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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어머니는 백제 무령왕의 자손입니다”

일본 속 백제이야기(1)-아키히토 일왕의 고백

2016.06.06(월) 15:40:05도정신문(ktx@korea.kr)

“내어머니는 백제 무령왕의 자손입니다” 사진


  

 

 

중국 ‘수서’(隋書, 수나라 역사서)에 보면 ‘백제’란 이름은 ‘백가제해(百家濟海), 즉 ‘백가구가 바다를 건너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오간 데서 나온 이름이란 뜻이다.

 

이것은 해상왕국 백제가 바다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국제적으로 교류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런 시사점이 백제 문화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는데 큰 몫을 하였다.

 

특히, 백제의 문화가 일본의 고대국가 형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 흔적은 일본 내 역사와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제의 숨결이 담겨 있는 그 흔적은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못하였다.

 

따라서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서 백제 역사와 문화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일본 속 백제 이야기’를 시리즈로 기획하였다.

 

“나 자신, 간무(桓武)천황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에 한국과 인연을 느낍니다.

 

2001 12월 일본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이 고백은 일본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던 필자는 일왕이 일본 사서에 나와 있는 엄연한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일본 국민들의 놀라는 반응에 오히려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일본 사람들은 일 왕가에 대해서 만세일계(萬世一界), 즉 혈통이 단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음을 강조하면서 신성하고 있다. 일본사회에서는 일왕의 혈통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물론 언급을 하는 것조차 금기시 되어왔다.

 

그런데 최초로 일왕 스스로 자신의 뿌리가 한국인, 특히 백제인과 관련이 있다고 공개석상에서 밝힌 것이다.

 

일왕이 언급한 간무왕은 일본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헤이안(平安:794~1185)시대를 연 성군이다. 그의 아버지는 고닌(光仁)으로 할아버지대 왕위쟁탈전에서 패배하여 왕위계승이 어려웠던 인물이다.

 

왕족이었지만 사실상 정권과는 거리가 멀어진 채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만난 여인이 고야신립(高野新笠)이다.

 

고야신립은 무령왕의 10대 후손으로 멸망한 백제 왕실 후손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고야신립은 용모와 인품이 뛰어나 젊었을 때부터 주위의 평판이 자자했다고 한다.

 

이러한 고야신립을 고닌은 매우 사랑했지만 이미 같은 왕실후손과 정략결혼을 한 상황에서 고야신립을 정실부인으로 맞이하기는 어려웠다. 이윽고 고닌은 62세라는 늦은 나이로 권좌에 오르게 된다. 일왕이 된 고닌은 정실부인과 그 아들을 유배 보내고 대신 사랑하는 여인이었던 고야신립을 정식으로 맞이하였다.

 

이들 사이에 낳은 아들이 바로 간무이다. 간무가 왕위에 오른 뒤 몇 년 후인 789년 고야신립은 세상을 떠났다. 이에 간무왕은 어머니를 태황태후(太皇太后)로 추증하고, 교토로 수도를 옮긴 후 히라노(平野)신사에 위패를 모시고 극진히 제사지냈다.

 

고야신립은 일본의 고대 사서인 ‘속일본기’(797년 편찬)에 의하면 무령왕이 왜국에서 체재할 때 낳은 자식인 순타(淳陀)태자의 후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야신립의 아들인 간무왕은 즉위 기간 내내 기록대로 자신이 백제계임을 강조하면서 많은 백제왕 후손들을 중용하였다. 비록 백제라는 나라는 없어졌지만 자신의 외척이었던 백제왕가에 대해서는 특별히 우대한 것이다.

 

백제왕의 후예들이 일본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들과의 친밀감도 적극적으로 표현하였다. 백제왕 후예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매년 찾아가 제사를 올리고 여가를 즐겼으며, 이들에게 5위 이상의 관위를 내리거나 중앙과 지방의 중요 관직에 임용하였다.

 

일왕의 고백을 통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백제의 숨결이 일본 곳곳에 살아 있으며, 백제인들의 후손들은 타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면서 정치·사회적 위상을 높여 갔을 뿐만 아니라 고대 일본의 국가성립과 문화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제 우리는 일본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본 속의 백제문화가 일본 문화의 뿌리가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박재용/충남역사문화연구원

백제학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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