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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서해 바닷가 고향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

2012.04.29(일) 23:21:38 | 남준희 (이메일주소:skawnsgml29@hanmail.net
               	skawnsgml2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꽃지 해수욕장이 눈 앞이고, 학암포가 지척인 서해 안면도 바닷가.

산기슭에 촌락이 늘어서 있고, 그림처럼 내려다 보이는 바다를 앞에 두고 처얼썩 처얼썩 파도가 치는 한적한 마을. 어머님은 혼자 사시면서 도시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그리워서라도 함께 사시겠다고 하실만 하지만 “그래도 내가 살던 땅을 버릴수 있것냐”하시며 한사코 그곳을 떠나기를 거부하신다. 혼자 농사 지으시며 그걸 자식들에게 나눠주는게 유일한 낙이시다.

“낼 가믄 5월달 어버이날이나 오것냐?”

지난 3월 말께... 어머님 생신에 찾아 뵈었다가 이제 막 떠나려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나서는 나와 아내더러 7순의 노모가 물으신다.  자동차 기름값 아깝게 뭐하러 자주 내려오냐고 만류하시면서도, 그래도 내려가서 뵈면 다시 떠나 보내는게 아쉬운건 어쩔수 없는 일인가보다. 

“네, 어머니. 그 안에 한번 더 오게 되면...”

둘째 며느리인 아내의 자신없는 말투가 목에 걸렸다. 인사를 드리고 차에 올라 타려고 막 나오려는 순간, 시골집 마루에 놓여져 있던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님이 전화를 받으시는 동안 차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그저 손짓으로 ‘어여 출발혀’하실줄 알았던 어머님이 서둘러 내달려 오시며 “야야, 안되것다. 너 뒷마을 동구네좀 가야 하것다”하시며 숨가쁘게 말씀하셨다.

“예? 왜요?”

“동구네 할망구가 안좋은가벼. 급한거 같은디 지금 동네에 차가 너밖에 없는거 같어. 이장이 전화한건디 빨리 좀 가봐야 하겄어”

“예... 예.”

동구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천식을 앓아오셨다. 서둘러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 집에 내려놓고 그곳으로 차를 돌려 내달렸다. 영화에서 천식 환자가 때를 놓치면 호흡곤란을 겪다가 숨이 끊기는것을 자주 봤는데 갑자기 불길하고 마음이 급해졌다. 승용차로는 5분도 안걸리는 마을 한켠의 시골집이었지만 50분도 넘는 거리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차에서 내려 황급히 안에 들어간 순간,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집 밖을 나와 집 옆 논길쪽으로 몸을 트는 순간 힘겨운 모습의 동구 할머니가 검정 비닐봉지를 쥔 채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일단 앉아 계신채 나를 바라보는 것을 확인한 순간 살아 계신것이 너무나 다행스러워서 안아드리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힘겨워 하는 행색으로 보아 상태는 무척 안좋아보였다. 날씨가 추운데 밖에 나와 계신 이유를 묻자, 할머니는 힘겹게 말을 이어 갔다.

"으, 은솔 애비구먼... 콜록 콜록.. 힘들게 혀서... 미안혀. 내가 수고좀 덜어…줄라고…. 콜록. 콜록 커커컥.... 이짝으로 차가…올지 알고. 미안혀서 어쩐댜…콜록" 

더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는듯 했다. 얼른 부축해서 차에 태운후 병원으로 내달렸다. 읍내 병원까지는 빨리 달려서 30분 거리였다. 시골길에 차가 많지 않아 다행히 차는 제시간에 병원까지 갈수 있었고 응급실로 직행했다.

간호사가 산소마스크를 씌워 드리는것을 보고는 안도의 숨이 나왔다. 그 순간까지도 동구 할머니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셨다. 동구 할머니는 어눌한 발음으로 "고맙구먼…"를 되풀이했다. 

동구 할머니는 손주인 동구가 유일한 피붙이지만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 동구가 돈을 번다고 나간지 몇 년이 다 됐지만....

동구 할머니는 우리 어머니와 동갑이시다. 굵게 팬 이마 위 주름에는 검버섯이 깊게 피었다. 그리고 잠시 후, 감았던 눈을 뜬 할머니가 아까부터 손에 쥐고 있던 검정 비닐봉지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쑥으로 만든 쑥버물이였다.

"오늘 아침 만들었는디.... 미얀혀서...드셔...콜록" 봄에 제일먼저 쑥 올라온다 해서 이름 붙여진 쑥. 고향의 봄날 신선한 그것을 뜯어 막 만들어 찌어낸 쑥 버물이를 든 할머니의 앙상한 손이 파르르 떨렸다. 할머니의 부담감을 덜어드리려고 두 손으로 받았다. 

잠시 후  응급실 의사가 동구 할머니를 진찰하고 안심해도 된다는 말을 했다. 하얀 침대에 누워계신 모습을 뒤로 한 채 돌아오는 내내, 검정 비닐봉지를 쥔 채 쪼그려 앉아 힘겨워하던 할머니의 잔영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내가 집으로 떠난뒤, 그리고 앞으로 5년 또는 10년 뒤 우리 어머님이 더 연로 하셔서 저렇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어쩌지?

괜히 눈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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