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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한 부의 신문만큼은

의문지망과 새벽 비

2016.04.21(목) 04:50:05 | 홍경석 (이메일주소:casj007@naver.com
               	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은 턱도 없이 배반과 배신을 자행한다. 그러나 계절은 그렇지 아니하다. 지금 내리고 있는 새벽비만 해도 그렇다. 어제의 곡우(穀雨)에 걸맞게 지금껏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있으니 말이다.

비는 사랑입니다.

▲ 비는 사랑입니다.



잠시 전 밖에 나가 새벽 비를 조금 맞고 들어왔다. 평소 비를 어지간히 좋아한다. 아니 차라리 ‘사랑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지금 내리고 있는 비는 분명 희망의 메시지까지를 담고 있다. 많이 비었던 저수지 등에 두둑한 적금처럼 들어찰 것임은 물론이요 무릇 온갖 동물과 식물들에게 있어서도 생명의 활력까지를 선사할 것임에.

추운 겨울과 달리 지금 같은 봄의 새벽 비는 제법 맞을 만 하다. 어떤 처자는 다만 한 방울이라도 맞으면 마치 금세 죽기라도 하는 양 바락바락 비명을 지르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나는 다르다. 비는 참 ‘고마운 친구’인 까닭이다.

소년가장이던 시절, 지금처럼의 새벽 비를 맞으며 천안역으로 나갔다. 그리곤 벌써 도착해있는 신문을 정리했다. 비가 오는 날의 신문냄새는 더욱 상큼하기 마련이다. 그 신문을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역 앞의 시외버스 차부로 향했다.

버스에 올라 발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에게 신문을 팔았다. “신문 왔어유~ 금방 도착해서 따끈따끈해유.” “그놈 말하는 것도 귀엽네. 나 하나 다오~” 여명이 다가올 무렵이면 제법 신문을 다 팔았다.

하지만 불변의 원칙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어떠한 경우라도 한 부의 신문만큼은 반드시 남기는 것이었다. 그래야 아버지도 보시고 나 또한 그걸 읽으며 부족하기 짝이 없는 무지의 댐에 지식의 빗물을 공급할 수 있는 때문이었다.

물론 그때나 지금 역시도 내게 있어선 의문지망(倚門之望)의 희망이라곤 없었다. ‘의문지망’은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依支)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子女)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허나 어머니가 없었던 나로선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던 셈이다. 학교를 갔던 딸이든, 돈을 벌려고 밖에 나갔던 아들이든 간에 가장 절실한 건 귀가할 적에 자신을 반가이 반겨주는 의문지망의 어머니의 존재 여부일 터다.

따라서 사진은커녕 기억조차 전무한 어머니는 따라서 지금 역시도 나로선 미움의 트라우마로만 우뚝할 따름이다. 이제 모레면 아들과 딸이 집에 온다.

더욱이 지난달에 결혼한 딸은 난생 처음으로 ‘친정’에 오는 것임에 의미가 각별하다. 아내는 진즉 의문지망의 어머니가 되어 마음까지 동동거리고 있다. 새벽 비는 차갑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우산을 들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훈훈하다. 그런 아버지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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