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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능사구간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각자성석(刻字城石)공개

백제에서 처음 확인된 ‘각자성석’ 백제의 금석문 연구에 귀중한 자료

2013.05.23(목) 10:16:41 | 부여군청 (이메일주소:buyeogun@daum.net
               	buyeogun@daum.net)

발굴조사로 확인된 각자성석(刻字城石).

▲ 발굴조사로 확인된 각자성석(刻字城石).


부여군은 문화재청(청장 변영섭)이 허가하고 (재)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단장 윤근일)에서 발굴조사 한 부여나성(국가사적 제58호) 능산리 구간에 대한 학술자문회의를 23일 개최하고 발굴조사로 확인된 ‘각자성석(刻字城石, 글자를 새긴 성돌)’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재)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가 부여군으로부터 부여고도보존사업의 일환인 부여나성 능사구간 조사를 의뢰받고 정비·복원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2012년부터 동나성구간(능산리사지 서측 구국도 4호선에서 북측 제1장대지까지 600m 구간)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나성의 성벽은 기존 조사와 마찬가지로 내탁식(內托式, 외면은 큰 돌로 쌓고 그 안쪽에 작은 돌을 넣어 채우고 다시 그 위쪽에 흙을 다진 축성법) 석성으로 축조됨을 확인했다.
 
성벽의 구조는 풍화암반을 계단식으로 깎거나 흙을 성토해 기저부를 조성하고 위에 흙으로 켜켜이 쌓아 토루를 조성한 후에 토축부 전면을 절토해 성돌을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또한, 부여나성 중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 동나성 2문지의 형태를 확인하였는데, 문지는 개거식(開渠式, 통로부가 트인 형식)이며 외성벽이 만곡되어 이어지고 있는 구조로 부여나성 동문지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울러, 나성의 성 내부의 토축부에서는 웅진기의 유물만 확인되고 있어 성벽의 축조 시기는 웅진기 정도임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각자성석(이하 刻石이라 명명함)’은 급경사지의 성벽에서 총 3점이 확인된 가운데 명문은 음각으로 새겼으며, ‘扶土’, ‘弓土’, ‘白虎□虎’가 새겨져있다.
 
‘扶土’명 각석은 고구려 등지에서 유행한 예서체이며, ‘弓土’는 북위 해서체이고, ‘白虎□虎’ 중 ‘虎’자가 북조에서 유행한 이체자로 보고 있으며, 당시 중국에서 서체가 유행한 시기와 나성의 폐성 시기를 비교하였을 때, 각석은 나성 축조시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부여나성 능사구간 발굴조사는 능산리사지 서측편의 남북 600m 구간에 대한 성벽의 실체를 확인하였다는 점과 성벽의 축조 수법에 있어 내탁식의 축조 양상이 확인되었다는 점, 동나성 2문지를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으며 백제에서는 처음 확인된 ‘각자성석’은 백제의 금석문 연구에 있어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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