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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마지막 3충신을 아시나요?

소나무숲과 백제향이 어우러진 부소산성 삼충사

2020.09.14(월) 09:13:24장군바라기(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유네스콘 문화유산 부소산성
▲유네스코 문화유산 부소산성

역사는 ‘승자의 기록’ 또는 ‘승자의 우화’라고 합니다. 그만큼 승자에게는 모든 면에서 유리하게, 패자에게는 가혹하리만큼 불리하게 기록돼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한 나라의 결정적 흥망을 기록한 전쟁의 역사는 더욱 철저히 승자의 입장에서만 기록됩니다. 패자의 기록은 모두 불살라지거나 파괴되고 부정되기 때문입니다.    
삼국시대 동아시아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도 당과 신라의 연합군에 패망하고 부흥운동마저 실패하면서 철저히 파괴돼 왕궁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패망 1300년이 지난 백제의 부소산성에서 마지막까지 절개를 지키려던 세 명의 충신을 만나봤습니다.
 
부소산성(사적5호)은 사비천도 이후 백제 멸망시까지 왕궁의 배후산성입니다. 평상시에는 왕과 귀족이 증기는 비원(후원)의 역할을 하다가 비상시에는 인근 청산성과 청마산성 등의 보조산성과 함께 왕도 방어의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부소산성 입구
▲부여군 부소산성 입구 1 
 
부여군 부소산성 입구 2.
▲부여군 부소산성 입구 2
 
산성은 서쪽으로 백마강을 끼고 부여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해발 106m 정상부에 축조되었는데, 내부에는 많은 건물터가 발견되고 슬픈 전설을 간직한 낙화암도 백마강을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백제 성왕이 538년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기면서 동성왕 시기(500년) 산봉우리에 축조되었던 산성을 확장하고, 605년 무왕에 이르러 현재 규모로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성 규모는 외곽 성벽 기준 2495m, 바닥 너비 5~6m, 높이는 3m 내외입니다.
 
금강 상수도사업공사가 한창이던 1978년 성벽의 단면이 드러났습니다. 성벽 안쪽흙을 파서 호를 만들고 파낸 흙을 내벽에 보조재로 사용했습니다. 성의 바깥 벽면은 기반토를 겹겹이 다지고 그 위에 돌을 3∼5단으로 쌓은 뒤 흙을 덮었다고 합니다. 이런 방식의 산성은 경사면으로 만들어져 원래 경사도보다 가파른 지형을 만들어 방어에 유리합니다.
 
부소산성 입구에는 관북리 유적이 있는데 백제의 왕궁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삼국시대 궁궐은 고구려 안학궁을 제외하면 백제와 신라의 왕궁은 안타깝게도 아직 정확한 위치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여 관북리 유적. 사비 왕궁터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여 관북리 유적, 사비 왕궁터로 추정되고 있다
 
성안에는 동·서·남문지가 있고 북쪽의 금강으로 향해 낮은 곳에 북문과 수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문 추정지에는 대형철제 자물쇠가 발견되고 남문에는 문주를 받쳤던 초석 2개가 발견되었습니다.
 
부소산성 정문.
▲부소산성의 정문 격인 부소산문 전경 
 
부소산성의 부소산문 현판.
▲부소산성의 부소산문 현판
 
부소산성 부소산문 안쪽의 현판. '사비문'
▲부소산성 부소산문 안쪽 현판. '사비문'
 
부소산문의 단청.
▲부소산문의 단청과 처마선
 
부소산성은 모두 3갈래의 산책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코스마다 1~2시간씩 소요됩니다. 1코스는 부소산문(매표소)을 출발해 삼충사와 영일루, 군창지, 반원루, 낙화암, 고란사, 구드래공원으로 이어집니다. 2코는 이와 반대방향입니다. 3코스는 부소산문을 출발해 반월루, 낙화암, 고란사 구드래공원의 1시간 일정입니다.
 
부여 부소산성 산책로 1.
▲부여 부소산성 산책로 1
 
부여 부소산성 산책로 2.
▲부여 부소산성 산책로 2
 
부소산성길 이용도
▲부여 부소산성길 산책로 안내도
  
삼충사는 백제 패망기 3명의 충신은 성충, 흥수, 계백 등을 모신 사당입니다. 충남 문화재자료 제115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습니다. 성충은 의자왕 때 좌평으로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다가 투옥되어 식음을 전폐하고 죽은 충신입니다. 흥수 역시 나당연합군을 탄현에서 막아 싸우라 간곡하게 당부하였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계백은 신라 김유신 장군의 5만군을 황산벌에서 5천결사대로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장군입니다.
 
부소산성 삼충사 의열문.
▲부여 부소산성 삼충사 의열문
 
부소산성 삼충사.
▲부여 부소산성 삼충사
 
부여 부소산성 삼충사의 영정.
▲부여 부소산성 삼충사의 성충, 흥수, 계백 영정(좌로부터)
 
부소산성을 산책하다 보면 고란사에 이어 낙화암을 들르게 됩니다. 이때 많은 관광객들이 삼천궁녀를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는 완전히 상상력에 근거한 창작물입니다. 삼천궁녀가 등장한 것은 조선 중기 이후 전설처럼 퍼져 나간 것입니다. 백제 멸망 당시 수도인 사비성 인구가 5만 명에 불과한데다 백제왕궁터 등을 감안하면 궁녀가 삼천이란 것은 낭설인데다 낙화암의 삼천궁녀도 사실이 아닐 것입니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 역시 ‘해동증자’로 불릴 정도로 현명했으며 신라를 낙동강 동쪽으로 몰아내고 30여 성을 빼앗는 등 영토전쟁에서 뛰어난 지휘자였습니다. 당나라와 항복하기보다는 자결을 하려했지만 실패하고 당시 얻은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당나라에 끌려가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신라계 고려 유학자 김부식의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궁녀와 놀아나다 나라를 망친 인물로 그려져 있지만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공통적 의견입니다.
 
부소산성 산책로에는 소나무 숲 휴식터가 곳곳에 마련돼 있다.
▲부소산성 산책로에는 소나무숲 휴식터가 곳곳에 마련돼 있다
 
유세스코 세계유산 표지석.
▲유세스코 세계유산 표지석
 
부여의 부소산성은 공주의 공산성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습니다. 여름이 지나가는 이 시기, 아름다운 소나무숲과 백제의 향기가 더욱 환상적으로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가족들과 힐링 나들이 어떠세요? 마스크쓰기와 손소독제 등 방역수칙 준수는 기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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