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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500년 넘은 전통을 이어온 공주 하대리 칠석제

조선의 개국과 함께 시작된 민족의 전통 문화 재현

2019.08.11(일) 16:00:09 | 계룡도령춘월 (이메일주소:mhdc@tistory.com
               	mhdc@tistory.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매년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날을 전후해 치러지는 공주시 계룡면 하대리 칠석제는 수령이 500년을 넘긴 느티나무 아래에서 펼쳐지는 500년이 넘는 전통의 민속축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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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계룡면 하대리 칠석제는 올해도 지난 6일과 7일[음력 7월 7일 칠석] 양일간에 걸쳐 하대2리 마을회관 앞 느티나무 정자 일원에서 펼쳐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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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계룡면[면장 유필종] 하대리 마을회관 앞에서 하대리칠석제보존회 주관으로 공주시를 대표하는 여름 마을고사 하대리 칠석제가 지역 인사와 주민, 학계 관계자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
 
농기를 들고 풍장을 치며 두레 바탕으로 나가 농기와 영기를 세우고 돌아오는 것을 말하는 '농기 세우기'는 칠석제의 첫날인 8월 6일 칠석제 행사가 치러지는 마을회관 앞에 세워진 농기를 농지에 옮겨 세우는 것으로 가장 먼저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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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리의 농기는 원래 영의정 농기(領議政農旗)로 원래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적힌 대본기(大本旗)였으나, 조선 말기에 삼남(三南)의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서 공주 땅을 지나가던 한 영의정이 계룡면 하대리 정씨 문중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대접을 매우 잘 받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마을의 농기에 친히 글씨를 남겼기에 영의정 농기라 칭하고 1974년까지 계속 사용해왔으나 박정희의 새마을운동 진행 중 미신 타파라는 명분 때문에 칠석제가 중지되면서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이 기는 사라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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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리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 온 농기는 계룡산이 내려다보는 농지로 옮겨 세운 후 제례를 올리고 풍악을 울려 신명을 돋우며 천지신명께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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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서 논농사를 하며 마을 사람들이 협력하여 논의 김을 매는 공동노동인 두레 논매기가 시작되었는데 이날 행사에서는 두레논매기와 '논매기 소리'가 재현되어 흥을 돋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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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논매기가 끝나면 지친 몸을 털어 새로운 기를 받는 풍장으로 한바탕 신명을 돋우는 걸립[乞粒]풍장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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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립[乞粒] 풍장은 마을의 특별한 행사를 위해, 예를 들어 칠석제처럼 공동 경비가 필요할 때 경비 모금의 일환으로 풍물을 치고 집집마다 다니며 축원을 해주고 돈과 곡식을 얻는 일을 말합니다.

걸립 풍장을 끝으로 첫날의 칠석제는 끝이 나고 다음날 칠석날을 기다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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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날의 날이 밝으면 칠석제의 시작을 알리는 풍장을 울리고 마을을 돌며 사람들을 모으는데 이를 고풍장 또는 알림풍장이라고 하며 모인 사람들과 함께 첫날 세워둔 농기 바탕으로 가 농기를 모셔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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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기 모시기는, 마을을 지켜주기를 바라며 농기바탕에 세워 둔 농기를 두레에 참여한 농부들과 풍장패들이 칠석제와 농기 고사를 올리기 위해 칠석제 고사장으로 모시는 일을 일컫는데, 이러한 과정 하나하나에 모두 제례를 올리고 풍장으로 천지신명께 알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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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나는 풍장을 울리며 이동하는 농기 모시기는 장애물이 있으면 농기를 눕혔다가 세우기를 반복하는데 이때 화동을 목말 태운 채 고사장인 당산나무로 향하며 농기가 서 있을 때는 화동이 어깨 위에 목말을 타고 장애물 때문에 기가 누우면 아이도 어깨에서 내려오기를 반복합니다. 모두들 예년에 이어 올해도 늠름하게 잘 치러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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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리의 칠석제는 조선이 건국되었던 어느 날 한 선인이 나타나 계룡산의 여섯 봉우리가 내려다보이는 하대리 마을 앞에 짝을 맞추어 열두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고는 이곳에서 세계만방에 우리나라를 빛낼 역사적인 인물 열두 명이 날 것이기에 마을에서 매년 여름 제를 지내도록 하라 하여 칠석날 제를 올리기 시작했으며, 오늘날에는 당산제 형식을 띠고 유가식으로 진행되는데 박정희 정권의 미신타파 정책으로 지내지 못한 8년여를 빼고는 5백여 년 전부터 매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정성으로 지내온, 역사적 인물 열두 명 탄생을 기원하는 마을 고사라고 하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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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제는 제관들이 잔을 올리고 절을 하며 ‘동네잔’이라는 이름으로 풍장의 상쇠도 잔을 올리는 독특한 제례인데 뒤이어 마을 주민들도 절을 하고 발복을 기원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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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고사를 지내고 제관은 농기로 가 잔을 올리고 절을 하며 가을의 풍년을 기원하고 마을 안녕을 위해 농기고사를 지내는데, 마을 대표가 소지(燒紙)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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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열두 마을 풍장이 겨루었던 것을 재현하기 위한 합동풍물경연대회가 펼쳐지는데 칠석제 풍장패 등 여러 풍장패가 겨루며 흥을 돋운 후 모두 함께 어울려 치는 합풍장판이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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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합을 맞춰보지 않은 풍물패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풍장은 한 마디로 마을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우렁차고 흥겹기도 하지만 마을 풍장패마다 각기 다른 성향을 지녔어도 함께 어우러지면서 한 소리로 모이는 것이 참 멋지게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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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체험행사 중 잠뱅이 씨름이 펼쳐졌는데 이날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진행된 민속체험행사는 예년과 달리 마을 주민의 잠뱅이 씨름 퍼포먼스도 함께 해 더욱 큰 박수를 받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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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계룡초등학교 학생들의 씨름이 진행되면서 이걸재 선생의 주머니는 물론 농협조합장 등의 지갑을 열게 한 놀이가 되었고 모두가 화합하는 즐거운 축제한마당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칠석제가 끝나면 풍성하게 장만한 음식을 나누어 먹는 마을의 화합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 한마당 잔치가 펼쳐진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인들이 군선을 만든다며 느티나무 열한 그루를 베어 간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책동이었다고 보고 그 후 남은 한 그루를 정성으로 가꾸어 오며 그 긴 역사를 이어 오늘날 하대리의 마을 문화로 발전시켜 주민 화합의 축제로 승화시킨 하대리의 모든 분들께 경의 표합니다. 특히, 보여주는 축제가 아닌 주민들이 즐기는 축제, 소박하지만 뜨거운 열정이 있는 양화리 칠석제를 응원합니다.

하대리 칠석제는 하대리와 중장리 등 열두 동네 두레가 칠석날 유사를 정해서 제물을 마련할 정도로 큰 규모로 치러졌으나, 현재는 두레 전통이 사라지면서 규모가 점점 축소돼 마을 고사로 진행되고 있었으나 그나마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미풍양속을 마을 주민들이 풍장패와 함께 농기가 춤을 추는 하대리만의 독특한 문화, 두레풍장을 예전의 모습으로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다시 부활하였는데 우리의 민속문화를 생활화하려는 노력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지정 신청으로 이어져 주민들의 삶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문화가 어떻게 결론이 날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사라진 하대리 민속 소개

▷12농기의 기세배
영의정 농기(일명 벼슬한 농기)로 인하여 생긴 풍습으로 하대리와 중장리의 11개 타동 두레 농기가 칠석날 하대2리로 찾아와 각각 세배를 올리던 풍습인데 1974년까지 계속되었으나 박정희 정권의 미신타파 정책에 의해 칠석제가 중지되면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12두레 합두레판
기세배를 위해 모인 두레의 임원들과 장정들이 칠석제 고사 마당에 모여 여름두레 먹는 잔치의 판을 벌인 것이며 이를 ‘열두 두레 합두레’라 불렀으며 음식이 넘치고 소리판, 풍장판 등이 어우러져 공주의 백제문화제 외에는 공주시에서 가장 큰 축제 마당이었으나 이 또한 1974년까지 열리고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12두레 합이 풍장마당
역시 칠석제 장에서 열리던 민속 마당으로 농기세배를 올 때 당연히 그 마을 풍장패가 동행을 하는데 열두 두레의 풍장패가 풍장의 실력도 겨루고 각각 다른 마을의 풍장이 모두 한 마당에 들어 함께 흥을 나누는 풍장마당으로 이를 ‘열두 대장이 풍장’(마당)이라 불렀는데 이는 풍장 실력을 겨루어 두레의 서열을 정하는 아주 중요한 일로 두레 간에는 어른 두레와 아이 두레, 혹은 형님 두레와 아우 두레처럼 서열을 정하고 들에서 두레 꾼들이 만나면 서열이 낮은 두레의 농기와 두레꾼이 절을 해야 지나갈 수 있어 서로 어른두레가 되려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하대리의 농기
장정이 힘자랑을 하기 위해 농기를 한 손으로 드는 것을 겨루기도 하지만 농기는 농사의 신[農神]이 깃들어 있다 하여 춤을 추지 않는데 하대리는 농기가 농기 바탕에서 칠석제 장으로 이동하는 내내 덩실덩실 춤을 추는 특별한 행동을 보여줍니다.
하대리의 잠뱅이 씨름
하대리에서는 단오와 백중에 처음 두레에 든, 신입 두레꾼들에게 위의 옷은 벗고 하의(잠뱅이)만 입은 채로 씨름을 하게 하는 풍습이 있어서 어린 장정들이 힘을 쓰는 모습을 보며 즐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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