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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남연군묘, “자손 가운데 2명의 황제가 나온다”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의 천하명당을 찾아

2019.06.17(월) 01:15:22 | 하늘연달열이레 (이메일주소:msy.sm94@gmail.com
               	msy.sm94@gmail.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자손 가운데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온다는 남연군묘의 봉분 뒤 활에서 바라본 덕산일대.
▲자손 가운데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온다는 남연군묘의 봉분 뒤 활에 올라 바라본 덕산 일대

땅의 기운에 힘입어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요?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조상 묘를 옮겨 2대에 걸쳐 자손이 황제에 즉위한 천하명당을 소개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사(관)의 말을 듣고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이 아버지 남연군(南延君)의 묘를 옮겼는데 2대에 걸쳐 황제가 배출된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가 실제 충청남도에 존재합니다. 지난해 하반기 개봉돼 눈길을 끌었던 영화 ‘명당’의 역사적 배경이기도 합니다. 
 
남연군묘를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남연군묘를 장명등(長明燈)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남연군묘의 왼편에서 바라본 모습
▲남연군묘의 왼편 망주석(望柱石)에서 바라본 묘지 전경

남연군묘의 오른편에서 바란본 모습
▲남연군묘의 오른편 망주석(望柱石)에서 바라본 묘지 전경
 
이대천자지지의 주인공인 남연군묘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석문봉(652m)을 중심으로 왼쪽에 가야산(678m), 오른쪽에 옥양봉(621m), 동북쪽으로 서원산(473m)이 병풍을 둘러치듯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주황색 1번자리가 인근이 남연군 묘
▲사진의 중심부 1번(주황색) 인근이 남연군묘, 덕산도립공원 안내도 재촬영

묘는 정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인공으로 조성한 큰 왕릉처럼 보이는데 골프장의 포대그린과 같이 상단부의 평평한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봉분 뒤편의 활에 올라서면 덕산 일대의 들녘이 계곡 사이로 시원하게 펼쳐져 보여 누가 보아도 수려한 경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면에서 바라본 남연군 묘. 마치 거대한 왕릉처럼 언덕위 편평한 곳에 묘를 만들었다.
▲정면에서 바라본 남연군묘, 마치 거대한 왕릉처럼 언덕 위 편평한 곳에 묘를 만들었다
 
남연군묘를 등뒤로 하고 바라본 덕산일대를 모습.
▲남연군묘를 등뒤로 하고 바라본 덕산 일대의 모습

남연군 이구(李球, 1788~1836)는 조선 16대 인조의 셋째아들 인평대군의 6대손입니다. 조선 후기 왕실가계는 24대 헌종에서 정통이 끊기고,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가 측실에게 낳은 은언군 이인, 은신군 이진, 은전군 이찬 등 3명의 후손만 남게 됩니다.

헌종을 이은 제25대 철종은 은언군의 아들 전계대원군 이광의 아들입니다. 하지만, 철종은 대군 1명과 군 4명을 낳았지만 이들이 모두 요절해 후손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사도세자의 둘째인 은신군의 후손이 왕위를 이어야 하지만, 제주도 유배생활 중 병을 얻어 죽어 그의 양자인 남연군의 자손이 우연찮게 조선의 왕위를 잇게 된 것입니다.

남연군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넷째 막내였습니다. 철종이 승하하자 대왕대비 신정왕후(풍양 조씨)는 안동김씨 세력과 맞서기 위해 흥선대원군과 결탁해 남연군의 손자이며 흥선대원군의 둘째인 이재황을 제26대 왕 고종으로 즉위토록 합니다.

흥선대원군은 당대 최고의 지사(관) 정만인에게 '충남 덕산 가야사 고탑이 명당자리'라는 말을 듣고 재산을 팔아 마련한 2만냥으로 가야사를 허물고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 남연군묘를 이장했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흥선대원군이 가야사에 불을 질러 쫓아냈다고도 합니다).

우연인지 땅기운인지 남연군묘를 이장하고 이하응은 흥선군에 책봉됐고 3년 후 오위도총관에 오릅니다. 또한 이장 후 7년 뒤 얻은 둘째 아들은 12년 후 26대 조선왕에 이어 1897년 대한제국 1대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이어 고종의 둘째 아들 순종이 1907년 제2대 황제로 즉위했으니 예언인 이대천자지지가 적중한 셈입니다.

고종(좌)과 순종의 어진.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의 초상은 원유관(遠遊冠) 대신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강사포(絳紗袍)를 입은 황제 등극 이후에 그려진 초상임. 순종의 어진은 1928년에 김은호가 그린 순종황제 어진의 소실된 부분을 복원하여 제작한 모사도.
▲고종(좌)과 순종의 어진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의 초상은 원유관(遠遊冠) 대신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강사포(絳紗袍)를 입어 황제 등극 이후 그려진 초상이며, 순종의 어진은 1928년에 김은호가 그린 순종황제 어진의 소실된 부분을 복원하여 제작한 모사도

이처럼 드라마틱한 남연군묘에는 흥미로운 설화도 여럿 전해집니다.

그 가운데 화가 나서 세상을 등진 미륵불 얘기가 흥미를 끕니다. ‘상가리미륵불’은 남연군묘에서 동북쪽으로 150m 떨어진 곳의 골짜기에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불상입니다. 원래는 동남 방향인 가야산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대원군이 가야사를 없애고 남연군묘를 쓰자 화가 나서 반대편으로 등을 돌렸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중앙에 화불이 장식돼 실제로는 미륵불이 아니라 관세음보살이라고 합니다. 코를 보수한 흔적이 있는데 이는 미륵불 코를 떼 가면 아기를 갖는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합니다.

흥선대원군이 남연구묘를 쓰기 위해 가야산을 폐사시키자 화가나 등을 돌려버렸다는 '상가리미륵불'
▲흥선대원군이 남연군묘를 쓰기 위해 가야사를 폐사시키자 화가 나 등을 돌려버렸다는 '상가리미륵불'

또 다른 설화는 이대천자지지를 알려준 지사 정만인은 흥선대원군에게 풍수의 댓가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마음대로 열람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는 사명대사가 남긴 해인(海印)을 찾으려는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해인은 만물을 조정하는 사명대사의 마술지팡이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해인을 찾은 뒤 정 지사는 홀연히 사라졌다고 하는데, 일설에는 해인을 찾은 정 지사가 정감록의 저자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법보종찰 해인사의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 보관 전경.
▲법보종찰 해인사의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 보관 전경 (해인사 제공)

흥선대원군의 명당에 대한 집착은 대단했는데요, 도굴을 염려해 관위에 만근에 달하는 쇠를 녹여 붓고 석회를 발랐다고 합니다. 이는 명당자리를 알려준 지사 정만인이 '석회 300포로 단단히 막으라'는 조언에 따른 것이라 합니다.

이 조언을 실행한 덕분에 남연군묘는 1868년 오페르트의 도굴도 피하게 됩니다. 당시 통상을 요구하던 오페르트는 남연군묘를 도굴해 시신을 담보로 통상교섭권을 받아내려는 후안무치한 짓을 벌였는데 실패하면서 외히려 쇄국정책이 강화되고 도굴에 가담한 천주교인들이 참형을 당하는 등 천주교 박해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경기도 연천 남송정의 남연군묘는 덕산 가야사까지 500리 길을 옮겼습니다. 지역주민들이 릴레이 방식으로 동원됐고, 마지막 구간은 덕산면 광천리 남은들 주민들이 참여했는데 이때 사용된 상여가 주민들에게 기증됐고 마을이름을 따 ‘남은들상여’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남은들상여는 전통 궁중식으로 장강위 구름차일을 친 용봉상여입니다. 네귀에는 용모양의 금박이, 중앙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동자상이 있으며 휘장은 검정, 노랑, 희색 천으로 근엄하면서도 호화스럽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남연군묘 상여각에 보관중인 '남은들상여'.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중이며 이곳에는 복제품이 전시돼 있다.
▲남연군묘 상여각에 보관중인 '남은들상여',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으며 이곳의 것은 복제품이다

남연군묘 상여각에 보관중인 '남은들상여' 복제품
▲남연군묘 상여각에 보관중인 남은들상여 복제품

남연군묘의 상여각에는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무형문화재인 대목장과 소목장들이 참여해 만든 복제품이 전시되고,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기탁 보관 중입니다.

남은들상여를 보관하는 상여각. 현재는 복제품을 보관중이다.
▲남은들상여를 보관하는 상여각, 현재는 복제품을 보관중이다

남연군묘를 정면에서 바라보면 묘 우측에 묘비석이 있습니다. 앞면에는 '有明朝鮮國顯祿大夫 南延君兼五衛都總府都摠管 贈諡忠正完山李公諱球之墓 郡夫人 驪興閔氏示+付左(유명조선국현록대부 남연군겸오위도총부도총관 증시충정완산이공휘구지묘 군부인 여흥민씨부좌)'라고 관직과 시호, 본관, 성명, 부인의 순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의문이 생깁니다. 왜 ‘전주이공’이 아니고 ‘완산이공’ 이라고 했을까요? 혹시 남연군을 양자로 들이면서 동성타본을 받아 들인걸까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표현이라고 합니다. 전주는 백제시대 완산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비문에서 사용한 완산은 전주와 동일 지명입니다.

남연군묘의 묘비석. 사진 왼쪽은 전면, 오른쪽 위는 후면, 오른쪽 아래는 측면.
▲남연군묘의 묘비석, 사진 왼쪽은 전면이며 오른쪽 위는 후면, 오른쪽 아래는 측면

묘비의 후면에는 묘를 이장한 이유와 추모하는 글들이 적혀있습니다(도민리포터 편집기가 한자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해 기록을 남기지 못해 아쉽습니다). 측면에는 남연군의 아들인 흥선대원군이 묘를 이장했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묘의 앞으로는 상석과 석등인 장명등이 세워져 있습니다. 상석은 제사 음식들을 올리는 상으로, 혼들이 놀다간다는 의미에서 혼유석이라고도 합니다. 아래 받침이 되는 석물은 고석(鼓石), 우리말로 북돌입니다. 모양이 북을 닮았기 때문인데 소리로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상석 전면의 장명등은 1품 재상 이상 품계를 갖춘 묘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항상 불을 밝혀 지켜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답니다.

남연군묘의 석물들. 사진 왼쪽은 장명등(석등),
▲남연군묘의 석물1, 사진 왼쪽은 장명등(석등), 오른쪽 아래는 북돌로 받친 상석(혼유석) 

상석의 좌우로는 돌로 조각한 ‘양’의 모양인 ‘석양’이 있습니다. 사악한 것을 피한다는 의미와 못된 귀신을 몰아낸다는 의미를 함유하고 매장자의 명복을 비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바깥쪽으로는 망주석(望柱石)이 있는데 이는 원래 차양을 치는 것이지만, 멀리서도 묘가 있음을 알리는 징표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남연군묘의 석물들2.
▲남연군묘의 석물2. 사진 왼쪽은 장주석, 오른쪽은 상석 좌우에 세워진 석양

남연군묘 제각은 묘제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로 1960년대까지 명맥을 이어오다 소실됐습니다. 가야사지 3차 발굴조사를 통해 가야산 석문봉, 남연군묘와 일직선상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남연구묘 제각의 위치
▲남연군묘 제각의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 뒤편으로 남연군묘가 있다

가야사는 예산군이 2012~14년까지 3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8동의 건물지가 확인됐습니다. 폐사가 될 당시 99개 사암을 말사로 거느려 인근 수덕사보다도 컸다고 전해집니다.

가야사 위치
▲가야사지 추정 불전지 청동불두와 소조나발이 확인돼 불전지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2명의 황제를 배출한 천하명당도 대한제국이 망하면서 쇠락해 남연군묘를 옮긴 지 47년 후 일본군들에 의해 파헤쳐 땅의 기운이 사라지고 황폐화됐다가 복원을 거쳐 최근 관광명소로 탈바꿈했습니다.

천하명당인 남연군묘로 향하는 길은 산책로가 조성돼있다. 오른쪽에 모아진 돌은 예산군이 2012~14년까지 3차례 조사를 통해 발굴된 가야사 주출돌.
▲천하명당 남연군묘로 향하는 산책로, 오른쪽 돌은 예산군이 3차례 조사를 통해 발굴한 가야사 주춧돌

남연군묘로 향하는 길의
▲남연군묘로 향하는 길의 옥계저수지 둘레길과 곳곳에 설치된 정자 
 
남연구묘로 향하는 이정표
▲남연군묘로 향하는 이정표와 덕산도립공원 안내소 및 가야9곡 안내도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알려진 가야산 인근은 최근에도 불법으로 묘를 쓰려는 사람들이
▲명당으로 알려진 가야산 인근 덕산도립공원에는 최근에도 불법으로 묘를 쓰려는 사람들이 적발된다  

시대를 불문하고 풍수지리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명당’은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일까요? 풍수지리는 산수의 형세와 방위로 땅의 기운을 파악해 인간의 길흉화복에 접목해 집과 묘지를 잡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삼국시대 도입돼 오늘날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고려와 조선의 도읍인 개성과 서울은 풍수지리상 완벽한 왕도의 자리라고도 합니다.

권력을 쥐고도 더 많은 권력과 부귀를 위해 풍수지리에 목을 매는 일들이 약간 어처구니 없기도 한데요, 초여름 시원한 가야산 바람을 맞으며 덕산도립공원 산행에 나섰다가 천하명당의 기운을 받아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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