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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왜 글을 써야 하지?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특강 '말과 글로 행복한 삶'

2019.09.02(월) 15:28:22 | 홍순영 (이메일주소:ssoonyoung@hanmail.net
               	ssoonyoung@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아이들은 ‘일기’숙제를 해야 하는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나에게 투정을 부리고, 직장 동료는 “내일 기획서 써야 되는데~, 휴~.”라며 불만과 고통스런 표정으로 한숨을 쉬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것이 ‘글쓰기’이며 또한 누구보다 잘 하고 싶은 것이 ‘글쓰기’이기도 하다. 
 
우연히 방송에 나온 강원국 작가를 보았다. 처음에는 대통령 연설비서관이라는 직책이 낯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그런 일을 하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대통령 연설비서관 정도라면 ‘글쓰기는 식은 죽 먹기겠지'라는 나의 오만한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매번 힘들다”라는 이야기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일을 그만두려고 했던 에피소드까지 털어놓는 그의 마음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강원국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 덕분에 그의 모든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런 그가 홍성에 온다. 지역 온라인 카페를 통해 홍보 리플렛을 보았고, 정말 홍성에 오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리플렛을 사진으로 저장했다. 
 
강원국 작가가 오는 날은 8월의 끝자락 29일 금요일이다. 금요일은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긴장이 가장 풀리는 시간이다. 요즘 직장인은 '불목'이라 하지만 여전히 지역에서는 '불금'이 대세다. 금요일 저녁이면 직장에서 벗어나 또는 매일 하는 일에서 벗어나 나를 위한 여유를 맘껏 부리고 싶은 날이다. 
 
나는 그런 금요일에 남편과 함께 저녁데이트 하는 기분으로 저녁 7시가 조금 못 되어 홍성군청 안회당 잔디마당으로 향했다. 구름이 끼어 있고 바람은 선선했다. 가을의 문턱을 지난 날씨였다. 다과로 준비된 오미자차와 달달한 쿠키가 기분을 더욱 달달하게 만들었다. 
  
왜글을써야하지 1  
곧이어 행사를 준비한 관계자가 간단하게 강연을 소개하고, 곧이어 강원국 작가가 무대에 올랐다. 적당히 나이를 짐작케 하는 흰머리와 자연스런 곱슬머리가 사람의 인상을 푸근하게 보이게 한다. 언뜻 보면 그냥 옆집 아저씨 같다. 무대에 오르자마자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온 이야기를 꺼낸다. “예산에서 기차가 섰는데, 아무도 질문하지 않더라구요.” 앞으로 강연에서 질문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오겠구나 예상하며 강연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읽고 들으면서 살아요. 말하고 쓰지 않죠. 남의 말을 듣고 남의 생각을 읽고 거기에 맞춰가면서 살죠.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글쓰기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들이 있는데, 첫 번째는 자기가 없어요. 내가 없어요. 내가 없이 살아요. 관계 속에서 그냥 살아요.” -강원국 작가 
 
나의 글쓰기 경력을 조금 살펴 보면 학창시절과 대학생 시절까지 주로 일기였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하얀 노트에 연필로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누가 볼까 열쇠를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일기장을 꽁꽁 숨겨두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직장에 다니면서 하루에 일어난 사건을 시간별로 쓰고, 정해진 형식에 맞춘 글쓰기를 했다. 내 생각은 필요 없는 글이었다. 
 
“말하고 쓴다는 것은 내가 주체로서 뭔가 중심에 서는 일이에요. 그럴 때 뇌는 좋아해요. 뇌가 세상에 태어나 맨날 남의 말 듣고 남이 시키는 거 하고 자기는 남의 영향만 받고, 남의 말에 설득당하고, 내가 없이 살길 원하지 않아요. 내가 누군가의 대상으로 살고 싶지 않거든요.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거든요.” -강원국 작가
 
남편의 제안으로 나 혼자만 보는 일기가 아닌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역 신문에 나의 ‘시골살이’ 이야기를 연재하기로 한 것이다. 그때는 글쓰기가 뭔지도 잘 몰랐고,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조금씩 쓰던 중이어서 쉽게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남에게 보여지는 글을 쓰기 시작하며, 나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쓰고 고치는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답이 없는 문제를 갖고 씨름하는 기분이란. 매번 글을 쓰면서 ‘그만한다고 해야지~. 왜 사서 고생인가!’ 하는 마음이 계속 올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감일에는 글을 보냈다. 그리고 신문에 게재된 나의 글을 보면 그동안 글쓰기의 고통 때문에 몸부림쳤던 나의 마음이 모두 녹아내렸다. 그리고 뭔가 벅차오르는 기분이 들고 마음이 뿌듯했다. 그때 처음 글쓰기의 매력을 맛보았다. 
 
“50살이 넘어서 내가 직장에 나와서 누가 어디를 보라고 하는 사람이 없고, 내가 봐야 될 때가 없어요. 이리저리 보다 보니 제가 관심 있는 것을 찾았어요. 글쓰기, 그동안은 남의 말을 듣고 글을 썼어요. 읽고 들은 거죠. 그건, 쓴 게 아니에요. 내 글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게 글쓰기예요.” -강원국 작가
 
글쓰기의 매력을 알게 되었지만 생계를 위한 직업을 찾아 나섰다. 삶의 주인 되는 기분은 뒤로 한 채 알량한 월급통장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 직장을 구하고 열심히 읽고 들으며 직장생활을 했다. 덕분에 직장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도 해 주고,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재미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도 나의 능력을 인정해 주고, 일도 크게 어렵지 않은데 내 일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성장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는 죽을 때 관속에서 후회할 것 같았다. 결국 월급의 유혹을 뿌리치고 다른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외치며 겉으로는 당당히, 하지만 속으론 두려운 채로 안정적인 선을 넘었다. 
 
“관찰력은 자기가 보고 싶은 데를 보는 거에요.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자기가 진짜 관심 있는 것을 보게 되면 뚫어져라 보는 거예요. 그게 꽂히는 거죠. 어떤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사람에 대해 알려고 하고 저는 이런 게 다 관찰력이라고 생각해요. 글쓰기는 일종의 관점이거든요.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예요.” -강원국 작가
 
강원국 작가는 50살이 넘어서 관심 있는 것을 찾았다는데, 나는 40살이 넘어서 나의 관심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정말 누가 어디 보라는 데가 없고, 가정에서도 배려를 해서 맘껏 내가 눈이 가는 곳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가 재미있는 것, 내 가슴이 뛰는 것을 마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이게 돈이 되겠어!’, ‘이 나이에 이걸 지금 시작해도 될까?’ 하는 두려움이 나의 관심을 가로막곤 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생각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 그러다 보니 두려움의 말들이 내 단단한 생각에 항복하곤 했다.
 
정말 내가 보고 싶은 데를 보고 있으니 할 말도 많고, 쓰고 싶은 글도 많아진다. 내가 경험을 통해서 얻었던 나의 생각들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점점 강해진다. 그런데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전달할 때 말보다는 글이 어려웠다. 어린 시절부터 한글을 배우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착각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닫고 글쓰기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글을 쓸 때 글감을 찾고, 글감을 만들려고 하면 이미 늦어요. 우리가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에 하나죠. 글을 쓴다는 것은 이미 뭔가 만들어놓은 것을 써먹는 시간이에요. 만들어 둔 게 없으면 못 써요. 못 쓰는 것을 어거지로 쓰려니까 뭘 막 찾고, 머리를 쥐어뜯는 거에요.” -강원국 작가
 
글쓰기가 하고 싶어도 막히는 지점이, 바로 글을 쓸 때 그때 글감을 찾는다는 것이다. 뭔가 생각이 떠오르면 그때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만으로 글이 완성되는 것은 극히 드물다. 우리는 그만큼 글쓰기에 대해 모르고 있다. 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나 글쓰기의 특성을 모른 채 혼자 노트북의 흰 화면과 싸우고 있다. 이런 싸움은 글쓰기를 하려면 응당 거쳐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강원국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서 글을 좀 더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강원국 작가는 그것에 대한 팁으로 ‘메모’를 강조했다. 자신도 1700개 정도의 메모를 가지니까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었단다. 그 말이 내 마음속에서 ‘유레카!’를 외치게 했다. 늘 완전한 글을 쓰려고 했던 무거운 욕심을 내려 놓고 그때그때의 메모라면 충분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글쓰기를 남과 비교하니까 힘든 거예요. 내 과거와 비교하세요. 반드시 발전해요. 후퇴하는 법은 없어요. 잠깐 후퇴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길게 보면 진보하게 되어 있어요.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면 뿌듯한 거예요.” -강원국 작가
 
지역 신문에 내 글을 연재한 것이 벌써 5년 전이다. 그 글을 다시 보면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나는 글쓰기에 재능은 없나 봐.’하고 스스로를 그렇게 단정짓곤 했다. 그런데 3권의 책을 쓴 강원국 작가도 오래 전의 자신의 글도 허접했다고 인정하는 모습에서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계속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기쁨을 얻고, 내년에는, 5년 후에는 달라져 있을 나를 상상하며 글을 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5년 전의 글은 부끄럽지만 그동안에 틈틈이 써두었던 글을 다시 읽노라면 분명히 성장한 나를 볼 수 있다. 다만 ‘누구와 비교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의 과거와 비교한다면 분명 글쓰기의 과정 속에서 성장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질문이 없는 분위기에서는 기본적으로 창의적일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누군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누군가 써놓은 글을 읽는 사람은 내가 만드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말하는 사람, 쓴 사람이 만든 거죠. 그걸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는 거예요. 새로운 게 만들어지지 않아요. 읽기 듣기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창의적일 수가 없는 거죠. 말하고 쓸 줄 아는 사람이 창의적인 거죠.” -강원국 작가
 
질문에 대해서는 이중성이 있는 듯하다. 어떤 질문은 칭찬을 받고, 어떤 질문은 무시를 당한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마지막에 “질문 있는 사람 손 들어요.”라고 말하면 공부 잘하는 학생이 오늘의 수업에 관해 심도 있는 질문을 한다. 선생님은 “좋은 질문이에요” 칭찬한다. 그런데 어느 학생이 “오늘 수업 중에 이건 뭐에요?”라고 질문하면 “수업시간에 뭐 들었어?”라고 혼만 난다. 직장에서도 대표가 좋아하는 질문이 있는가 하면 일처리 과정을 몰라 묻는 질문에는 “그것도 몰라!” 하며 질문자를 무시하기 일쑤다. 그래서 우린 “질문해보세요?”라는 질문에 머뭇거린다. 칭찬받을 질문인지, 무시당할 질문인지. 그러다 결국 우린 아무 질문도 하지 못한다. 이런 평가에 예민하지 않은, 흔히 '또라이 기질'이 있는 사람만이 질문자가 되곤 한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에서 ‘또라이’라 불리는 사람이 가장 창의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나는 종종 하곤 한다.
 
“지금은 뭘 알고 싶고, 호기심이 차 있고, 지금 너무 행복해요.” -강원국 작가
 
‘왜 글을 써야 하는가?’의 답은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 행복이란 놈이 무언지 몰라 방황하는 사이 우린 애꿎은 파랑새만 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행복이란 것은 내 생각을 갖고, 내 말을 하고, 내 생각대로 사는 것뿐인데 말이다. 사람마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 행복을 느끼는 부분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커다란 정원과 수영장이 있는 멋진 집이 있어야 행복하겠지만 누군가는 숲속에 자신이 지은 오두막 한 채면 행복한 사람이 있다.  
 
글쓰기는 내 생각을 만드는 아주 좋은 도구이다. 글을 써 보지 않으면 이것이 내가 그냥 읽고 들은 것을 내것으로 착각한 것인지, 정말 내것인지 모른 채로 떠들어댄다. 그런 말들은 보통 자기 생각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 자기 생각이 아닌 글은 좀처럼 써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생각은 술술 잘 써진다. 글을 쓰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런 걸 궁금해 하고 있었다니!” 스스로 놀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가끔 내가 쓴 글을 보면 글이 낯설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렇게 질문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간의 흐름도 느껴지지 않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나란 존재가 사라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것을 흔히 ‘몰입’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몰입하는 그 순간을 보내고 나서야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몰입하는 순간은 ‘행복’도 잊는다. 
 
강원국 작가의 강연에 몰입한 지 1시간이 지났을까, 얼굴 위로 찬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진다. 곧 소나기가 쏟아질 태세다. 강연은 급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소나기가 쏟아졌다. 급하게 행사 천막 안으로 피신했다.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웠다. 평소에는 사진 찍는 것을 그닥 즐기지 않는데, 그날은 강연자의 기운을 받고 싶었는지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자며 남편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왜글을써야하지 2
 
당분간은 강원국 작가의 강연이 동기부여가 되어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그런 동기부여는 약발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도 과거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하지만 글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나를 마주할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내일이 설렐 수 있다면 힘들더라도 조금은 더 참아낼 힘을 얻은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설레는 하루를 보내며 메모를 한다. 나도 메모가 1000개가 넘어가면 책을 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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