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찬란할 수 없는 슬픔을 아는가?!
늦은 오후의 가파른 햇살 실루엣을 이루는.
나지막한 소나무 숲이 굽이치듯 차창을 스쳐, 자꾸만 자꾸만 뒤로 물러났다. 생각해 보면, 아주 까마득히 먼 어느 날부터였던 것 같다. 길을 걷다가, 차를 타고 지날 칠 때도 그러 했다.
태안군 이원면의
어느 섬
저만치 소나무 숲 사이로 샛길이 보이면 와락, 가물가물 시야가 흐려지고 만다. 가던 길을 멈추어,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고 싶어진다.
한 그루의 소나무도 없는 산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이라니. 아마도 성장기 내내 주변을 감싸고 있던 게 소나무 숲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태안군 소원면
어느 곳.
그렇다고 내가 유별나게 소나무에게만 애착 한 건 아니었다.
집 아래 옹달샘 주변, 일직선으로 끝도 없이 뻗어나간 가지 끝에서,
바람 부는 날이면 작별을 고하듯 하얀 등을 내보이며 흔들거리던 미루나무 잎사귀. 어린이 합창단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햇살에 반짝이던 미루나무 두 그루는 어느 날 토막이 난 채로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걸 발견하던 순간, 맑은 음색으로 합창을 끝낸 어린이합창단원들의- 장갑 낀 하얀 손들이 허공을 향해 일제히 작별을 고하듯 … 또르르 또르르, 물빛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마을을 관통하는 길에서 집으로 향하는 중간 쯤, 부채처럼 가지를 펼쳐놓고 때가 되면 수많은 도토리들 투~욱 투~욱 던져주던 상수리나무.
밭으로 개간되기 위해 흔적도 없이 제거된 상수리나무는, 웅크린 내 유년의 의자도 함께 가져가버렸다.
태안군 소원면에서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
↑ 이원면
나의 성장기를 채색했던,
나무와 얽힌 얘기는 그 밖에도 끝이 없다.
굳이 소나무 숲길만이 나를 유혹하는 것 아니다.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그들 가까이에 숨 쉬어보고 싶고 공기를 마셔보고 싶고 사부작사부작, 걸어도 보고 싶어진다.
.
서산시 음암면쯤
어떤 나무이든, 나무들이 오롯이 서 있는 곳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감흥에 휩싸인다. 특히나 세상살이가 몹시 씁쓸하게 느껴질 때는 더더욱 나무에게 가까이 다가서고 싶어진다.
그리고 가끔은,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생각해 볼 때가 있는데.
꽃이 지는 모습은 처연하고,
풀잎의 스러짐은 쓸쓸하다.
바위나 돌멩이의 바스러짐은
죽음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생의 시작처럼 여겨진다.
그리하여 나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나무의 죽음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가로림만 입구
황금산의
소나무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은 언젠가 떠나가야 한다.
본인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왔다면 떠나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다만 그 떠남의 길이 지순하고 순결하길 바라는 마음과,
억만년이라도 펄펄 살아 숨 쉴 것처럼 세욕(世慾)의 기량을 뽐내는 이들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