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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대한민국 독립운동·불굴의 상징 ‘유관순’

충남의 여성독립운동가 ④유관순(柳寬順, 1902~1920)

2019.04.15(월) 11:46:32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유관순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항거’의 한 장면

▲ 유관순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항거’의 한 장면



정동교회 다니며 애국심 키워
아우내장터서 만세운동 주도
옥중서도 ‘대한독립만세’ 외쳐

 
유관순은 1902년 12월 16일에 충남 천안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 338번지에서 아버지 유중권(柳重權)과 어머니 이소제(李少悌)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영명여학교에서 공부했고 1915년 기독교 감리교 충청도 교구 본부의 미국인 여자 선교사 샤프부인(사애리시)의 주선으로 이화보통학교 2학년 교비생으로 편입했다. 1918년 3월말에 보통과 과정을 마치고 그 해 4월에 이화고등보통학교 1학년에 입학해 1919년 3월은 1학년 과정 말에 재학 중이었다.
 
유관순은 이화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 인근의 정동교회를 다니며 손정도목사와 이필주 목사의 목회를 듣고 애국심을 키웠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33명 민족대표들이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을 외치는 시위운동의 소식이 정동에 있는 이화학교에까지 전달됐다. 유관순은 친구 몇 명과 함께 교장고 교직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내의 시위운동에 합류하기도 했다.
 
조선총독부는 학생들의 참여를 막기 위해 3월 10일부로 휴교령을 내렸고 학교는 문을 닫아버렸다. 3월 13일 유관순은 사촌언니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가슴에 품고 천안으로 돌아왔다. 보름 이상 천안·연기·청주·진천 등지의 교회·학교를 돌아다니며 3.1운동을 준비했다. 그리고 4월 1일의 아우내 장날을 이용,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성남면·갈전면 주민들과 유관순이 속한 동면의 주민들은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합동으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했고 3월 31일 자정을 기해 다음날의 독립만세시위 계획을 알리는 봉화를 올렸다. 4월 1일 오전 9시, 병천 장터에는 천안군 일대뿐만 아니라 청주·진천 방면에서도 장꾼과 장꾼을 가장한 시위군중 3000명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유관순은 미리 만들어 온 태극기를 시위군중에게 나누어주었다. 유관순은 장대에 매단 큰 태극기를 들고 시위대열에 앞장섰다. 오후 2시경, 응원요청을 받은 헌병 분견대원과 수비대원 30여명이 트럭을 타고 도착하여 총검을 휘두르고 무차별 사격을 감행했다. 시위군중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일본 헌병들은 시위군중을 끝까지 추격하면서 발포하고 칼로 쓰러뜨렸다. 일본군의 잔혹한 총격과 총검에 유관순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해 19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관순과 만세시위자들은 체포되어 공주로 송치되었다. 그리고 일제의 판결에 불복해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3년형이 확정됐다.
 
서대문 감옥에 투옥된 유관순은 감옥에서도 독립만세를 부르다 심한 고문을 당했다. 1920년 3월 1일 3.1운동 1주년이 되었을 때 유관순은 또다시 감옥 안에서 독립만세를 부르짖었다. 유관순의 만세 선창을 듣고 투옥된 이들이 따라서 만세를 부르자 형무소 안은 만세 시위장을 방불케 하였다. 형무소 옥리들은 제일 먼저 만세를 선창한 유관순을 끌어내어 난타하였고 매를 맞은 관순의 내장과 방광은 파열됐다.
 
고문의 휴유증과 폭력으로 인한 상처로 유관순의 육신은 허물어졌다. 1920년 9월 28일, 만 18세의 나이로 유관순은 서대문 감옥 안에서 죽음에 이르렀다. 함께 감옥에 투옥되었던 어윤희에 의하면 당시 유관순은 자기 육신의 고통보다도 부모를 잃고 남겨지게 된 동생들에 대한 걱정으로 상심하고 슬퍼했다고 한다.
/충남 여성문화사 총서Ⅱ
/김혜동 khd1226@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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