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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의 예언,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

대한독립운동의 대부 석오 이동녕 선생의 발자취

2020.06.14(일) 22:44:13장군바라기(hao0219@hanmail.net)

석오 이동녕 생가지의 포토존 석오 좌상.
▲석오 이동녕 생가지의 포토존 석오 좌상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뒤 독립운동은 3.1평화운동을 거치면서 본격적인 무장투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때 양대 전투에 참여한 독립군을 양성한 것은 1911년 중국 길림성 통화시 류하현에 설립된 신흥무관학교입니다. 이곳을 졸업한 독립군들이 서로군정서, 조선혁명군, 대한독립군 등에 소속돼 무장독립운동의 주축으로 민족해방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처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역임하며 무장독립운동을 주도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의장 3차례, 임시정부주석 4차례를 역임하면서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끈 주역은 천안 출신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석오 이동녕선생’입니다. 올해는 봉오동전투(1920년 6월 7일)와 청산리대첩(1920년 10월 21일) 100주년이 되는 해로 현충의 달을 맞아 생가와 발자취를 찾아 그의 나라사랑정신을 기렸습니다.
 
이동녕 선생의 생가는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4길 36번지, 충남도 기념물 제72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습니다. 선생은 1869년 이곳에서 태어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상설 등과 만주 용정촌으로 망명해 서전서숙을 설립했습니다. 1907년 일시 귀국한 선생은 그해 안창호 등과 신민회를 조직했고 1910년 만주로 다시 건너가 이시영 등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선각자로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준비한 것입니다.
 
3.1운동 이후 수립된 상해임시정부(1919년) 의정원장과 외무총장을 지낸 뒤 국무총리, 국무위원주석 등을 지냈으며 김구주석과 임시정부의 정치적 후견자로 전시내각을 구성해 조국광복을 위해 평생을 싸우다가 중국 쓰촨성에서 1940년 7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둡니다. 선생은 이같은 공로로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으며 지금도 대표적 독립운동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선생의 생가지는 부지 2608㎡, 건물면적 144㎡로 2005년 복원됐습니다. ‘ㄱ자’형 안채와 ‘一자형’ 대문간채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ㄷ자’ 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안채는 팔작지붕으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이 한 칸씩 있고 안채의 좌우로 3칸씩 내어 방과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쪽 대문간채는 모두 5칸인데, 가운데 2칸은 마루를 깔았고 양쪽으로 한 칸씩 방이 있습니다. 생가 밖 오른쪽에는 우물과 이동녕 선생의 좌상(포토존)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석오 이동녕 생가지 1.
▲석오 이동녕 생가지 전경 1
 
석오 이동녕 생가지 2.
▲석오 이동녕 생가지 2
 
석오 이동녕 생가지 3.
▲석오 이동녕 생가지 3
 
생가 옆에는 수령 500년의 보호수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마을은 배의 형국이어서 이사를 와 부자가 되면 떠나야 한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배에 돛대가 필요해 동네 가운데에 돛에 해당하는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생가 뒤편으로는 고목에 왜가리 무리가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석오 이동녕 생가지의 수령 보호수 은행나무.
▲석오 이동녕 생가지의 수령 450~500년의 은행나무 보호수 
 
석오 이동녕 생가지의 외가리 무리.
▲석오 이동녕 생가지의 왜가리 무리 
 
생가에는 선생의 일대기와 업적을 모은 작은 도서관 ‘광명책방’도 운영 중입니다. 석오이동녕기념관 개관 10주년 특별기획으로 생가마루에 설치된 것으로 ‘광명(光明)’은 선생이 1924년 상해에서 조국광복의 염원을 담아 쓴 휘호에서 착안했다고 합니다.
 
석오 이동녕선생 생가에 만든 작은 도서관 '광명책방' 내부 모습.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에 만든 작은 도서관 '광명책방' 모습.
 
광명책방에는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만화를 비롯해 연구서적, 독립운동 서적, 천안 향토자료 등이 비치돼 자유롭게 볼 수 있습니다. 생가 앞마당에서는 투호와 고리던지기, 제기차기, 윷놀이 등 다양한 민속놀이도 즐길 수 있습니다.
 
생가지 건너편의 석오이동녕기념관은 2010년 개관했습니다. 부지 5483㎡에 지상 1층 349㎡, 주차장은 2920㎡입니다. 기념관 내에는 입구 전면에 이동녕의 흉상과 뒷면에 '대의(大義)' 휘호와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습니다. 전시관은 모두 6개로 제1전시관은 초상화와 영상을, 제2·3전시관은 이동녕의 삶과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제4·중앙전시관은 구국의 여정을, 제5전시관에는 메시지 영상과 제6전시관의 체험 학습코너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석오 이동녕기념관 전경.
▲2010년 개관한 석오이동녕기념관 전경
 
기념관 마당에는 태극기 동산에 이동녕선생 캐릭터 인형과 각종 나무, 꽃, 그리고 잔디 등을 심어 포토존이 마련돼 있습니다.
 
석오 이동녕기념관 태극기 동산.
▲석오이동녕기념관 대의(大義) 태극기 동산

석오 이동녕기념관
▲석오이동녕기념관 '산류천석'
 
이동녕 선생의 동상은 지난해 12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천안시 동남구 영성동 남부오거리에 새롭게 세워졌습니다. 동상 6m에 기단 5m 등 11m 높이로 황동과 석재로 제작됐으며, 주변에는 선생의 업적과 친필 '산류천석(山溜穿石)'과 '대의(大義)'를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천안시 동남구 영성동 석오 이동녕 동상과 어록비.
▲천안시 동남구 영성동 석오 이동녕 동상과 어록비
 
석오 이동녕 휘호 '산류천석'
▲석오 이동녕 친필 휘호 '산류천석(山溜穿石)' 
 
석오 이동녕 친필 휘호 '대의(大義)'
▲석오 이동녕 친필 휘호 '대의(大義)'
 
30대에 독립운동을 시작해 72세의 나이로 이역만리 타국에서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석오 이동녕 선생. 그는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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