍성이 우리들의 품안에 들어올 날을 소망합니다. 

면천읍성 
-소재: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1117-2 일대
-관람시간: 연중 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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