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홍성에서 즐기는 역사이야기

홍성 제2경인 홍주성과 여하정

2013.04.02(화) 20:15:55 | goood33 (이메일주소:goood33@hanmail.net
               	goood33@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홍성에서즐기는역사이야기 1

 홍주아문(사적 제231호)
 

주말여행을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홍성으로 여행을 가기로 마음을 먹고
홍성으로 가는데 내포신도시에 도착하니까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충남도청이 내포신도시로 이전을 하였는데 아직까지는 기반시설이
완비가 되지 않아서 계속 공사 중인 것 같다.
충남도청 이전과 함께 충남도청이 힘찬출발과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홍성 홍주읍성에 도착하니까 커다란 나무와 태극기가 함께 홍주아문이 있다.
홍주아문는 사적 제231호로 조선왕조 때 홍주목의 동헌인 안회당의 외문으로서 1870년 당시 홍주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이 성의 동문인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같이 세운 것이다.
 
 

홍성에서즐기는역사이야기 2

 홍성 오관리 느티나무(도지정기념물 제171호)
 

홍주아문을 지나고 안으로 들어오니까 주변에 커다란 고목이 쌍을 이루고 서 있다.
고려조의 공민왕(1358년) 때에 식재한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으며,
수고는 20m이고, 둘레는 62m인 느티나무이다.
주변에는 또 다른 고목이 있는데 보호수로 관리를 하고 있다.
 

홍성에서즐기는역사이야기 3

 안회당(사적 제231호)
 

안회당은 홍주목의 동헌으로 22칸의 목조 기와집이다.
1977년 해체 복원 중에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조선 숙종 4년(1678년)에 처음 지어졌고, 고종 7년(1870)년 한응필 목사가 개축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고택의 아름다움과 멋을 알 수 있는 곳으로 현재까지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홍성에서즐기는역사이야기 4

 안회당의 의미
 

"안회당"이라는 편액은 흥선대원군이 하사 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안회는 "노인을 평안하게 모시고 벗을 믿음으로 하여 아랫사람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홍성에서즐기는역사이야기 5

 여하정(사적 제231호)


여하정은 안회당의 뒤뜰에 있는 작은 연못에 세워진 정자이다.
고종 33년(1896년)에 이승우 목사가 옛 청수정 자리에 세운 것으로
역대 홍주목사들이 관아 일을 돌보다가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홍주성과 여하정은 홍성8경 중 홍성2경으로 홍성의 역사유적지로 볼거리가 매우많다.
  
 

홍성에서즐기는역사이야기 6

 여하정의 연못에 비친 반영


과거에는 홍주목사들이 휴식도 취했지만 현재는 홍주군민과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장소이자 휴식처이다.
정자내의 기둥에는 시액 12현판이 걸려 있고, 
여하정의 규모는 작은 정자이지만 멋드러지게 늘어진 고목과
연못의 연꽃들의 정취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고 있다.
 
 

홍성에서즐기는역사이야기 7

 신앙 증거 터 목사동헌


조선시대 때 홍주목사의 동헌이 자리잡고 있던 곳으로 본래의 동헌(근민당)은 현존하는 동헌(안회당)의 서남쪽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천주교 박해시대 때 목사의 동헌 앞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이 문초와 형벌을 받던 장소이다.
그래서, 홍주목사의 동헌 터는 순교 선조들의 신앙이 깊게 베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홍성에서즐기는역사이야기 8

 새천년 기념식수한 느티나무


홍주읍성을 돌다보니까 새천년 첫해를 맞이하여 홍성군의 무궁한 발전과
군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333개 전마을에 3주씩 999주와
군청후정에 1주를 합하여 1,000주의 느티나무를 기념식수 했다고 한다.

 

홍성에서즐기는역사이야기 9

 홍주읍성 성곽길


홍성 홍주읍성(사적 제231호)은 길이가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성벽이 일부분 남아 있다.
홍주읍성 안에는 많은 문화재와 홍주군청이 있는 것이 특이하고,
홍주읍성 밖으로는 시내가 형성이 되어 있다.
홍주읍성 주변에는 최영동상, 성삼문동상, 한용운동상, 김좌진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홍성에서즐기는역사이야기 10

 병오의병기념탑

 
 

홍성에서즐기는역사이야기 11

 홍주성 수성비(도자정 문화재자료 제166호)


이 비는 1824년 황폐된 홍주성 보수를 오나공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이비는 원래 홍성읍 고암리에 있었으며, 비의 뒷면에는 성쌓기 작업을 주도하고 감독한 사람들의 직책과 이름이 있어 당시 사회상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홍성에서즐기는역사이야기 12

 석탑부재


홍주성 긴급보수 공사로 인해 남문 성벽 일부구간을 해체할 때 나온 석탑부재로 2011년에 현재 자리로 옮겼다.
 
 

홍성에서즐기는역사이야기 13

 홍주목사 선정비


조선시대 선정을 베푼 홍주목사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건립 당시 위치는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홍성읍 대교리 말무덤
옆으로 옮겨져 모아져 있던 것을 2012년에 홍주성역사관으로 다시 이전하였다.
 
 

홍성에서즐기는역사이야기 14

 홍주읍성 우물터


이 우믈은 2005년 홍성지원과 옹성지청이 이전하기 전까지 식수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홍주읍성 안 3개 우물 중 하나로 추정되며,
2012년 홍성 홍주읍성 내 역사공원을 조성하면서 외형을 보수하였다.
 
 

홍성에서즐기는역사이야기 15

 홍성 홍주읍성 옥


옥은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형벌을 집행하기 전에
수용하는 시설로 감옥 또는 원옥이라고도 한다.
홍주읍성 내에는 홍주지도를 통해 원형 담장안에 1개 동의 옥사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홍성에서즐기는역사이야기 16

 조양문(사적 제231호)


홍주성을 둘러보고 주변에 잇는 분께 조양문의 위치를 확인하고
잠시 도로에 주차한 후에 조양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조양문을 중심으로
자동차들이 쉴새없이 운행되고 있다.
조양문은 홍주성의 동문으로 문액은 대원군이 친필로 하사 하였으나 현재는 없다.
일제 강점기에 조양문을 파괴하려 하였으나 읍민들이 결사적인 반대로 화를 면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당시 의병과 일본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역사적인 현장이기도 하다.

 

goood33님의 다른 기사 보기

[goood33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