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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조선시대 최고 풍경 보령 '충청수영성'

복원 거쳐 관광명소... 인근 항만 관광 가능

2016.12.14(수) 16:04:32 | 낭만해맑 (이메일주소:smellsung@naver.com
               	smellsung@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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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최고 풍경을 자랑하는 보령 '충청수영성'을 아시나요. 이곳은 사적 501호로 승격 지정된 곳으로  충청도 수군절도사영이 있던 수영(水營)의 성으로 1510년에 축조하였고, 구릉의 정상을 중심으로 주변에 성을 쌓아 성 안에서 성 밖을 관망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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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진남문(鎭南門)·만경문(萬頃門)·망화문(望華門)·한사문(漢舍門) 등 4문은 모두 없어지고, 서쪽 망화문터의 아치형 석문(石門)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 성은 해변의 구릉을 정점으로 쌓은 성이어서 바다를 관측하기에 좋은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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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수영성은 성곽과 성문만 남아 있었는데 다양한 방법으로 건물들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그중 2015년 복원된 곳이 바로 영보정입니다. 영보정은 충청수영성하면 떠올리는 건물중 하나입니다. 조선시대 서해 해군사령부였던 충청수영성의 대표시설인 누각 영보정(永保亭)은 영보(永保)는 '영원히 보전한다'는 뜻으로 천험(天險), 인화(人和), 정관지락(亭觀之樂)을 영원히 보존한다는 의미이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충군우국지의(忠君憂國之意)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영보정은 1878년(고종 15년) 화재로 소실된 이후 보령시가 영보정의 일제 침략기에 대부분이 파괴된 충청수영성의 흉터를 치유하는 의미를 갖고 복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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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보정은 뛰어난 경치로 조선시대 많은 시인들이 찾아와 경치를 즐기며 많은 시문을 남겼다고 합니다. 특히 다산 정약용은 이곳을 조선 최고의 정자로 묘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영보정에 오르면 보이는 곳이 나뉘는데 한켠에는 오천항이 보입니다. 매우 작은 항이지만 주말이면 배낚시를 목적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오천면에 부속되어 있는 원산도, 효자도, 호도, 녹도, 삽시도, 외연도, 황도, 횡견도 등으로 여객선이 운항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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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수영성 동쪽으로는 보령방조제가 보이는데요. 방조제는 천북면과 오천면을 이어주는 길로 수문이 있는 쪽이 천북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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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길을 따라 내려가면 기와집이 보이는데 진휼청입니다. 조선시대 흉년이 들었을 때 가난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위해 먹을 것을 지원해주는 등의 구휼 활동을 펼친 기관으로 조선시대 버전 공립사회복지기관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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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휼청은 충청수영 폐지 이후 민가로 쓰이던 것을 토지와 건물을 매입해 관리하던 것이 현재 모습으로 복원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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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수영성이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경치만은 조선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충청수영성을 둘러본 시간은 몇 시간에 불과하지만 역사적 의미는 잘 알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말 조선시대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던 보령 충청수영성을 찾아 둘러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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