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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충청의 유학자 이유태 유허지와 금강변의 가을

2019.10.22(화) 17:31:36 | 연주의 꿈꾸는 다락방 (이메일주소:yeonju7890@naver.com
               	yeonju7890@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가을은 여행하기 참 좋은 계절입니다. 계절이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가을이 되면 이곳저곳으로 많이 여행을 떠납니다. 공주의 입구에서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면 공주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유태 유허지와 용문서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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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현종과 숙종대의 문인이었던 이유태는 학덕이 높은 유학자로 활동을 많이 했었는데, 남인의 반대편에 있던 이유태는 배척을 받아 영변에 유배를 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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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서재는 이유태에게 배움을 청했던 문하생들이 거주하면서 공부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유태 유허지에 세워진 용문서원은 과거 용문서재가 있던 자리에 유림들과 합의하에 1986년 용문서원을 건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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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호흡하는 것은 몸을 이완시켜 안 되는 자세를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유태 역시 계룡에 고택이 남아 있는 사계 김장생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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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태는 송준길, 윤선거, 송시열, 유계 등과 함께 충청오현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이유태는 현종이 무려 22번이나 벼슬을 내렸지만 거절하고 이곳으로 내려와 후학을 길러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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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떨어지는 낙엽과 단풍이 다르듯이 사람은 자신의 색을 찾고 그 색에 맞게 살아가는 게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마주하는 내 모습이 어떤 모습이 알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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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후손들이 거주하는 곳이어서 사람들의 세간살이나 흔적이 주변에 보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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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비워져 있고 건물을 세우면 채워지게 됩니다. 유허지처럼 건물이 있다가 없어지면 다시 비움의 상태가 됩니다. 비움과 채움은 그렇게 반복적으로 서로를 보완하는데 이유태 유허지의 빈 공간과 다시 용문서원으로 채움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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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금강변은 참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냅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만 있지만 여유가 있어 좋네요. 금강과 같은 큰 강은 주변의 변화와 상관없이 꾸준하게 흘러갑니다. 유행에 따르고 주류로 보이는 이들이 말하는 이익이나 명성과 상관없이 스스로의 자아를 중심에 두고 오롯이 선다는 것은 강이 일관성 있게 흘러가는 것과 닮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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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로 들어가는 금강변으로 오면 좀처럼 보지 못했던 가을 금강변의 풍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옛날의 철학자들은 빈 곳을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풍부한 세계로 변하기 전의 단계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앞에 있는 비는 불망비입니다. 금강변에는 판관 조병로의 불망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공주 판관을 지내면서 유생 강학제도를 만드는 등 후진양성에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금강변의 아름다움과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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