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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만명의 기적으로 유류피해를 극복한 서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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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유류피해극복 10주년 특집 [태안 그후 10년 바다, 다시 꽃피다]

쪽빛 바다를 품은 태안, 바다는 길을 내주며 눈부시게 일어난다.
태평하고 안락한 도시라는 그 이름처럼 철마다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태안...
봄이면 형형색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미소가 가득하다.
풍요와 낭만의 상징 바다, 그러나 태안의 바다는 유난히 춥고 혹독했던 2007년 12월 그 겨울을 기억하고 있다.

의항리 어촌계장 이충경씨는 2007년 그날의 바다를 잊을 수 없다.
"제몸이 소름돋듯이 소름 돋듯이 막 짜릿한 것을 느꼈거든요."
온몸에 이는 전율, 바다가 온통 검은 기름 범벅이었다.
"검은 띠들이, 검은 띠들이 그때부터 막 흘러가는 것을 보았거든요."
검은 띠들이 흘러가는 그것은 더이상 바다가 아니었다.
검은 재앙 그 자체였다.

"옛날에는 하얀 파도였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검은 파도로 바뀌니까 이게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처럼..."
온 세상을 어둠으로 몰아넣은 끔찍한 재앙, 휘몰아치는 검은 파도는 바다의 모든 생명을 죽음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기름 범벅이 된 바다새, 조약돌, 그 어떤 것도 피할 수 없는 대재앙의 시작, 15만톤급 초대형 유조선 홍콩의 허베이 스피리트호는 기름탱크에 구멍이 뚫린채 엄청난 기름을 바다에 쏟아내고 있었다.
검은띠는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바다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우리들은 캄캄하고 죽는 줄 알았죠. 죽는 심정이죠. 생계고 뭐고 다 놓쳤는데 이 기름 유출로 인해서 우리들이 그냥 쓰러질 정도니까 우리들은 죽었구나 그런 맘이었죠."

사고후 14시간만에 해안까지 검은 기름띠가 밀려오면서 모든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당시 파도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검은 기름이 바다를 뒤덥고 있어서 사고를 처리할 때도 막막했고 또 답답한 것도 있 었고 겁도 상당히 났었습니다."
"사고당시 기름이 유출되고 있을때 물론 날씨 상황들이 좋지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배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을 막을 수 있는 아주 긴박한 초동 조치가 원활하지 못했고요. 그 다음에 확산되면서 여러가지 정부 시스템이 가동되는 것이 정확하지 않았고요."
기상악화로 사고발생 40시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방제조치를 취하지 못했고, 그 사이 유출된 원유 10,900톤은 바다 로 흘러들었고 삽시간에 내륙으로 점차 확대됐다. 사고 9일째는 서천에, 사고 26일째는 진도부근까지 기름이 흘러가 그 피해가 일파만파로 확산되었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는 여수 씨프린스호 사고의 2.5배에 달하는 대형사고였고, 충남은 물론 전북과 전남의 서해안 전체를 검게 뒤덮었다.
피해 지역이 서해안 전역으로 확대되고, 기름띠가 내륙연안을 뒤덮으면서 바다를 생계로 살아가던 어민들은 하루아침 에 생계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망연자실 할 수 밖에...
"굴을 따서 팔아도 되고 또 미역, 다시마 그런걸 팔아서 우리가 생계유지가 됐었는데 기름유출사고 난 직후에는 전혀 그런게 없었습니다. 다 죽었어요. 없었어요."
굴과 전복양식장을 비롯해 갯벌까지 초토화되며, 순식간에 죽어버린 바다, 피해민들은 그 엄청난 사고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런 큰 배가 여기서 정박을 했다는데 왜 정박을 한 배를 누가 와서 받습니까...계획적인 것이 아니면 이럴 수가 없 습니다."

2007년 12월 6일 태안 앞바다에 도착한 허베이 스피리트호는 수심 약 64미터의 해저에 닻을 내리고 정박했다. 12월 7일 오전 3시 서해중부 먼바다에 풍랑주의보가 내려 북서풍이 초속 약16미터 정도로 불고, 4미터의 높은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지면 대형선박이든 소형선박이든 다 항구로 돌아오는 그런 날인데도 불구하고 운항했다는 것은 다 시 한번 말하지만 이해가 안 갑니다."

사고전날 일기예보에 따라 기상악화가 예상되는 데도 불구하고 3,000톤 크레인을 실은 12,000천톤 바지선 삼성1호가 예인선 2대에 이끌려 인천항을 출발했다. 인천항을 출발한 예인선은 2007년 12월 6일 23시경 울도 앞바다를 통과할 무 렵 강한 풍파의 영향으로 남쪽으로 떠밀리기 시작했다. 접근하는 예인선단에 위협을 느낀 허베이 스피리트호 선장은 예인선단에 비상호출을 시도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06시 52분, 과도한 장력을 견디지 못한 예인줄이 끊어지고, 해상 크레인을 실은 바지선 삼성1호는 예인력을 상실하면서 빠르게 허베이 스피리트호 쪽으로 떠밀려 갔다.

위협을 느낀 허베이 스피리트호는 닻줄을 끊고 후진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07시 13분경 바지선 삼성1호의 왼쪽 앞머 리가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왼쪽 1번 기름탱크를 들이받으며 원유가 바다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잇따라 9차례 바지선이 허베이 스피리트호를 들이받았고 이 중 3개의 기름탱크에 구멍이 뚫리고 기름이 바다로 쏟아졌 다. 허베이 스피리트호는 이중 선체가 아니고 단일 선체였기 때문에 쉽게 구멍이 뚫렸다.
구멍이 큰 3번과 5번 탱크에서는 사고당일 대부분의 원유가 유출되었고 구멍이 작은 1번 탱크는 40시간 이상 기름을 쏟아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아침 새벽5시에 일어나니까 핑하고 어지러워서 옆으로 쓰러지더라고요. '왜 이러지, 차멀미하는 사람 같다'고 생각하 고 내가 나와봤어요. 만리포로 오니까 가스 틀어놔서 가스가 꽉찬것 같이 그렇게 되면서 새까매졌어요."
"기름이 그 어마어마하게 큰 배에서 팍팍 쏟아지는데 태안 앞바다가 까맣게 변하고 '아, 이제 진짜 우리 태안군은 죽 었구나'"
사고가 나자 해경 방제선이 긴급출동했으나, 높은 파도로 사고선박에 접근하지 못했고 사고발생 5시간만에 기름유출 탱크 주변에 오일펜스를 설치했으나 기름확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고당시 해상은 풍랑주의보 발효에 의한 선박활동 제한 등 정상적인 방제 작업 수행이 곤란한 상태였습니다."
"기름을 막는 방법 그 장비라든지 이런 것이 있어야 하는데 예를들어 오일펜스가 부피가 크고 그래서 이걸 이동하기엔 수단이나 여러가지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경량화된 길이의 오일펜스가 헬기를 통해서 가든지 아니면 빠른 작은 선박으로 가든지 해야 하는데 배 200톤 300톤짜리 배들이 투입되는데 그것들은 그런 장비들을 싣고 그 배를 둘러 싸긴 힘듭니다."

15만톤급 대형선박, 허베이 스피리트호, 총길이 338미터, 폭 58미터로 축구장 3개 크기만한 허베이 스피리트호 전체를 둘러쌀 오일펜스를 칠 수 없어 기름회수를 통한 1차 기름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당시 우리 해경은 악천우에 초대형 선박을 상대로 효과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장비도, 능력도 부족한 상태였다.
"전혀 무방비 상태에서 48시간이라는 시간을 넋놓고 유조선에서 나오는 기름만 쳐다보고 있었거든요."
속수무책, 초동대응에 실패해 해안까지 기름띠가 확산됨에 따라 연안양식장이 폐사하고 갯벌 생태계까지 황폐화되면서 어민들은 하루아침에 모든 생계수단을 박탈당했다.

"이 바다를 생계로 삶을 살아가다 보니까 이 바다가 갑자기 이제 우리한테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생각을 가지고 주민들 은 아주 어떻게 보면 큰 틀에서 보면 삶에서 '이제 어떻게 사나' 그런 걱정으로 항상 불안한 상태를 가지고 있었습니 다."
"어획량이 없으니까 도매장사도 전혀 안되고 또 기름유출 전에 판 물고기 값도 못받을 정도였고, 고기를 계속 대줘야 하는데 안 대준다고 대금도 못 받고 진짜 힘들었습니다."
지역경제가 무너지고, 태안 사람들의 마음도 텅 비어가고, 그렇게 도시는 유령의 집처럼 황폐해져 갔다. 더 이상 날 수 없는 새, 그건 태안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망연자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암흑에 빠진 사람들에게 찾아온 희망의 손길, 전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가 태안 의 기적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지에 와보니 진짜 마음이 아픕니다. 난감하고요. 이 지역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복구해서 살아야 할지 진정으로 참 가슴 아픕니다."
기적의 띠를 이뤄 얼룩진 기름을 닦아내고 생명을 불어넣으며, 사랑을 실천하는 동참행렬은 끝없이 이어졌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위대했습니다. 123만 자원봉사자들이 그 어린 손과 어르신들의 그 손으로 이 돌을 하나하나 닦아서 기적을 만들어 주셨어요."
훗날 태안의 기적이라 불리는 자원봉사자의 행렬, 그 123만명의 온기와 열정으로 차갑게 굳어버린 검은 바다를 부활시 킨 것이다.

"저는 사고 당일부터 여기서 봉사활동 했고요. 여기 만리포에서 한4개월 정도 살면서 했습니다. 옛날 생각들이 많이 떠오르고요.'참 많이 변했다. 10년 전이랑 완전히 변했구나'라고 느낍니다. 그리고 123만 명이 넘는 아름다운 손길의 고마움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남녀노소, 각계각층에서 모인 사람들, 인터넷을 통해 태안자원봉사자 커뮤니티가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구체적인 참 여 방법과 물품지원 등의 정보공유를 하면서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숫자, 123만...
"카페를 열어봤더니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카페 회원으로 참여를 하고 또 주말마다 태안으로 봉사를 하러 가는데 많 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기 돈을 내고 참여하더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시간과 자기 비용을 들여 태안을 찾은 사람들, 그 힘은 어디서 나온걸까?

"자원봉사자들의 특징으로 두가지를 저희들이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환경의식이 높은 사람, 이 사람들이 자원봉사자 로 많이 참여했다는 것이고요. 두번째로는 사회쟁점, 사회문제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왔다는 것입니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환경을 살리려는 열정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온힘을 다해 기름을 닦아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쉬움 과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있었다.

"자원봉사자가 많이 온 것은 사실 환경운동연합이나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초기 적극적인 노력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 들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단계를 지나니까 시민의식이나 그 심리가 '아, 나 저기 안가면 안돼, 안가보면 안돼' 이렇게 되면서부터 많은 아이들이 참여하게 만들고 또 지방정부, 시민사회단체, 정부 별로 참여하게 만들었죠. 사실 이런 부분들은 국가가 '거기는 위험지역이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와서는 안됩니다'라는 어떤 제약을 가하거나 안내를 해야죠. 그런데 그런 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 참여하지 않으면 내가 부끄러운 사람이 된다'는 심리가 바닥에 있 었던 거죠. 그래서 아이들까지 데리고 오는 그 마음은 아주 비단같이 좋지만 사실 한편으로 무지거든요. 무지함을 아 이들한테 가르치기도 한 거거든요. 그래서 자원하는 것조차도 기술적이다. 기술적으로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

전대미문의 기름유출 사고에서 힘없이 무너졌던 태안, 그러나 좌절을 딛고 기적을 일궈낸 태안의 자원봉사 활동은 태 안의 기적을 넘어 국민적 자긍심으로 자리매김 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이런 피해를 극복하기 위한 위기극복 DNA를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123만 명 국민 자원봉사자가 참여해서 불가능해보였던 바다 살리기도 달성했고 그래서 앞으로 우리 국민은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잘 극복해 낼 수 있는 자신감과 또 국민의 단결력을 확인했다고 봅니다."

123만 자원봉사자 그들이 닦아낸건 검은 기름이 아니라 아마도 태안 사람들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걸 보여준 123만 명의 태안 자원봉사자, 그들은 기적을 이루어냈 고 희망의 증거가 되었다. 2007년 12월 그 해 겨울은 그렇게 따뜻했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은 스스로 치유된다. 그러나 거기엔 많은 사람들의 노력도 있었다. 눈으로 보기엔 깨끗한 바닷가, 그러나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점검은 필수적이다.
"유류 유출사고가 발생되면 여기 조간대에 서식하는 생물들이 가장 먼저 생물체 내에 유류 성분을 농축시키는데요. 이 러한 생물을 채집함으로써 유류성분 항목들을 분석해서 유류 유출사고에 대해서 회복이 됐는지 안 됐는지를 파악하는 지표로 사용하기 위해서 이렇게 채취해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채취한 각종 시료는 실험처치 과정을 거쳐 각 항목별로 데이터를 뽑아 바다의 회복 정도를 평가하는 자료 로 활용된다.
사고발생 1년 후부터 매년 남아있는 피복기름량을 비교분석해 바다의 회복과정을 장기 모니터링 한 결과, 채취한 시료 의 잔존 피복 기름량 10% 이상을 의미하는 붉은색 바가 70%에 육박하던 2008년에 비해 2016년에는 완전히 사라진 것으 로 분석됐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은 기름유출 사고 이후 경관보호지역이던 태안을 국립공원인 카테고리2로 격상시켰다. 이는 태안해안 국립공원 생태계의 건강성을 인정받은 성과로서 환경복원에 수십년이 걸릴거란 예상을 깨고 2016년 1월말에 카테고리2 로 승격된 것이다.

자연이 회복된 것은 어민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법, 바지락을 캐는 손에 힘이 실린다.
"여기는 아주 알이 통통배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카테고리2로 격상되며 태안해안국립공원은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다. 바다엔 풍요가, 갯벌엔 생명의 활기가 넘치니 태 평하고 안락한 곳 태안은 오롯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명의 땅, 생명의 바다로 다시 꽃피었다.
사고후 10년이 되면서 어획량도 늘고 경제도 살아나고 태안의 외형적인 모습은 평온을 되찾았지만 아직 남은 숙제가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물론 금전적인, 경제적인 손실의 측면도 컸지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이 피해로 인해서 지역의 공동체가 파괴됐다는 겁니다. 지역경제가 붕괴되고 주민들의 갈등, 배상과 보상을 둘러싼 갈등들이 많이 있었어요."
사고가 나고 바다가 황폐화 되자 마을엔 제일 먼저 공포가 엄습했다. 마을 공동체는 흔들렸고 이웃사촌은 온데간데 없 어졌다.
"왜 그런가하니, 그 양반하고 나하고 1월에는 눈 오는 날 말이지 뭐라고 했어요. 선박의 기름값을 말이지 선처리 수리 해준다고 했지"
지역경제가 무너지자 대응방안을 두고 사람들은 두갈래, 세갈래로 갈려져 우왕좌왕 했다. 극도의 불신과 불안감에 휩 싸였고 생존권 보전을 위한 극한 투쟁에 돌입했다.

"환경재난으로 인해서 관광업이든 수산업이든 운송업이든 마을에 모든 활기가 없어졌고요. 그리고 외부의 원조를 무력 하게 기다려야 하는 또 보상에 대해서 첨예하게 대결해야 하는 마을 간의 적대감, 개인간의 적대감이 상당해지면서 서 로를 불신하는 그런 집단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됩니다."
피해 보상이 지연되면서 맨손어업을 하던 이용건씨가 경제적 문제로 2008년 1월 10일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잇따라 3명 이 자살을 했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고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용기와 희망도 함께 끊어버리며 태안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본인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분노감이 상당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여러 분들이 자살을 시도하셨고 또 자살 문제로 공동체에 많은 손상이 갔고요."
설상가상 시간이 흘러도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는 피해보상 문제로 어민들은 분노와 절망감에 빠졌지만 정부도 언론도 이들의 아픔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특별법이 다 허위고 허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3천억 받자고 여기 왔습니까? 우리는 선 피해 금액을 다 받아야 합니다."

"언론 보도가 피해 당사자인 주민들이나 어민에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복구나 해결 차원에 초점을 둔 것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어민들이 어떠한 고통을 받았고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에 대한 보도보다는 미담이 나 기타 정부의 대책에 중심을 둔 보도를 통해서 보도의 본질이 흐려지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점점 격렬해지는 시위, 더욱 커져만 가는 분노, 거기엔 또 다른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사고가 나면 그 유조선 이름을 따서 명명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허베이 스피니트호 유류 오염사고는 태안 기름 유 출사고라는 이름이 딱 정해진 거예요. 일반 국민이 볼 때는 태안이 가해자로 둔갑돼 버리거든요.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되는 그런 현상이 나온 겁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삼성 해상 크레인, 가해자가 빠져버린 태안 기름유출 사고, 이는 사고의 원인과 책임에 대한 지리한 공방의 전주곡이었다.

"이번 사건은 태안이라는 지명이 언론에 부각되면서 이로 인한 피해가 컸다고 봅니다. 실제로 태안주민의 향후 복구라 든지 심리적 보상이라는 이런 측면에서도 큰 악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삼성 허베이 스피리트 원유 유출사고가 태안 기름 유출사고로 이름이 바뀌면서 사고 이후에 가해자를 판결하기 위한 여러가지 행사재판이라든지, 민사재판, 행정재판들이 여러 건 있었어요. 그때 아마 가해자가 태안기름유출사고라는 이 름을 쓰면서 가해자가 없어지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그러다보니까 삼성과 허베이가 쌍방과실이 되는 그런 부분도 아마 영향이 있지 않은가라고 저희들은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삼성 측은 2009년 3월 서울지방법원에 피해보상 책임 제한절차를 위한 소송을 제기했고, 2011년 4월 56억 3천 4백만원 을 보상하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삼성과 주민간에 피해보상을 둘러싼 소송과 협상이 장기화되면서 삼 성에 대한 태인 주민들의 불신과 분노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는데 삼성의 책임을 56억 3천 4백만원으로 판결한 거에 대해서 저희들은 또 한번 놀란 거예 요. 책임 제한 절차에는 두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고의, 무리한 항해 운항일 때 무한 책임을 지게 돼 있는데 당연히 운항을 하지 말아야 할 기상 조건에서 기업이 경제성을 앞세운 과도한 탐욕때문에 무리한 항해를 했다는 건 사실 아니 겠습니까? 그래도 최후의 보루인 우리 사법부가 가해자의 책임을 그 막대한 피해가 있음에도 56억 3천 4백만원으로 제 한했다는 것에 대해서 그 당시 저희들은 '아, 믿을 데가 없구나. 세상에' 그런 절망감과 자괴감을 느꼈던 거 같아요."

우여곡절 끝에 삼성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지역발전기금 3,600억원을 내놓기로 했고 그 기금의 배분을 놓고 지역 대표 자들의 회의가 한창이다.
"저희가 기부금을 받으면 3년 안에 그것을 소진하든가 아까 말씀드린대로 정기예탁이나 기본재산 취득을 해서 그걸 사 용을 해야 하는데..."
엊그제 오후 태안 유류피해 사고에 따른 지역발전기금의 배분 비율이 알려졌습니다. 대한상사 중재원의 판정에 따라 삼성중공업이 출연한 2,900억원을 충남과 전남 등 서해안 11개 시군이 배분받게 됩니다.
2017년 7월 21일 대한상사중재원은 삼성이 내놓은 지역발전기금에 지역별 배분 비율을 확정했다.
태안이 전체기금 의 49%인 1,421억원을 보상받고, 보령, 서천, 서산 등 서해안 11개 시군이 피해의 정도에 따라 13%~2%까지 배분받게 됐다.

사고 후 10년만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20세기 최악의 기름유출 사건 액손 발데즈호 사고, 알래스카 해안 약 2500km를 오염시키고 이 사건의 피해 보상액은 무려 7조 2천억원, 1999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에리카호 사고, 약 2만톤의 기름이 쏟아졌고 피해 보상액은 약 3,000억 원이었다.
2002년 프랑스 연안에서 발생한 프레스티지호 사고, 스페인, 프랑스 해안 1,900km를 오염시켰고, 피해보상액은 1조 4 천억원이 넘었다. 일본 시마네현에서 발생한 나호토카호 사고, 6,200톤의 기름이 해안 480km를 오염시켰고, 피해보상 액은 약 2,600억원에 달했다. 일본 후쿠이현 미쿠니마을은 조용하고 깨끗한 휴양지로 유명하다. 그러나 20년전 기름유 출 사고를 겪은 아픈 기억이 있다.

1997년 1월 2일, 러시아 선박 나호토카호가 일본 후쿠이현 앞에서 폭풍우를 만나 좌초되어 표류하다 선체가 두동강 나 며 바다에 기름을 유출시켰다.
"눈을 뜰 수조차 없을 정도로 따끔거렸고 냄새 또한 코가 아플 정도였습니다. 30cm에서 50cm 정도의 새까만 기름띠가 해안을 뒤덮고 있어서 '미쿠니 마을은 이제 끝장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최초 시마네현 앞바다에서 좌초된 나호토카호가 강한 바람에 떠밀려 내륙으로 밀려오다가 미쿠이 마을 연안에서 두동 강나면서 6,200톤의 기름이 유출됐고, 9개 현의 해안 480km를 오염시켰다.
"처음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이렇게까지 모여주실 줄 몰랐기 때문에 현의 대책본부에 마을 사람들도 뭐라도 하게 해달라 고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쪽도 전국에서 연락이 들어오고 있어서 개별대응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개인, 기 업, 조직, 공무원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쿠리마을 해안가에 세워진 나호토카호 자원봉사자 기념비, 자발적으로 참여해 기름띠를 제거한 자원봉사자들을 기념 하고 있다.
태안과 마찬가지로 타호토카호의 경우도 자원봉사자의 활약이 눈부셨다. 전국에서 30만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여 들었고 이들의 활약상이 일본의 공영방송 NHK에 방송되면서 전세계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미쿠니 마을에서는 신속히 일지를 작성하여 피해 원인, 피해 상황 등을 기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상 청구 문제 도 빨리 해결된 것 같습니다."

나호토카호 사건은 빠른 피해 복구뿐만 아니라, 사고발생 3년 만에 피해보상을 완료한 사례로도 유명하다. 피해지역 9 개 현, 2,610억원에 이르는 피해보상, 이런 대규모 재난을 어떻게 신속하고 갈등없이 해결할 수 있던 걸까? 나호토카 호 백서 피해보상 과정에서 일본정부가 보여준 적절하고 신속한 대응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사고처리 초기 단계에서 보상청구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 개입한 점이 눈에 띈다. 소송으로 이 어질 경우를 대비해 현과 읍면동이 해상 국제 법규에 능통한 변호사를 선임, 대등한 교섭을 하기 위한 대비를 철저히 했다.

또한 사고 초기단계부터 어민의 고충을 덜고 어민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이 있었는데, 이는 정부에 대한 어 민들의 신뢰를 높이고 불필요한 혼란을 최소화 하는데 기여했다. 사고발생 28일만에 해양사고 감정인과 관계부처가 참 여한 보상담당팀이 꾸려졌고 이들을 중심으로 주민들에게 보상절차를 설명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렇게 해서 사 고 발생 38일만에 신속하게 보상청구 작업에 착수 할 수 있었다. 또 사고발생 70여일 만에 현과 시읍면에 약 82억원의 방제비용을 신속하게 지원하여 방제초기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 했다.

"정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해줄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되기 때문에 결국 그것을 피해자한테 정부는 가해자에게 맡겨버리고 나몰라라는 상황이 된거죠. 그런데 일본은 그런 근거가 충분히 평상시에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피해가 났을 때 거기에 근거해서 A라는 사람은 얼마만큼 피해가 났으니까 이에 대해서 정하고 거기에 대한 심 리적 보상까지 책정해서 가면 되는데 그래서 보상하는 시간이 일본은 짧아지고 한국은 아직도 늘어질 수 밖에 없는 그 런 상황에 있습니다."
정확한 근거자료에 따른 신속한 보상이 가능했던건 정부와 국민의 믿음 때문이라는 걸 사고의 흔적이 말끔히 지워진 미쿠니 바다가 말하고 있다.

사고 10주년을 맞아 자원봉사자들의 뜻을 기리는 태안유류피해 극복기념관이 9월 15일 개관예정이다. 개관에 앞서 당 시 자원봉사를 했던 세사람이 기념관을 찾았다.
"오랫동안 기름 냄새 맡고 노출돼서 위험할 수 있으니까 4시간 이상 못하게 하지 않았어요? 특히 청소년들은 2시간 이 상 못하게 하고..."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들, 유류피해극복기념관은 피해극복과정을 소개하고 해양사고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교 육의 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검은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만들어준 123만 자원봉사자의 이름도 새겨 그들의 헌신과 노고를 영원히 기억하게 했다.

기념관 1층은 어둠의 바다를 주제로, 2층은 희망의 바다를 주제로 꾸며져 있어서 전시관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일궈낸 자원봉사자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자발적으로 오신 분들의 열화가 대단했습니다. 123만명이 넘었거든요. 그분들이 와서 '내가 할 일이 뭐냐 뭘하면 되 느냐'며 묵묵히 바다에 앉아서 기름을 걷어내던 그런 모습이 인상에 남습니다. 그리고 또 느끼는 것이 이런 분들의 손 길이 있어서 그나마 태안반도가 되살아나고 생명이 넘치고 많은 분들이 찾는 이런 모습을 보았을 때 감회가 새롭습니 다."

이국적인 풍경의 모래언덕, 신두리 해안사구,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해안사구가 기름에 오염됐던 사고당시를 떠올리면 현재모습에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해안사구가 중요한 것이 해안과 육상을 연결하는 생태계 다리 역할을 하거든요. 그리고 또 사구가 자연 방파제 역할 도 해요. 이 해안선이 바다에서 일어나는 해일이나 태풍들을 자연스럽게 완화시켜서 육지를 보호하는 자연 방파제 역 할도 하고..."

신두리 사구의 고운 모래감촉을 두발로 느끼며, 태안의 갯바람에 몸을 맡긴 세사람은 123만 자원봉사자가 지켜낸 신두 리사구의 정취와 그날의 기적을 만끽해본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고후 관계부처는 피해민과 함께 대책마련을 위한 회의를 여러차례 실시했고, 외국의 전문가를 초 빙해 심포지엄을 열어 개선방안을 논의해 왔다. 해상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사고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고와 같은 대형 해상사고가 일어났을 때 신속한 방제작업을 위해서는 아직도 도입하지 못한 공용 방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오일펜스를 쳤을 때 오일펜스가 선박을 둘러쌀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하는데 그런 오일펜스를 적재할 수 없기 때문에 일직선으로 가는 펜스를 쳤기 때문에 오일을 방어할 수 없는 그런 구조였습니다. 만약 이때 대형선박이 아주 긴 오일 펜스를 들고 조치했다면 선박을 둘러싸서 일차적인 확산을 방어할 수 있었고 또 거기에서 현장지휘라든지 여러가지 다 른 방어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배가 작기 때문에 현장 접근이 어려워서 그런 부분들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상황이었 습니다."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는 2002년 스페인에서 발생한 초대형 해양 오염사고인 프레스티지호 유류 유출사고 당시 3척의 대형 방제선을 투입했는데 회수 효율은 중소형 방제선 대비 10배 이상이었습니다. 이는 대형 방제선의 배치 효과를 실 제로 증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4천톤 이상 대형방제선 보유현황을 보면 네덜란드, 노르웨이, 일본 등 해양국가에서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 일본은 하 쿠산, 세류, 카이쇼 등 3척의 대형방제선을 보유하고 있다. 평상시에는 준설작업을 하고, 사고가 나면 유출된 기름의 확산을 막는 신속한 방제작업에 투입된다. 동선을 고려해 세곳에 대형 방제선을 배치함으로써 어디서 사고가 나더라도 방제에 필요한 장비와 인력을 신속하게 현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일본 나고야항에는 대형방제선 세류가 있다. 2005년에 만들어진 세류는 총 길이 104m, 4,800톤의 대형선박으로 악천우 에도 대형해상사고에 대비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방제는 물론 기름회수 작업까지 가능해 기름유출 피해를 초기에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세이류 마루의 기능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준설, 둘째로 기름회수, 셋째로 방제입니다. 선박의 항해가 용이하도록 준설작업을 하며 고점도, 저점도 기름을 모두 회수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고, 또한 고효율 기름 회수장비도 개발 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1997년에만 3건의 대형 기름유출 사고가 있었는데 이 사고를 계기로 4,000톤 이상의 대형 방제선 3척을 마련 하는 계기가 됨으로써 대형 해상유류사고에 경제적, 환경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대형 방제선의 주요 역할은 사고가 발생한 지점에서부터 유출유를 직접 회수함으로써 더 큰 피해를 방지하는 데 있습 니다. 이미 해안에 부착된 기름을 제거하는 것보다 해상의 유출유를 회수하는 것이 작업 효율 측면에서 경제적 가치가 더 크고 해상에서 회수하지 못한 기름이 해안가에 부착된다면 그 피해는 훨씬 가중됩니다. 따라서 작업 시간도 상당기 간 길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고 이후 해양수산부를 비롯한 관계부처는 많은 백서와 메뉴얼을 발간하면서 대형 해상사고에 대응 하기 위한 향후 과제에 대한 점검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정부 조직을 개편해 국민안전처를 폐지하고 해양경찰청을 독 립시켜 대형 해상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현장 전문성을 강화했다.

"해양수산부에서는 해양안전, 유류오염 사고에 대한 정책을 입안하고 일관되게 해경이 우리부 산하의 청으로 된다면 집행은 해경에서 함으로써 정책결정과 집행을 일원화시켜 보다 더 해양사고라든지 오염사고에 체계적으로 대처해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해양오염사고에 대응하기 위한 훈련이 한창이다.
유사시 방제효과와 재난극복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철저한 현장 대응 중심으로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
"바람, 조류, 파도 등의 변화로 훈련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가장 어렵습니다. 반복적인 숙달 훈련을 통해 실제 사고시 인명과 환경 피해를 최소화했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정부는 매년 350억이 넘는 예산을 투입, 해양오염사고 예방을 위한 현장훈련을 전국적으로 500회가 넘게 실시하고 있 다.
하지만 이 훈련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민·관이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매뉴얼 상으로는 잘 돼 있습니다. 이걸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은 지금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민 들이 그 매뉴얼을 모르고 있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전문가와 공무원만 알게 아니라 국민도 알 수 있는 쉬운 매뉴얼을 제공해서 그 매뉴얼에 따라서 시민이나 국민이 언제든지 동참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걸 평상시에 훈련해서 몸에 배도록 하는 작업이 재난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언제 어떤 상황에서 생길지 모르는 대형 해양오염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주민들이 공유하기 쉬운 매뉴얼, 주민과 함 께하는 현장 훈련이 필요하다.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훈련이 없으면 누구도 미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재난이 일어난 후에 대응하는 것보다도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예방은 어떻게 보면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빛이 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예방을 잘 하면 재난이 발생하지 않 기 때문에 빛은 나지 않지만 투자는 오히려 그쪽으로 많이 해야 한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고가 난지 어느덧 10년, 태안 지역경제도 회복되고 자연 생태계도 살아났다.
"고기도 어획량이 늘어서 저희 도매도 다시 시작해서 지금은 조금 나아졌습니다."
자연이 살아나자 사람들도 활기를 찾고, 사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른 건 없이, 이제 희망을 갖게 되죠."
바다가 살아나면서 해안 국립공원 태안의 절경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 관광업도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예쁜 바다도 있고 또 절경도 좋아서 오게 됐습니다. 예전에 기름 유출사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혀 느끼지 못 할 만큼 바다도 예쁘고 공기도 좋고 너무 좋습니다."

낭만과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태안의 여름 바다, 사고 후 10년, 2017년 태안의 여름은 그 어느때보다 싱그럽 고 눈부시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그런 재난에 대처할 수 있는 훈련을 언제든지 신속하고 정확하고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것을 배우 고 익히는 그런 10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한국의 재난관리 시스템도 더 발전한다고 봅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인 10년, 풍요로운 바다는 아낌없이 선물을 내주고 사람들은 미소로 보답한다. 바다와 함께 하루 를 열고 닫으며, 바다를 지키는 태안 사람들... 어둠을 밝히는 불빛처럼 길고 긴 시간 인내하며 이제 다시 희망을 이 야기 하고 있다. 검은 기름에 신음하던 태안, 그 후 10년, 바다, 다시 꽃 피웠다.
 
담당부서
해양정책과
담당자
심소현
문의전화
041-635-4771

최종 수정일 : 2018-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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