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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으로 선정된 공주 송산리 고분군

꽃미남에 엄친아였던(?) 백제 25대 무령왕을 다시 생각하며

2013.07.28(일) 11:46:37 | 권순도 (이메일주소:djshsjshsywy@hanmail.net
               	djshsjshsywy@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자면“身長八尺 眉目如畵 仁慈寬厚 民心歸附”입니다. <신장팔척 미목여화 인자관후 민심귀부>입니다.

 이를 해석하면 “키가 8척(180cm)이나 되고 눈썹과 눈은 그림 같았다. 성품은 인자하고 관대해 민심이 그를 따랐다."
 이 정도면 요즘 젊은 사람들이 칭하는 꽃미남에 롱다리, 쭉빵 아닐까요. 거기다가 성격까지 좋으니 엄친아에 해당된다 하겠습니다.

한국인이꼭가봐야할한국관광100선으로선정된공주송산리고분군 1

▲ 백제 25대 무령왕.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 모형 전시실 안에 있는 흉상.


  이분이 누굴까요? 백제 제25대 임금 무령왕이십니다. 1500년 전 무령왕께서는 당대 최고의 ‘미스터 백제’였던것 같습니다.

 이분이 누워계셨던 무덤이 공주의 무령왕릉이고, 이곳에는 무령왕릉을 포함해 송산리 고분군 1~6호분이 있습니다.

 지난 1달 전에 공주시민들, 더 나아가 충남도민들에게는 반갑고 기쁜 낭보가 전해졌습니다. 다름 아닌 웅진 백제시대 왕과 왕족의 무덤이 있는 이 송산리 고분군이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송산리 고분군 전경

▲ 송산리 고분군 전경
 

1~4호분

▲ 1~4호분 측면
 

1~4호분 뒤 위에서 본 전경

▲ 1~4호분 뒤 위에서 본 전경
 

1~4호분 설명 안내

▲ 1~4호분 설명 안내


 한국관광 100선으로 선정한 송산리 고분군은 네티즌과 우리나라 여행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객관적으로 선정한 것이니 누구도 그 가치를 부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송산리 고분군은 백제시대 왕과 왕족의 무덤들입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6호분이 있고 동북쪽에는 1∼4호분이 있습니다. 1∼6호분은 일제 강점기에 조사되어 고분의 구조와 형식이 밝혀졌고, 무령왕릉은 1971년 5, 6호분의 보수공사 때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5호분 전경

▲ 5호분 전경
 

5호분 정면 입구(영두 폐쇄)

▲ 5호분 정면 입구(영두 폐쇄)
 

6호분 측면 전경

▲ 6호분 측면 전경
 

6호분 정면(영구 폐쇄)

▲ 6호분 정면(영구 폐쇄)
 

5~6호분 설명 안내

▲ 5~6호분 설명 안내


 하지만 안타깝게도 5호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사 전에 도굴되었습니다.
 6호분과 무령왕릉은 현재 두 개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벽돌무덤(전축분)이라고 합니다. 두 무덤 모두 벽돌로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반복하는 방법으로 벽을 만들었으며 긴 배수로가 있고 터널형 널방(현실) 앞에 널길이 있습니다.

 백제가 도읍을 웅진으로 옮긴 후 조성된 왕릉군인데 이 시기 백제왕실의 무덤구조 연구에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합니다.

 대개 무령왕릉이라 하면 초중고 시절 역사책에서 많이 배웠기 때문에 금세 알고 이해하지만 송산리 고분군이라고 하면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무령왕릉은 송산리 고분군 즉 송산리에 있는 여러 무덤중 하나인 백제 무령왕의 무덤입니다. 그런 사실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무령왕릉과 송산리 고분군을 햇갈려 하시거나, 그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송산리 고분군이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이번에 제대로 한번 배우고 이해하고 넘어가시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무령왕릉도 사실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도굴돼 빼앗길 뻔한 아슬아슬한 역사적 위기가 있습니다.

송산리 고분군 앞에 조성된 생태연못과 활짝 핀 연꽃

▲ 송산리 고분군 앞에 조성된 생태연못과 연꽃
 

흰 연꼿

▲ 흰 연꼿
 

빗물을 머금은 생태연못의 꽃

▲ 빗물을 머금은 생태연못의 꽃


 당시 공주에서 교사로 재직중이던 일본인 가루베 지온이라는 사람이 백제 유적지를 발굴하러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말이 발굴이지 도굴꾼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우연히 송산리 고분군을 발굴해 도굴했는데 거기서 무령왕릉의 존재를 미처 모르고 지나쳤으니 망정이지 그가 무령왕릉까지 도굴했다면 지금 우리가 박물관 등에서 만나는 찬란한 백제 유물과 문화유산은 구경도 못할뻔 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 무덤인 무령왕릉에서는 108종, 4천600점의 유물이 수습됐고 그중에 국보로 지정된 유물만 12종목 17점에 달합니다. 그것을 도굴당해 일본으로 빼앗겼다고 생각하면...

 아, 정말 꿈도 꾸기 싫은 일인데, 천지창조를 일군 신께서 우릴 도와주신듯 합니다.
 현재 무령왕릉을 비롯해 송산리 고분군은 원형 보전을 위해 사실상 영구 폐쇄 되어 있습니다.

 다만 무령왕릉만 실제 모형 그대로 재현해 내외부를 전시하고 있고 나머지 1~6호분은 역사적 유물을 후손들에게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영구 폐쇄하여 놓았습니다.
 무령왕릉을 보러 가시면 대개 거기만 보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바로 위에 1~6호분이 모두 있으므로 내부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외부를 전체적으로 한번 둘러 보시는게 당시 백제역사를 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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