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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공주의 만세운동과 여성들의 활약

충남의 여성독립운동가 ③김현경·박루이사(박화숙)

2019.03.25(월) 00:01:14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일본 헌병들의 여성동립운동가 박해를 묘사한 삽화

▲ 일본 헌병들의 여성동립운동가 박해를 묘사한 삽화



교사·학생으로 만세운동 주도
시민 1000여명 동참 이끌어

 
3·1운동 당시 공주에서는 의당면(4.1), 정안면 대산리(4.2), 장기면 대교리(4.3), 우성면 도천리·쌍신리·동대리(4.3), 탄천면(4.3), 주외면 용당리(4.4), 목동면 이인리(4.4), 계룡면 경천리(4.4), 반포면 상신리(4.5) 등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 여성들도 적극 참여했다. 당시 공주 영명학교에 교사로 재직 중이었던 김현경(金賢敬, 1897. 6. 20~1986. 8. 15.)이 있다.
 
4월 1일 영명여학교 교사 이규상과 김현경은 자기 집에서 모여 논의하고 이활란과 여학생 6~7명이 2시에 전개될 만세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물건을 사는 척 위장해 시장으로 잠입했다.
 
공주읍 교회의 여성 신도들도 시장으로 모여들었다. 공주장터에 도착한 김현경과 이규상은 약속한 오후 2시가 되자 김수철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르자 대략 1000여명에 달했던 시장사람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했다.
 
그리고 영명학교 학생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동시에 독립선언서를 시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배포하고 만세시위에 앞장섰다. 
 
김현경은 8월 29일에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미결로 약 5개월간의 옥고를 치루고 출옥하였다. 공주형무소에 투옥되었을 때 김현경은 유관순을 처음 만났고 그것이 인연이 돼 죽음까지 지켜봤다.
 
김현경은 25살 되던 해에 서울신학대학 출신인 박상덕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충남 홍성에서 구멍가게로 생계를 이어가다가 89살을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공주 만세시위에 참가한 또다른 여성이 박루이사이다. 박루이사의 본명은 박화숙이다. 1913년에 공주 영명여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고 1915년에 영명여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이화고등보통과로 편입하였다. 재학 중에 서울에서의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3월 23일 경에 공주로 귀향하였다. 이활란과 함께 3월 23일 영명여학교 교실에서 여학생 김양옥(金良玉) 외 수명과 모여 공주에서도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했다.
 
박루이사는 일본으로 건너가 신호대학원 음악부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영명학교에서 음악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1926년에 미국 뉴욕에 있는 시러큐스 대학교(Syracuse University)으로 유학하고 1929년에 돌아와 다시 영명여학교의 음악교사를 지냈다.
/이명화(도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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