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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자연의 아름다움과 역사 문화가 있는 마을

백일헌 종택과 충헌사가 있는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마을

2019.07.15(월) 12:29:04 | 계룡도령춘월 (이메일주소:mhdc@tistory.com
               	mhdc@tistory.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을의 역사
"우리 주곡리 마을은 조선시대에는 주막일로 동주막, 서주막, 마근동의 뜸으로 나뉘었고, 이를 합쳐 술골이라 불리워 오다가 1914년 지금의 상월면 주곡리로 되었다.

마을에 있는 청주양씨 시조 충헌공 양기 선생의 영당과 종가는 조선 선조 때 양기 선생 9세손 첨정공 춘건이 지금의 주곡리로 정착할 때부터 현재까지 이르고 있는데, 충헌공 양기 선생은 원나라의 높은 신하로서 고려에서 원나라에 바치던 조공제도를 폐지시킨 공로로 고려의 대광보국 상당백 벼슬과 함께 식읍을 하사받아 청주양씨 시조가 되었다.

이곳 주곡리 마을에서 출생한 함평이씨 이삼 장군은 1705년 무과에 급제하여 정무목사를 시작으로 정정 때 형조참판 등 여러 관직을 거쳐 영조 때에는 훈련대장으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후, 양무2등공신 함은군의 작위 및 백일헌의 시호를 받았고 공조·병조판서도 지냈다.
 
지금 장군의 고택은 영조로부터 하사받은 가옥으로 도지정 민속자료이다. 또, 마을 북쪽 마근동의 전주이씨는 세종의 3세손 승현대부 승선군 문헌공과 이취 선생을 사당에 모셔오고 있다. 승선군의 현손인 호조참판을 지낸 마근 이최 선생은 중종 때 기묘사화에 관련되어 유배되었던 승선군의 복작과 시호를 추증받아 위폐를 모시고 영조 때 이곳으로 낙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외에도 10여 성씨가 단란하게 살아오는 역사 깊은 마을이기도 하며, 첨정공 춘건이 정착하면서 마을의 단합을 위하여 장승제를 올리기 시작한 이래로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 온 마을 주민이 참여하는 장승제로 솟대와 장승을 깎아 세우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풍습이 전해오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위 내용을 보면 자신들의 마을에 대한 상당한 자긍심이 엿보이는데 도대체 어떤 곳일지 궁금하죠?

세상만사 유행에 민감하여 한순간 불꽃처럼 타오르다 사라지는 것들로 가득한데 500년이 지나도록 그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아름다운 연꽃과 자연이 어우러진 마을이 있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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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충현사와 논산 백일헌 종택이 있는 마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는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인데 이제 같이 하나하나 살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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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문을 뒤로 하고 주곡리 길로 접어들면 마을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 오랜 세월을 버티다 결국 산화한 거대한 굵기의 느티나무가 두 그루 서 있고, 조금 더 들어가면 커다란 나무가 마을로 들어가는 마을길을 두 갈래로 갈라 놓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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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특이하게도 마을 입구에서 우물을 하나 만나는데, 대부분 마을 가운데 자리한 것과는 느낌부터 다르죠? 마을에서 아주 신성시 여기는 이 우물의 이름은 장승샘이라고 하며 매년 이 우물 주변에서 500년을 이어온 장승제를 지내고 있답니다.

장승샘 위로 뭔가 묶여 있는 모습이 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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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장승들인데 왼쪽에 있는 남 장승은 머리에 사모를 쓴 채 눈을 부라리고 있고, 턱에는 묵선으로 긴 수염을 그려 놓았으며 장승 옆에는 솟대를 함께 세우고, 이 마을에서는 솟대를 '짐대' 또는 '오릿대'라 부르고 있답니다.
 
주곡리 마을에서는 장승과 솟대를 해마다 새로 깎아 묵은 것과 함께 세워두는 전통이 이어져 보통은 10여 기의 장승과 솟대가 한 묶음으로 세워져 있는데, 60년대 이후 새마을 바람이 불 때 묵은 장승을 소각하여 없앴더니 그 후 마을에 좋지 않은 일들도 생기고 여론도 좋지 않아 다시 새 장승들을 세우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렇게 장승과 솟대를 깎아 세우는 주곡리 장승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장승제례로 주곡리 장승제의 유래는 장승샘 옆에 안내문이 세워져 있는데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주곡리 장승제의 유래
이 마을의 장승은 연산 4년(1498)에 청주양씨 9세손 첨정공께서 낙향하여 이 마을에 정착하신 이후 신앙을 통해서 주민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계책으로 마을 어구에 장승을 세우고 온 주민이 신명을 다하여 장승을 마을 수호신으로 숭배하기 시작한 이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왜군이 이 마을을 야습할 제 마을 어구에 있는 장승을 사람으로 오인하고 총을 쏘아도 물러서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생각할 때 마을 주민들은 총소리에 놀라서 황급하게 피신한 후에 왜군이 돌격하여 보니 사람이 아닌 장승임을 확인하고 그때야 속은 것을 깨닫고 마을을 침공하였으나 주민들이 모두 피신한 후인지라 무사하였던 것을 계기로 선조 32년(1599) 임란이 평정된 후 조정에서 문무백관이 연회를 베푸는 자리에서 '선조께서 장승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위하라'는 어명을 받들어 전국 각 지역의 마을 어구에 장승을 세우고 마을 수호신으로 위하여 왔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그 자취가 사라지고 지금은 논산 시내에 우리 마을 한 곳만 남아 있어 1995년도에 논산시 향토 유적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매년 음력으로 정월 14일 저녁에 온 부락민이 정성을 모아 국태민안과 마을의 평화와 개 개인의 안녕, 그리고 시화년풍을 기원하는 장승제를 봉향하여 50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서기 2002년 3월 14일 상월면 주곡리 '향토유적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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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장승제의 마을인 주곡리의 장승을 지나면 잘 지어진 정자와 함께 요즘 새롭게 꾸며지고 있는 연못과 연꽃, 수련밭이 나타나며 조금 더 가면 총 길이 약 1.8km에 이르는 '백일헌 종택 사색의 길'도 만들어져 있어 아름다운 연꽃길 생태습지와 연결되는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사업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지금 한창 꽃을 피워내는 연꽃과 곧 아름다운 수련으로 가득 채워질 연못이 자리하고 있는 주곡리는 논산시의 연꽃 명소 중 하나로 곧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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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을 끼고 조금 더 들어가면 고색이 창연한 논산 백일헌 종택의 솟을대문이 나타나는데 1985년 충남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되어 있는 백일헌 종택은 이삼 장군이 이인좌의 난(1728)을 평정한 공으로 영조로부터 함은군(咸恩君)에 봉해지면서 건립비용이 하사되어 지어진 것이랍니다.
 
백일헌 이삼 장군은 어떤 인물일까요?

문과 무를 겸비한 조선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이삼 장군은 1677년(숙종3년) 충청도 노성현(현 논산 상월면 주곡리)에서 아버지 함평군 이사길과 어머니 정경부인 남양전씨 사이에서 태어난, 자는 원백(遠伯)·호는 백일헌(白日軒)으로 그가 태어나기 사흘 전 집안에 무지개가 드리워져 훌륭한 인물의 탄생을 예감했다고 하며, 이삼이 세 살 때 홍역을 앓았지만 그의 어머니 꿈에 노파가 나타나 처방을 알려주어 낫기도 해 하늘이 돌보는 아이라는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습니다. 이삼이 12세 되던 해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명재(明齋) 윤증(尹拯)과의 만남은 이삼이 학문과 인격을 갖추는데 큰 영향을 끼쳤는데 윤증은 학문을 가르치면서도 이삼의 뛰어난 체력과 힘을 미리 알아보고 무관이 되기를 권유했고, 스승의 권유에 따라 이삼은 윤증 문하에서 학문을 갈고 닦으며 무예 외에도 문관으로서의 능력도 함께 길러 범상치 않은 체력과 힘, 비범한 지략을 갖고 조선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입니다. 그러한 이삼 징군은 무기 등 기계 제작과 무술에도 뛰어났으며 특이하게도 문인으로서도 널리 알려졌는데 저서로는 '관서절요(關西節要)'가 있습니다.

그가 태어나 자랐던 논산 상월면 주곡리에는 종택뿐 아니라 이삼에 관한 설화와 함께 임금의 하사품, 그가 남긴 생활용품 등이 남아 있어 역사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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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은행나무는 이삼 장군이 말을 매던 나무로 알려져 있는데, 가을이면 그 아래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도 하지만 은행나무 열매 특유의 고약한 냄새로 찾는 이들은 한동안 괴롭기도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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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후손들이 살고 있기에 안채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고 방문자의 출입 자제를 부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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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헌 종택은 전체적으로 'ㅁ'자 형태를 띠고 있는데, 'ㄷ'자 안채와 'ㅡ'자 사랑채가 합쳐진 형태입니다. 아름다운 누마루가 있는 사랑채에는 오월재(梧月齋)라고 적혀 있는데, 현 종손 7대조의 호가 오월재라서 붙여져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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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 않고 단아한 멋이 느껴지는 백일헌 종택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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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샛문이 열려 있어 종부께 부탁하여 내부를 둘러보았습니다.

백일헌 장군 초상을 미처 담지 못했는데 무관이 관복을 입고 있는 모습의 초상화가 거의 없어 아주 소중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받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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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문 밖으로 나서면 새로운 주곡리를 만나게 되는데 이제부터 좀 걸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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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헌 종택 서쪽에서 시작하는 '백일헌 종택 사색의 길'은 총 1.8km 가량의 거리로 선비계단과 매봉재 전망대를 돌아 충현사와 주곡리 마을회관, 그리고 옛 우물터와 생태 연못을 지나면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사업으로 만들어진 연못과 만나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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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청주양씨 시조 양기(楊起, ?~1394)를 중심으로 양치·양희지·양응춘·양훤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충헌사(忠憲祠)를 만나게 되는데 충헌사(忠憲祠)는 조선 숙종(肅宗) 12년(1686년) 건립한 한식 목조 기와집 본 건물로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이고, 1960년대까지 강당으로 사용된 경모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으로 17세기 건축양식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어 2007년 4월 12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여러 차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답니다.
 
청주양씨의 시조가 된 양기는 원나라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으로 고려 충선왕 때 노국대장공주를 수행하여 우리나라에 왔다가 당시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고 돌아가 조공제도를 폐지하도록 힘썼으며 이후 우리나라에 귀화하여 상당백의 작위를 받은 인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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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옛 우물터와 생태 연못을 만나게 되는데 우물의 지붕이 어째 그다지 예스럽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모여 살며 마을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우물이며 연못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상월면 주곡리는 마을 전체가 마치 술항아리 같아 입구에서는 마을이 전혀 보이지 않으며 현재의 백일헌로는 호남과 이어져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사람들이 많이 다녔고, 크고 술맛 좋은 주막이 있어 '주곡리'라고 했다고 하며, 이몽룡이 과거에 급제하여 춘향이를 만나러 간 길이라 하여 춘향길로 불리는 길도 바로 이웃해 있으니 단순히 역사와 문화 아름다운 연꽃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장원 급제하여 어사가 되어 춘향이를 만나러 가는 이몽룡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서 마을을 둘러보면 한결 재미가 더할 것 같습니다.

이상으로 오랜 세월 동안 역사와 전통 문화가 살아 숨쉬는 상월 주곡리마을 이모저모를 소개했습니다.
 
아이들과 손잡고 가볍게 산책 겸 다녀올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을, 친구나 연인끼리 역사 문화를 즐기며 연꽃과 함께 아름다운 인생 샷을 남길 수 있는 마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잊지 말고 꼭 찾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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