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으로 봄의 향연을 연주하듯 나풀거렸던 싱그러운 숲속 길, 백제의 숨결을 느끼며 5월 공산성의 성곽길을 산책하며 마주했던 공주 천주교 황새바위 순례성지로 발걸음을 옮겨 십자가의 길, 빛의 길, 십자가의 언덕, 묵주기도의 길 등을 산책하듯 걸어 보았습니다. 한국 천주교 역사상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남긴 황새바위 순례성지입니다.
 


황새바위 순례성지는 공산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공주 초행자라도 느긋하게 걸어 10~15 분 정도면 둘러볼 수 있습니다. 오일장인 산성시장, 공주중학교가 주변이 있으며, 주차장에서 보면 언덕 위 작은 동산으로 올라가는 돌계단과 마치 '내게로 오렴' 하며 두 팔을 벌려 맞이하는 하얀 예수 성심상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황새바위 석비 앞으로 몇 계단만 오르면 황새바위 순례성지 안내도를 볼 수 있는데요, 살펴 보니 상당히 넓은 곳에 걸쳐 조성되어 있어 굳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순교 성지란 의미를 생각하며 가볍게 이정표를 따라 산책하듯 걸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몽마르뜨 앞에는 철쭉꽃도 활짝 피어 반갑게 맞아 주네요.
 




우측으로는 철쭉, 황매화가 곱게 핀 순교자 광장으로 올라가는 길이, 왼쪽으로는 5월의 신부 부케처럼 철쭉이 동글동글 화사하게 핀 십자가의 길이 나 양쪽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먼저 예수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마지막 시간을 형상화한 1처에서 14처까지의 과정을 새긴 십자가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숲길로 이어져 누구라도 걷기에 좋은 길이며, 길 따라 철쭉꽃 속에는 예수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신 제1처에서 무덤에 묻히시는 내용의 제14처까지 볼 수 있는데요, 그늘 아래로 푸른 잎만 무성했지만 양지쪽엔 철쭉꽃과 애기똥풀이 예쁘게 피어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길 끝에 다다르면 잔디로 조성된 작은 광장의 성모 동산에 봄을 속삭이는 듯한 연둣빛 나무와 절정의 철쭉꽃이 활짝 피어 여행자의 마음을 녹여주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 그리고 성모상 앞에 낮추어 기도하고 싶은 생각을 절로 들게 합니다.





십자가의 길과 성모동산을 둘러보고 올라오면 순교 광장이 내려다보입니다. 순교 광장엔 입구의 돌문과 순교탑, 열두 개의 빛돌, 무덤 경당 등이 있습니다. 열두 개의 빛돌은 열두 사도를 상징하며 이곳에서 순교하신 337명과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비석으로 아무 이름도 쓰여 있지 않은 채 투박하고 거친 모습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두 개의 칼을 맞댄 모습을 본떠 만든 순교탑의 형상 안에는 십자가의 달린 예수상이 걸려 있으며, 누군가의 정성을 담은 기도의 불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돌무덤을 형상화한 무덤 경당은 죽음과 부활이 함께 공존하는 곳입니다. 무덤 경당 내부로 들어가면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기도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좁은 문이 보여 가 보니 공간은 아담했으며 벽에는 건축물 완공 당시까지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 248위의 이름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중앙에는 예수의 무덤을 재현한 석관과 그 앞에는 통고의 성모자상이라는 조각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순교 광장에서 고즈넉한 빛의 길을 따라 올라오면 왼쪽으로 부활 경당이 보입니다. 힘을 주어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면 4000여 점 백자도자기 평판 벽화 작품들이 모여 아름다웠습니다.







부활 경당에서 올라오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이고 돌로 단을 쌓은 곳에 십자가가 놓인 십자가의 언덕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언덕 앞에는 부활 광장으로 큰 돌 제대와 12개의 거석이 세워져 있는데요, 12개의 거석들은 12사도와 순교자들을 상징하며 거석 뒤에는 337위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습니다.







부활 광장 거석에 새겨진 순교자들의 이름을 보고 숙연해지는 마음을 여미며 내려와 하얀 꽃잔디가 곱게 피고 황새바위의 중턱을 휘도는 묵주기도의 길은 겸손을 품게 되고, 상실된 기억의 언저리는 힐링으로 새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신록의 5월, 종교를 떠나 공주의 황새바위 순례성지를 느림으로 산책해 보시면 어떠실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