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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천년을 살아 숨쉬는 건축…혼을 바치다

충남인 - 서산 장운진 대목장

2019.04.05(금) 10:41:28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장운진 대목장이 본인이 직접 지은 한옥집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다.

▲ 장운진 대목장이 본인이 직접 지은 한옥집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다.


 

충남 무형문화재 제55호 지정

 

15세 입문…50여년 외길 정진

후계자 양성·문화재 보존 주력

 

“이 무식한 놈이 노력해서 대목장까지 됐어...사람 200명 앞에서 우리 시장님한테 증서를 받을 적에 눈물이 나서 고개를 들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어렵게 해왔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 이 일을 배운다고 하면 열심히 가르쳐줄 생각이에요. 충남도 무형문화재로써 부끄럽지 않도록 남은 인생 더 열심히 해야죠.

 

최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55호로 장운진 ‘대목장(大木匠)’이 신규 지정됐다. 15세에 입문해 50여년을 전통건축 분야에 정진해온 장운진 씨는 뛰어난 전승기량과 함께 전통도구 및 시설을 체계적으로 갖춘 공방, 전승체계를 잘 갖추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받아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소감을 말하는 그의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는 인정서 전수식 당일의 벅찬 감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아버지 등 너머로 배워 목수일을 시작한 지 햇수로만 53. 뒤돌아보면 주마등같은 시간이었다.

 

가난을 떨쳐버리려 시작했던 목수일로 일가를 이루고 명성을 얻기까지 그냥 흘려보낸 시간은 없었다. ‘살아온 이야기를 하자면 날밤을 새고도 부족하다’는 그의 말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무를 가지고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만드는 사람을 목장(木匠)·목공(木工)·목수(木手)라 불렀다. 궁궐이나 사찰 또는 큰 집을 지을 때는 많은 목수들이 참여했는데, 목수들 중에는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감독하는 총책임자가 있었다. 이 사람이 ‘대목장’이다.

 

대목장이 되기 위해선 건축과 관련된 모든 기술과 기법을 완벽하게 알고 있어야 했다. 수십 년에 걸친 현장경험과 스승으로부터 배운 가르침에 더해 눈썰미와 기술이 극히 좋은 일부 사람만이 대목장이 됐다. 그 중 무형문화재는 전국적으로도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

 

장운진 씨가 처음부터 대목장을 꿈꿨던 것은 아니다. 이제 막 어린티를 벗은 15, 동무들과 같이 학교에 갈 나이였지만 집안 사정은 교과서 한 권 장만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동네 이 집 저 집을 전전해가며 농사일을 거들고 낡은 한옥을 수리해주며 푼돈을 받아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목수였던 아버지의 등 너머로 배운 기술은 그렇게 장 씨 가족의 호구지책이 됐다.

 

“남의 집에서 얹혀 집도 고쳐주고 농사일도 도와주면 1년에 쌀 3가마를 품삯으로 주던 시절이었어요. 일이 힘들긴 했지만 집을 짓는 게 의외로 재미있고 적성에도 맞더라구요. 나중에는 주인집에서 서로 오라고들 난리였지. 그렇게 10년을 남의 집으로만 돌았네요.

 

스물여섯이 되던 해 장운진 씨는 지금의 아내 유세자 씨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부석면 가시리 그의 고향마을에 방2, 부엌1칸으로 된 작은 집을 손수 짓고 5남매를 낳아 길렀다.

 

‘쟁이’라고 하면 ‘상놈’ 취급을 받던 시대였다. 하지만 일곱 식구를 먹여 살리려면 목수일 만한 게 또 없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지며 집짓는 기술도 나날이 좋아졌다. 스물일곱 되던 해에는 도편수를 맡아 서산 팔봉면에서 17칸 짜리 한옥을 지었다. 솜씨 좋은 젊은이가 나무값, 품값 속이는 일 없이(당시엔 나무값을 속여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장 씨는 회상했다.) 집을 잘 짓는 다는 소문은 서산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 금새 퍼져나갔다.

 

하지만 1년 이면 한옥 5~6채를 지었던 풍요로운 시절은 잠깐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며 오래된 한옥은 대다수 허물어지고 그 자리를 양옥이 대신했다. 그가 문화재 복원·수리에 참여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각종 복원·수리 현장에서 현장을 배운 그는 당시 건설현장 소장의 권유로 1995년 문화재수리기술자자격증을 취득했다. 전국에서 모인 200여명의 목수 중 당당히 1등으로 합격한 일화는 지금도 전설처럼 남아있다.

 

이후 서천군 문헌서원, 홍성군 조양문, 부여 충렬사, 태안향교 제기고, 서산 부석사 극락전 등 최근까지 장 씨는 도내 목조 문화재의 복원을 도맡다시피 해왔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도내 4명의 문화재수리기술자들과 경쟁 끝에 마침내 무형문화재로써 ‘대목장’의 호칭을 받았다. 그를 오랜 세월 안 이들은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장 씨는 대목장 지정을 계기로 후계자 양성과 문화재 보존에 더욱 힘을 쏟기로 했다.

 

“대목장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 그렇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온 세월이었어요. 내가 어렵게 살아왔기 때문에 대목을 배운다는 사람이 있으면 남김없이 전수해 줄 생각이에요. 방치되고 썩어가고 있는 전국의 문화재들을 되살리는데 남은 여생을 바치고 싶습니다.

/김혜동 khd1226@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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