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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석별의 정 담아 충남도청을 배웅하며

충남도 내포신도시, 명불허전의 으뜸도시 되길

2012.10.19(금) 04:25:26 | 홍경석 (이메일주소:casj007@naver.com
               	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 천안시 봉명동 42번지. 내가 태어난 고향의 지번(地番)이다. 이후 와촌동과 성정동에서도 살다가 나이가 들어 아내와 결혼을 해서는 원성동에서 살았다. 이듬해 성정동으로 이사를 하여 아들을 낳았다.
 
당시는 천안이나 대전이나 모두 ‘충남’이라는 한 집안 식구였다. 그 즈음 다니던 직장에서 소장 승진 케이스가 되어 대전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천안의 친구들은 “헤어져 섭섭하긴 하지만 대전이나 천안이나 다 같은 충남 아니냐?”라며 석별의 정을 듬뿍 담은 술을 따라주며 배웅했다.
 
대전으로 와 처음으로 둥지를 튼 곳은 도마동이었다. 그러나 내 집이 아닌 셋집이었기에 기한이 되거나, 집주인이 세를 올리면 이사를 해야만 했다. 이후 옥계동을 경유하여 부사동에서 살 적에 둘째인 딸을 보았다.
 
사는 형편이 늘 그렇게 빈궁하였기에 내 집 없는 세입자의 이사의 여정은 계속되었다. 문지동과 판암동, 가양동에 이어 성남동으로 이사를 온 것이 지난 10년 전이다. 대전으로 이사를 와 직장에 처음 출근하니 그 위치는 지금도 충남도청 앞에 있는 G백화점 동백점 12충이었다.
 
아울러 그 건물의 바로 뒤엔 현재는 S생명이 서 있는 장소에 충남 대덕군 구즉면사무소가 위치하고 있었다. 충남도청의 앞으로는 G백화점 동백점의 전신(前身)이었던 동양백화점, 그리고 목척교를 점유하고 있던 중앙데파트와 대전역 구간은 얼추 일직선의 형태로 이뤄져 있었으며 그 일대는 그야말로 최대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충남도청의 지척엔 또한 대전시청과 법원, 세무서 등 이른바 노른자위들이 포진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이 권역은 늘 그렇게 장사도 잘 되는 등 가히 불야성의 성업이었음은 구태여 사족의 부언(附言)이다.
 
애초 ‘충남’이라는 일란성쌍둥이로 살다가 도시가 비대해지면서 한 쌍둥이 ‘동생’은 대전광역시로 더욱 성장했다. 그럼에도 ‘형님’인 충남(도청)은 대전과 여전히 ‘같은 형제’였으므로 무려 80여 년 동안이나 동일한 지역에서 붙박이로 살아왔다.
 
하지만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수순은 비단 인간의 궤적에만 적용되진 않는 법. 성정동에서 낳은 아들과 부사동에서 본 딸은 어느새 성년이 되었다. 그리곤 각자의 위치에서 미래의 더 큰 동량이 되고자 열심인 것이 이 같은 주장의 어떤 방증이다.
 
80년에 걸친 충남도청의 대전시대가 오늘(10월19일) 마침내 그 마감의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충남도는 오늘 오후부터 그동안 충남의 발전을 성원해 준 대전시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행사를 펼친단다.
 
그리고 비록 아쉬운 이별이긴 하되 내포신도시에서의 충남도의 더 힘찬 도약을 또한 다짐할 것이다. 석별의 정을 가득 담아 충남도청을 배웅하며, 충남도청이 더 큰 장족(長足)의 발전으로서 모두가 살고 싶고 부러워하는 명불허전의 으뜸도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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