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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진주 정씨 가문 정분·정지산의 정려

2016.02.10(수) 16:06:09 | 맛난음식 (이메일주소:linecplan@naver.com
               	linecplan@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주 여행갔을 때 정지산 이라는 곳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지산 정려가 그곳인 듯 싶어 찾아갔는데요. 전혀 상관이 없던 곳이더라구요. 외진 곳에 있는 정분·정지산 정려는 공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14km 떨어진 곳입니다.
 

호계리 일대

▲ 호계리 일대


정지산 정려는 저 건너편에 있는 곳인데요. 호계리는 지방도 629번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보면 0.5km 떨어진 곳에 있구요. 그곳 근처에 가보면 정지산 정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진주 정씨 집성촌

▲ 진주 정씨 집성촌


이렇게 한적한 곳에 고목들과 비석이 세워져 있네요. 정분·정지산은 조선 후기의 충신 및 효자랍니다. 

이곳에는 500여 년 전부터 200여 호의 진주 정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고 합니다.  충신 정분·정지산 정려 앞에는 보다시피 정분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고, 뒤편에는 진주 정씨 재실과 충효사가 있습니다.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18호로 지정된 곳이랍니다. 
 

정려앞의 고목

▲ 정려앞의 고목


정분은 세조때 사사당했지만 1746년(영조22)에 복관된 후 1804년(순조4)에 명정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주시에서 이곳에 정려를 짓고 옮겨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분.정지산 정려각

▲ 정분·정지산 정려각


정분·정지산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익공 계통 맞배지붕 건물로 사면에는 홍살문이 둘러져 있는 상태입니다.
 

정려에 대한 안내

▲ 정려에 대한 안내


정분은 그 유명한 수양대군이 집권하기 위한 계유정난 때 낙안으로 유배되었다가 1454년에 사사되었다는 내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분이 사사당하고 정효안의 아들이었던 정지산이 입양되었지만 단종이 죽자 김시습 등과 함께 계룡산 동학사에 제단을 쌓고 단종과 단종을 따랐던 사육신을 기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학사에 숙모전이 위치하게 된 것이었군요.
 

정려의 현판

▲ 정려의 현판


상당히 긴 문구가 쓰여져 있는데요. '충신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겸령경연사감춘추관사증시충장정분지문충신효자증정이품자헌대부내부대신행통훈대부호조정랑정지산지문' 이랍니다. 
 

은거하며 살던곳

▲ 은거하며 살던곳



정분도 정분이지만 정지산도 대단하네요. 계유년에 정분이 유배지에서 명을 받고 죽자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어머니를 섬기기를 지극히 효성스럽게 하였으며 공주에 은거하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던 인물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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